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허지웅 씨와 고재열 씨의 “트위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재미있게 보았다. 이것은 기술결정론에 대한 전통적인 논쟁의 2010년판이라 할 수 있다. 트위터는 정보 유통에 대한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도구인데, 이 도구를 이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앨빈 토플러나 토마스 프리드만 같은 기술결정론자들은 기술의 발전(특히, 정보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그것도 유토피아로 말이다. 기술결정론자들의 장밋빛 환상이다. 과연 정보기술이 발전하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때문에 기술의 발전 자체가 세상을 직접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에 내재된 속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총이라는 도구를 발명했는데, 그 총이라는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죽이는데 사용된다. 총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사람을 살리는 수술을 할 수도 없다. 핵무기는 어떤가? 결국 기술에도 근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속성 또는 가치가 있다.
인류 역사 상 세상을 바꾼 기술이라는 일컬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금속 활자, 증기 기관, 인터넷 같은 것들이다. 이런 기술들이 사람들의 사용에 의해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던 속성이 발현되었고, 결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꾸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이다. 기술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아닌 사람이다.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는 것은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조직된 힘과 행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트위터나 블로그 같은 서비스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을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는 강력한 도구들이다. 때문에 지배계층은 인터넷이라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든 통제하려 한다. 인터넷이 권력의 분산과 이동에 도움을 주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깨어있는 사람들의 조직된 힘과 행동이고, 트위터는 그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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