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어가는 고향
어릴 적, 추석에 고향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고향가는 사람들로 꽉 들어찬 버스는 차리리 꽁치통조림이었다. 비포장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굽이굽이 달렸던 통조림 버스 속에서 고향은 여전히 아득했다. 서너 시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당도한 고향은 생기와 위안을 주었다. 시골이라도 북적거렸고, 명절 냄새가 가득했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했다. 고향을 지키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팔순이 넘거나 아니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많은 것이 편리해졌지만, 고향은 점점 소멸해가고 있었다. 뜨거운 가을 볕에 팔순을 넘긴 농부 몇이 밭에 엎드려 힘겨운 노동을 견디고 있을 뿐, 그 예전의 북적거림과 생기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면, 고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인들은 해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기력을 잃었다. 머리 맡에 한 바구니의 약봉지만이 그들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도 오래지 않아 떠날 것이다. 고향에는 빈집들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고, 논밭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할 것이다.
명절에 찾은 고향은 점점 사위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곧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사라질 것이고,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의 여운을 길게 남길 것이다. 고향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아련함을 추억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