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 사람들 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김남주, 오늘 하루>
김남주는 온유하고 순수했지만 강했다. 그는 시인이자 전사였고, 그의 시는 무기였다. 그의 <오늘 하루>라는 시의 마지막은 나를 참 아프고 부끄럽게 한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혁명의 미래를 꿈꾸다니.
왜 하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을 쉽게 데려가는 것일까. 학창 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시 중 하나도 김남주의 것이었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김남주, 사랑은>
부질없는 말이지만, 그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면. 그의 시가 우리의 부끄러움을 일깨운다면. 아, 김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