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끄럽게 만든 편지 한 통
작년부터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겨 다른 이들에게 매달 조금씩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 아이들 2명과 우리나라의 중학생 2명에게 용돈을 조금씩 보낸다. 그것을 신청할 때는 조금 신경을 썼었고,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왔을 때는 조금 흥분도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신용카드에서 매달 꼬박꼬박 자동 이체가 되기 때문에 나의 기부 행위를 내가 인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주 잊고 있었다는 얘기다.
오늘 내가 후원을 하는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가을날의 따사로운 햇살과 같이 잔잔하면서도 평온한 그 편지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 편지에는 온 가족의 일상이 다소곳이 묻어 있었다.
조금 나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얘기, 아이들이 새로 이사간 집을 좋아해서 친구를 데려왔다는 얘기, 텃밭에 채소를 심었다는 얘기, 그리고 아이들이 커나가는 얘기, 둘째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는 얘기, 막내는 누나들 때문에 여자에 대한 대한 환상이 깨져 여자친구가 없다는 얘기, 그런 이야기들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간간히 가슴이 멍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그 편지는 나를 한없이 행복하고 만들었고,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달에 몇 만원되지 않는 후원금을 낸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런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가 그 아이를 매일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후원금은 자동으로 이체되는데 내가 그런 행복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편지를 맺고 있었다.
여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저희 가족들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많은 용기와 힘을 주셨네요. 앞으로도 더 노력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보잘것 없는 그 후원이 민망했다. 나야말로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행복과 감동을 받은 것 아닌가. 그 어머니의 편지는 나에게 삶의 가치와 행복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남을 돕는다는 것,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감사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안다는 것. 그것만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없다. 오늘 나는 그 한 통의 편지로 무한히 행복했고, 무한히 감사했고, 그리고 무한히 부끄러웠다.
그 아이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커나가길 기도한다.
8 thoughts on “나를 부끄럽게 만든 편지 한 통”
언제인가 월드비전 후원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자동으로 후원되는 상황으로 인해 실제로 후원에 대한 진심 고민으로 탈퇴를 해버렸지요..차라리 땀흘리는 봉사가 낫겠다는…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 마음에 그들에 대한 감정이 없고 그들과의 관계에 진전이 없다면 그 행위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좋은일 하시네요^^
저도 지극히 적은 돈을 후원하고 있어서 이 돈이 모여서 후원이 될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매달 오는 편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지요. 그리고 그 나눔이 커져서 ‘나눔의 꼬리 물기 (Pay It Forward)’가 일어나면 분명 아름다운 사회가 될테구요. 그 출발이 소요유님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군요.^^
이 이야기 마음에 남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소요유님처럼 작으나마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핑계입니다만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라서 ……
혹시 가능하시다면 용돈정도라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실수는 있으신지요.
sleeepy 님 /
저는 월드 비전을 통해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http://www.worldvision.or.kr/
혹시 기독교계열이라 내키지 않으시면 유엔 기구인 유니세프에서 하는 것도 있습니다.
http://www.unicef.or.kr/
어느 단체든 자기가 하고 싶은 선택해서 후원을 하시면 됩니다.
네
정말 고맙습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