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10] 용서의 언덕
길은 생장을 떠난지 닷새만에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에 닿았다. 팜플로나를 지나자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밀밭이 펼쳐진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푸른 빛 하늘과 미야자키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흰구름들이 조화롭다. 밀밭을 지나 저멀리 언덕에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곳이 페르돈 고개, 용서의 언덕이다.
순례길 초반에 “용서의 언덕”으로 이름지어진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자 자비이며, 용서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고,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하는 수행이다.
순례는 자기자신을 얽매고 옥죄고 짓누르는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하는 과정이다. 그 첫번째 열쇠가 바로 용서라는 것을 카미노는 가르쳐 준다. 에고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참나를 찾아 가는 것이 바로 순례이다. 용서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 한없이 기쁜 것은 저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용서가 저절로 찾아올 것만 같은 착각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이든 아니든, 용서의 언덕에서 누구든 얼마간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그 해방감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으로 이어지길 기도할 뿐이다.
용서의 언덕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서울까지의 거리가 새겨져 있다. Seul 9700Km. 그 현실감이 없는 거리 때문에 마치 서울이 요단강 건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서울에 남겨져 있는 그 모든 부조리함들을 용서의 언덕에서 용서할 수 있을까? 카미노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