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첫눈이다
첫눈은 설레임이다. 유난히 따뜻한 올 겨울은 첫눈의 설레임 대신 봄 햇살의 포근함만을 주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겨울이 큰 축복이지만, 때로는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하얀 들판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강원도 평창에서 올 겨울 들어 처음 눈을 보았다. 떡가루 같은 하얀 눈 위에 딸아이와 같이 누워 하늘을 보았다. 이제 여섯 살이 되는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은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첫눈이 내렸다
퇴근길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렸다
눈송이들은 저마다 기차가 되어 남쪽으로 떠나가고
나는 아무데도 떠날 데가 없어 나의 기차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커피 전문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나 배가 고팠다
삶 전문점에 들러 생생라면을 사먹고 전화를 걸었으나 배가 고팠다
삶의 형식에는 기어이 참여하지 않아야 옳았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누구의 발 한 번 씻어주지 못하고
세상을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워
삶 전문점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본다
청포장사하던 어머니가 치맛단을 끌며 황급히 지나간다
누가 죽은 춘란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선다
멀리 첫눈을 뒤집어쓰고 바다에 빠지는 나의 기차가 보인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미움이 끝난 뒤에도 다시 나를 미워한 것은 잘못이었다
눈은 그쳤다가 눈물 버섯처럼 또 내리고
나는 또다시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린다<정호승, 첫눈>
정호승의 첫눈은 설레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