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대한 가장 진보된 정의
미리내 님이 권해주신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를 읽었다.
사람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경지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의식 수준이 낮은 나의 처지에서 그런 내용들은 이해는 고사하고 범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신과 영혼과 종교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의문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깨달음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는 수많은 영혼들이 왜 가치있는지, 의식의 진화와 성장 단계가 무엇인지, 궁극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지향이 무엇인지, 왜 성인들은 용서와 사랑을 한결같이 강조했는지 이 책은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사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신의 본성을 설명해 놓은 부분은 그동안 내가 그 어떤 종교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가장 진보된 것이었다.
- 신성(Divinity)은 비선형적이고 불편부당하고 시비분별이 없으며, 편파성과 취사선택하는 편애를 넘어서 있다.
- 신성은 변덕스럽거나 분별하지 않으며, 추정적인 인간 감정들의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신성한 사랑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이다. 한계는 에고의 귀결이다.
- 신의 정의는 신성의 전능과 전지의 자동적 귀결이다. 신은 ‘행’하거나, ‘작용’하거나, ‘원인’이 되지 않고 그저 ‘있을’ 뿐이다. 신성의 성질은 무한한 힘의 장으로서 방사되는데, 그 무한한 힘의 장에 의해 존재하는 전부는 있는, 그리고 되어 있는 ‘것’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렬된다. 각각의 영혼/영은 이렇듯 고유한 운명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수준을 향해 끌려가는데, 그것은 마치 바다 속의 코르크나 전자기장 속의 쇳가루의 움직임과 같다.
- 신성은 낮은 힘을 훨씬 넘어서 있는 무한한 힘의 고유한 성질로 말미암아 절대적 지배권이다. 낮은 힘은 위치성과 통제의 도구이며 유한하다. 힘은 무한한 세기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힘을 구할 필요가 없는 신성한 참나로서의 힘의 근원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 신성의 막강함과 전적인 현존 내에서, 존재하는 전부는 스스로를 정렬시킨다. 이 조정은 영적 선택의 귀결이다. 자유는 신성한 정의에 고유하다.
- 의식의 무한한 장으로 표현된 신성의 전지와 전능은, 실상을 가능성의 전 단계에 걸쳐 확인해 주는 의식 연구 측정 기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생각, 행위, 결정이 시간과 장소 너머에 있는 의식의 무한한 장에 각인된다. 이 각인에 의해, 정의가 보증된다.
<데이비드 호킨스,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pp. 152-153>
겸손한 삶, 내맡기는 삶,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삶, 결국 인류 역사상 모든 성인들과 스승들이 한결같이 가르쳤던 내용들이 진리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에게는 새로운 화두가 생겼는데, 그것은 환상으로 명명된 이 차원에서의 삶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성철 스님의 법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8 thoughts on “신에 대한 가장 진보된 정의”
저도 과거에 알 수 없이 느꼈던 허무가 왜 타당한 것인지 알게 되면서도 참된 신성에 줄맞춤으로써 얻어질 자유와 기쁨이 그 허무의 자리에 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게 됩니다. 덕분에 잘 정리된 요점을 학습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미리내 님 덕분에 제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너무나 높은 경지에 있어, 저 같은 범인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미리내 님과 같은 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 가지 가르침에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집착하지 말 것을 권하는데, 아직은 수양이 부족하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부도덕과 몰상식에 눈을 감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부조리가 진정으로 허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진화’라는 단어를 수식용으로 쉬이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그래도 오해만 받고 제대로 일반적 이해도 되지 않은 용어라 아쉬움이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원래 의미와는 거의 상관없는 뜻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구요. 그냥 발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될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책과 이 글 모두에서의 용례를 지적드리는 겁니다.
이 책의 번역본에서는 영적 진화로 되어 있습니다. 원서를 보지 않아서 저자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의미상으로 영적 ‘발달’보다는 영적 ‘진화’가 더 적합해 보입니다.
좋은 책인거 같네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아울러 좋은 블로그 알아가는거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호키스 박사의 “의식 혁명”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이 책은 그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의식 혁명을 읽으시면 이 책을 읽으시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