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소중하지만 참 어이없는
몇달 전 한겨레신문 어느 지방 영업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겨레21을 구독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기꺼이는 아니었겠지만, 도와주는 차원에서라도 구독을 했을 것이다. 대학시절, 그 용돈 궁하던 시절에도 “말”지를 몇년씩 보았던 내가 한겨레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겨레가 초심을 잃고, 그 논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구독하지 않겠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언제부턴가 한겨레는 “가재는 게편”이라고 조중동의 가재 노릇을 하고 있었다. 논조는 민노당에 가까웠지만, 언론 밥그릇 문제만 나오면 가재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의 말투를 문제삼기 시작했고, 몇몇 얼치기 진보들을 끌어다가 참여정부 공격에 열을 올렸다. 그런 한겨레가 조중동보다도 더 어이없을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만약 당신이 단 하나의 신문을 꼭 봐야 한다고 한다면, 아직까지도 나는 주저없이 한겨레를 택할 것이다. 한겨레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조중동문 같은 쓰레기 신문들과는 다를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최소한의 기대는 남아 있다.
한겨레는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을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보도하고 있다. 다른 모든 언론들과 포털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금, 한겨레만이 이 사건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경우 한겨레는 한국 언론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겨레의 노력이 삼성 비자금 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중하다. 칭찬해 주고 싶다.
하지만, 한겨레의 몇몇 기사를 보면 여전히 어이없기는 매한가지다. 여현호 논설위원의 “이명박이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라는 칼럼을 보면, 정말 몰라서 이렇게 쓰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이렇게 쓰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보다는 ‘이명박의 반대편’에서 이유를 찾는 게 빠를 것 같다. 단순화하면, 문제가 많다는 이 후보가 여전히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은, 그에 대한 불신과 불안보다 그 ‘반대편’에 대한 반대와 혐오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란 게 애초 차악(次惡)이 누군지를 찾는 일인 탓이다.
정말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명박보다 이명박 반대편에 대해 더 혐오할까. 모든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고 국민들이 이명박에 대해 신정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도 이명박을 지지한다면 그건 이명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명박의 의혹과 비리에 대해 신정아 보도의 10분의 1만 했더라도 이명박은 벌써 낙마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이 차악인가? 객관적으로 이명박은 최악의 후보다. 이명박은 이회창보다도 훨씬 질이 낮은 후보다.
여현호 논설위원이 이런 글을 쓰기 2주 전쯤, 나도 이명박의 지지율이 저렇게 높은 이유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내 글이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여현호 논설위원의 글보다는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의 논설위원이 일개 블로거보다도 분석 능력이나 문제 파악 능력이 떨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에 대한 심층 취재와 보도는 언론의 의무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온 사람에 대해 언론이 검증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나같은 블로거가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겨레는 진작 이명박의 의혹에 대해 사운을 걸고 취재를 했어야 했다. 적어도 한겨레가 조중동처럼 이명박에 줄을 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지금 한겨레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순발력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명박에 대해 철저히 취재하고 검증하길 바란다. 이명박의 지지가 높은 이유는 한겨레 같은 언론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분발을 촉구한다.
3 thoughts on “한겨레, 소중하지만 참 어이없는”
“국민들이 이명박에 대해 신정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도 이명박을 지지한다면 그건 이명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위 말씀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다만 유력대선후보인 이명박을 신정아보다 (마땅히)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국민들에게 조중동(문)이 지배하는 위장적이고, 기만적인 의식의 껍질이 너무도 견고해보입니다…
온라인만 하더라도 한겨레의 역할을 점점 더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프레시안은 ‘경영난’이라고 하네요.
강양구 기자의 글. http://tyio.egloos.com/3860110 혹은 http://tyio.egloos.com/3798453
이승환님의 글 http://realfactory.net/tt/475
노바님의 글 http://nova.tail9.com/294
포털은 ‘연예인 신변잡기’에 몰두하고 있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