누가 정치보복이라 하는가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다. 탐욕과 이기주의와 무관심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다. 그것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고, 불온한 꿈이었다. 그는 정의를 얘기했고, 상식과 원칙을 부르짖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그의 출신성분을 들먹였고, 그의 말투를 조롱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기적이었거나 아니면 신이 이 땅에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류들은 당황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그들에게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에게 열광했던 사람들도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였다.
그는 단 한순간도 타협하지 않았다. 사방이 적이었고 지지자가 떠나갔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굴복하지 않았고, 그가 부여잡은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살아야만 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는 그 숱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온갖 방해와 비난을 물리치고 성공적으로 대통령의 임무를 마치지만,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다. 노무현의 시대가 이 천박한 땅에서 얼마나 감사해야할 역사인지를 알지 못했다. 어리석고 어리석었다.
사람들은 그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있을 때는 알지 못했다. 어리석고 탐욕에 찌든 이들이 야만의 권력을 탄생시켰다. 그 야만의 권력과 쓰레기 언론들이 협잡하여 노무현을 죽였다. 그것은 정치보복이 아니고 살인이었다. 노무현을 인정하지 않은 자들이, 아니 인정할 수 없었던 자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그들의 무능력과 열등감이 검찰과 언론이라는 후안무치한 권력을 등에 업고 노무현을 죽였다. 그들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악했다. 죄의식도 부끄러움도 몰랐다.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란 바로 그런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누가 감히 정치보복이라 하는가. 그것은 백번을 양보해도 “포괄”적 살인이었다.
한때 진보라 불렸던 몇몇 신문들은 노무현이 죽자 그를 팔아 장사 밑천을 삼았다. 물론 이들도 노무현 죽이기에 가담한 공범이었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알리바이만을 만들려고 했다. 간악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있을 때는 그의 소중함을 제대로 모르던 사람들도 슬퍼했고 미안해 했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노무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에 더이상 노무현은 없다. 아무리 슬퍼하고 눈물을 흘려도 노무현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신은 그렇게 공평했다. 노무현이라는 걸출하고 위대한 인물을 내려 주었는데도 그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보냈다. 그리고 신은 노무현을 다시 거두어갔다.
이제 이 나라는 그 어리석음과 탐욕과 이기심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아니 노무현이 물러난 다음부터 이미 그 댓가를 치르고 있다.
노무현은 그의 말처럼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이 나라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너무 과분한 사람이었다.
그가 너무 보고 싶다…
7 thoughts on “누가 정치보복이라 하는가”
그의 희생이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 희생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또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주의 사람들은 더욱더 정치 불신이 깊어지고 있으며 투표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더군요…
역시 개 종자 들입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종자들은 멸종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개한민국40년 산 사람이 얻은 교훈이고 이땅에 결말입니다.
그리고 개한민국을 떠나야 하는 이유 입니다.
천민자본주의 개한민국…
요즘 노무현의 위대함을 세삼 느끼고 있습니다. 나도 똑같은 부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천박함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대단한 재능이지요. 사람들은 “탐욕”으로 묶어주니까요.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했어요.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루고 있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시작일 뿐입니다. 아마 이 세상은 더욱 가혹해 질 거에요. 저는 오마이뉴스의 뻔뻔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있어요.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오연호가 그의 칼럼에서 노무현을 비꼬던 일을요. 과연 그들이 비판하는 조중동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뭐 오마이뉴스 따위를 신경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만.
고맙습니다.
저는 먼 곳에 사는 동포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조국의 대통령이기에 당당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웠읍니다. 소요유님의 글을 우연히 오늘에야 보게 되었읍니다. 제마음 그대로 글로 씌여진 걸 보니 저만 그렇게 슬퍼한 것이 아니고 이렇듯 많은 분들이 느끼셨구나하고 위로를 받았읍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서는 참 민망스럽게도 슬퍼하는 저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았죠. 저는 그들이 이상했고 배신감마져 들곤 했읍니다. 예민해져서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경험을 했죠.
한편 그들이 제대로 모르기때문이니 탓을 하지 말자고 마음을 추스렸읍니다. 그래도 정말 서운합니다. 어찌 그리도 모른단 말입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저도 사실 노통이 돌아가시기전까지만해도 관심이 없는 아줌마였었죠.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시다니 너무 큰 충격이었고 저는 거의 본업을 하지 못한채 매일 자료를 찾아보고 그러다보니 매스컴에서 발표하는데로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의문사라고 결론을 내렸읍니다.
노무현대통령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저절로 우리 조국에 대한 현대사가 공부가 되었읍니다.
무지에서 올바른 인식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신 우리 노무현대통령님,
존경합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저도 미국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말 당당하게 미국 친구들에게 자랑했었습니다. 오히려 미국 보다도 우리나라가 더 부러웠었지요. 그때 미국은 부시라는 꼴통이 대통령을 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지금은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버렸네요. 지난 시절이 모두 꿈만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 사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홍경화 님처럼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분들이 있어 위로가 됩니다.
정말 우리는 너무도 훌륭하고 좋은 대통령을 가진 때가 있었습니다. 행복했었습니다. 그런 때가 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 생에서도 그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