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시간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느라
어둠이 내 등을 물들이는 것도 알지 못했다
왜 노을은 떠난 자리에서 아름다운가
지나온 시간을 지우고 바라보는 하늘의 끝자락
천천히 떨어지는 시간이 나를 적신다
발끝에서부터 조금씩 차가워지는 하루
길을 가는 사람만이 노을 속으로 들어간다
삶을 떠난 사람들은 지는 해를 걱정한다
유목의 시간만이 그 불안을 멈출 수 있다
때론 흐르는 시간을 잡기 위해
유목의 계절은 연장된다
노을의 시간
떠돎의 언저리에서 풍경이 완성되고 있다
먼 데 하늘이 삭는 냄새가 난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끝끝내 아름다운데
왜 내 삶은 이토록 썩지 않는 걸까노을이 물에 잠기어 간다
강물은 멈추고 조금 남은 빛조차 얼어붙는다
내 몸이 풍경에 섞인다
여전히 내 등은 어둡고 삶은 온전히 싱싱하다<최규승, 노을의 시간>
최규승 시인의 첫 시집 <무중력 스웨터>를 읽었다. 그의 시는 배달된 안개로 가득찬 도회지에서 아파트와 병원을 지하철과 엘리베이터로 오가며 부딪히는 사람 혹은 사물들과의 주고 받은 사색의 편린들로 채워져 있다. 그 조각들은 그의 몸에 섞이거나 그의 변이를 주도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에 나오는 늘어진 시계를 보는 듯한 그의 시들이 안쓰럽다. 그가 조금 더 행복한 시를 썼으면 좋겠다. 그냥 나의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