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외할머니

열평 남짓한 병실에 여덟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에 누운 노인들의 절반은 의식이 없었고, 나머지 절반도 거동할 수 없었다. 희미한 전등 아래, 노인들은 모두 초췌하고 힘들어 보였다.

외할머니는 병실 문에서 두번째 침대에 누워 계셨다. 할머니의 얼굴과 몸에 여러 가지 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산소가 맹렬히 주입되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호흡은 힘들었고 맥박은 불규칙했다.

젊은 의사는 할머니가 오늘밤을 넘길 수 없으니 준비를 하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병원에서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기계를 동원해서 강제로 숨을 쉴 수 있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히 얘기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가 눈을 번쩍 뜨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동공은 이미 빛을 잃고 있었다.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어렸을 적, 외가는 대도시 시내 한복판 산동네에 있었다. 시외버스를 내려 시장을 지나고, 고불고불 산동네 골목을 통과하면 언덕배기에 외가가 있었다. 그 집에는 깊은 마당이 있었고, 나무들이 울창했다. 산림청에 오래 근무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멋진 나무들을 많이 키우셨다.

외가는 낡았지만 서너 채의 건물이 있었고 작은 방들이 많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그 방들을 이용하여 하숙을 하셨다. 외가에는 언제나 젊은 하숙생들로 북적였고, 생기가 넘쳤다. 할머니는 그 집에서 7남매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호탕한 여장부셨고, 음식 솜씨는 거의 인간문화재 급이었다. 잔치를 하면 그 산동네 사람들을 죄다 먹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떡과 한과, 그리고 누룩술의 달인이셨다. 언젠가 한 번은 할머니가 선짓국을 해주셨는데 생전 처음 먹어 보는 것이었지만,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할머니는 동네 친구들과 화투놀이를 즐기셨는데, 때로는 밤을 새기도 하셨다. 사람들은 화투놀이가 치매예방에 좋다고 하지만, 지나친 화투놀이는 노인들의 관절에 치명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는 관절에 이상이 왔고, 거동이 불편하게 되었다.

외가가 있던 그 산동네도 도시 계획에 따라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낡았지만 운치있었던 외가도 절반이 개발 구역에 들어 집가운데로 도로가 나고 말았다. 낡은 집들을 헐어내고, 조그마한 건물을 지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 집이 아니었다. 자식들은 그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 동네를 떠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두달이 되었다. 지금은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할머니도 안 계신다. 예전의 그 낡고 정겨운 외가도 사라졌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 외가에서의 추억은 오롯이 남았다. 흘러 갔지만, 그 아름답던 시간들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런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다.

할머니, 하늘 나라에서 평안하세요. 사랑합니다.

6 thoughts on “외할머니

  1. 글의 전개와 작법이 소설같네요. 소요유님 소설 쓰시면 좋은 작품 쓰시겠어요.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아거 님, 오랜만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제가 소설을 쓸 만한 재능은 없습니다. 그냥 잡문 정도를 끄적거릴 수준입니다. 고맙습니다.^^

  2. 오랜만에 블로그에 찾아왔더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소식이 저를 기다리고 있군요. 무심해서 죄송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제 외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신지 벌써 27년이지만, 외할머니의 모습과 목소리는 제 눈과 귀에 선합니다.

    늦었지만, 소요유님 외할머니의 영혼을 위해서 잠시 기도를 바쳤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3. 정말 오랜만입니다.

    소요유님의 삶 속에 외 할머님의 존재는 온전히 그대로인 듯 합니다.
    삶 속에 포함된 추억의 몫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일깨워 주는 듯도 합니다.

    현재란 생존과 결부된 어쩜 운명의 도구로서의 대리인인 반면
    미래 와 과거야 말로 삶의 주관 자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소유가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생존만을 으뜸가치로 여기는 짐승들과는 다르게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부가적인 특질적 소재일 수도 있기에
    좋은 세상이라면 더욱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나쁜 세상이라면
    경험하지 않았고 경험될 수 없는 미래까지도 더욱 아프게 각색될 수 있으니까요.

    님의 감수성이 읽어내는 곳곳에 정감 어린 애틋한 삶의 여운이
    마음속에 닿습니다.

    다만,
    한때는 무지로 박정희 재선에 투표했으며 그것이 양심의 박해 편임을 몰랐던,
    뻔뻔함과 야만에 무딘 자만이 당당히 경쟁력을 갖던 지난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으로
    님처럼
    양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직감을 지닌 자들이 감당할
    역사의 퇴행이 원망스럽답니다.

    ^!^ pine님이 또 계시더군요. 해서 25 덧됐습니다.

    1. 한때는 자신만만한 적도 있었고, 불온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삶이란 견디어내는 것이란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제는 역사의 퇴행에 대해 더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공포가 어디까지 가는지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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