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 음모론 (이하 삼성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중년탐정 제닉스 님은 태안 앞바다에서 직접 피해를 당한 어민들을 취재하고 “태안 사태는 조작이다”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이 주장하는 것은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고, 삼성호가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블로그계에서도 그 주장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민노씨 님은 “태안 음모론과 미끼질, 그리고 냄비근성”이라는 글로 논리적인 반박을 했다. 이어서 제닉스 님은 “태안 사태에 대한 관전 포인트”라는 글로 이 사건의 중요한 점들을 정리해 주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봐서는 정말 삼성호가 유조선을 고의로 들이받았는지 알 수 없다. 민노씨 님의 반박처럼 제닉스 님의 취재 결과가 말도 안되는 허황된 주장일 수도 있다. 피해 당사자인 어민들의 인터뷰만으로는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닉스 님의 문제 제기는 현재 상황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제닉스 님의 동영상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건 당일 삼성호는 남쪽으로 정상적인 항해를 하다가 갑자기 선수를 돌렸다는 것이다. 어민들의 주장으로는 그 운항행로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선수를 돌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방향도 육지 쪽이 아닌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바깥 바다 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수십 년 배를 운항해본 경험이 있는 어민들이 제기하는 의혹이다. 더군다나 배의 충돌 사고시 좌현과 좌현이 부딪혔으면 사고라고 할 수 있으나, 이번 경우에는 유조선의 좌현과 삼성호의 우현이 부딪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들어 어민들은 삼성호가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어민들의 주장들을 이 동영상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이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일리가 있는 얘기들이다. 더군다나 삼성호는 관제실로부터 충돌 위험을 수차례 통보받았으나 사건 당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선 통신이 두절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써 여러 개가 겹치고 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사고 선박의 선장을 비롯하여 사고 현장에 있었던 선원들을 철저하게 수사하는 길밖에 없어 보이는데, 정작 한달 동안 수사를 해 온 해경과 검찰은 공식적인 수사 발표를 하지 않았다. 환경연합의 성명서를 보면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태안해양경찰서(서장 최상환)는 1월 2일, 그 동안 진행해 온 서해 기름오염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수사결과를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결과는 충돌사고를 낸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 예인선단 선원 3명(2명 구속)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원 2명을 입건하고, 크레인과 유조선의 소유회사들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해경은 이와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조사 내용이 발표될 경우 증거인멸 등 수사에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는 검찰의 지휘가 있어 별도의 수사내용 발표 없이 사건 일체를 송치했다.
수사결과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생각한다면, 해경의 이례적인 수사결과 발표 거부는 국민적인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되도록 수사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고, 증거 인멸을 여지를 남길 만큼 그동안 허송세월을 했다는 것인가? 40~50만 명의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기름띠를 닦아내고 있는 동안, 경찰과 검찰이 한 일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아직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도리어 해경과 검찰이 앞서서 사고 책임자를 비호하는 행동 앞에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과 검찰은 삼성의 로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인가?, 환경연합]
상식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사고를 낸 당사자 삼성중공업은 사고가 발생한지 한달이 넘도록 사과는 고사하고 변명 한마디 없다. 이것을 수사한 해경과 검찰은 한달 동안 수사한 것을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고, 언론들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우리는 아직까지 이 사고의 전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삼성은 현재 청와대를 능가하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이다. 참여정부도 할 수 없었던 언론과 검찰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닉스 님의 동영상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피해당사자인 어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주장들이 허황된 얘기라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제닉스 님이 “태안 사태는 조작이다”라고 아주 강하게 단정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조작”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우리가 아는 정보가 너무 없다. 그냥 “의혹” 수준에서 주장을 해야 했고, 따옴표라도 써서 (조중동이 잘 하는 것 있지 않은가) 어민들의 주장을 전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제닉스 님처럼 발로 뛰는 블로거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 잘난 기자들도 하지 않는 일을 블로거가 하고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어민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아낸 것도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제닉스 님의 후속 보도를 기대해 본다.
수십만 명이 자원 봉사를 해서 태안 앞바다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 사고의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고, 삼성 측의 사과를 받아내야 하며, 어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보다도 후자가 더 요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답답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6 thoughts on “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언론이 데워주지 않으면 식어버리는 그들이기에 적절한 시점에서 제대로 불을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요유님의 글을 읽으니 제 글이 ‘비판’ 부분에 치중한 나머지 정당한 ‘평가’라는 부분에서 소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블로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수사관’이 되어 조사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을테지만, 최소한 이번 태안 사고의 경우에는 열혈블로거들이 그저 단편적인 인터뷰 몇개 만으로 총체적, 실체적 진실을 ‘확정’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닉스님께서 취재한 그 동영상을 어떤 방향에서 활용했어야 했어야 했는가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깊었습니다.
사건의 투명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삼성(중공업)의 보험상의 책임 뿐만 아니라, 그 후속 책임까지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여론을 각성하는 방향이 강조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아가, 조중동의 악질적인 프레이밍과 삼성과 이명박이 서로 어떻게 담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에 ‘방점’이 찍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깊었던 것인데요. 제 글도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습니다.
다만 ‘정황의 과장’을 들려줄 것이 당연한 피해 어민의 인터뷰만을 근거로 사안을 확대과장하는 것은 오히려 (이 문제가 제닉스님의 의도처럼 ‘음모론’으로서 공론화되었을 때) 블로그에 대한 평가저하 뿐 아니라, (공론화를 피하려는 삼성의 의도상 그럴 확률은 적겠지만), 명예훼손의 혐의마저 강해보입니다. 그랬을 때 공익과 ‘정당한 오해’ 가능성의 차원에서 제닉스님의 주장과 그 주장의 근거들이 위법성을 조각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문제제기와 그 문제제기가 완결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사례인 것 같네요.
저도 마음이 참 답답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음모론 논란을 보며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잘 정리해주신 것 같습니다.
검찰수사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미진한 수사’로 일관한다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가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http://www.soyoyoo.com/archives/286 : 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지난 글이지만 볼만한 글이라 추천합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