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기어이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유시민, 기어이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낙선하고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감동적인 말이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밭을 잘 알기도 해야 한다. 밭을 잘 알아야 그 밭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계획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은 밭을 알아버렸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보름 전쯤에 나는 유시민에 대해 “희망을 주지 마라”라는 글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나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국민들이 그런 수준의 정치인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자격이 없다.

유시민은 김진표와의 단일화를 통해 경기도 지사가 되겠다고 했다. 어쩌겠는가. 기어이 희망을 만들어보겠다는데야. 말은 희망을 주지 말라 했지만, 유시민 펀드에 가입하고 경기도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극적으로 경기도 지사 선거의 야권 후보가 되었다. 물론, 김진표가 성숙하고 합리적이었기에 가능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노무현, 유시민 같은 정치인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돈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돈이란 것도 어차피 2% 정도의 강부자들이 가지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그 돈에, 그리고 아파트 값에 목을 매고 있다. 4대강 죽이기로 온 강산이 초토화되어도 이명박의 지지율은 50%가 넘고, 김문수, 오세훈은 유시민, 한명숙의 지지율을 넘어선다. 온갖 거짓이 난무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이 나라는 노무현 보다는 이명박이, 유시민 보다는 김문수가, 그리고 한명숙 보다는 오세훈이 더 어울리는 나라다. 부정할 수 있을까? 노무현을 그렇게 보내고도 부정할 수 있을까? 혹시 모르겠다. 서울시민들이, 경기도민들이 갑자기 정신 못차리고 한명숙, 유시민을 선택할 지도. 하지만, 그런 일이 진정 일어나겠는가?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는 사람들 천지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밭은 여전히 척박하고, 잡초들은 무성하다. 밭을 탓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역사든 국민 수준 만큼 간다. 유시민의 도전은 아름답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12 thoughts on “유시민, 기어이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1. 결국은 국민의 수준이나 자격 탓인가요? 정말로 실망스럽습니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필연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고려도 없이 국민이 자격도 없고 수준이 안된다고요? 남탓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실패자의 푸념으로 보입니다. 리더는 이끌어야 합니다. 모르면 가르쳐야 합니다. 소셜이던 블로그던 인터넷 신문이던 찌라시던 눈팅만 하다가 갑자기 댓글쓰게 만드시는 군요. 충격요법이라고 하더라고 이렇게 쓰시면 안되는 겁니다. 행동하지 않는 국민은 국민이 아닌가요? 혹시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과 헷갈리시는 것은 아닌지요. 잘못된 지도층에 의해 처절한 장애인이 된 국민에 대한 배려가 이 글에는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거룩한(?) 성인이 된 사례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대체 국민 모두가 먼저 성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국민에 대한 글을 이렇게도 무례하게 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저 같은 침묵자도 발끈하게 하려고 하시는 의도신가요? 그렇다면 저는 괜히 댓글단겁니다. 낚인 거죠.

    1. 이 글이 놀부 님을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글이 냉소적이고 위악적입니다. 인정합니다. 요즘 일부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못된 놈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도 힘이 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글도 썼더군요.
      http://www.soyoyoo.com/archives/747

      당분간은 이런 글들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적어도 선거 전까지는 말이지요. 선거 끝나면 기분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건강하세요.

  2. 소요유님 맘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가난한 서민의 딸로 나서 자라면서 작년 노무현대통령님의 죽음을 맞기전까지는 말씀하신 그런 국민중의 하나였답니다. 자기 살기 바쁘다고 관심없이 살다보니 정치인이란 그놈이 그놈이라는 속된 표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곤 했었죠.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의 분노와 억울함은 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처음엔 그분의 죽음에 대한 기사에 대한 너무 많은 의문때문에 인터넷을 떠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친일파들의 정체도 알아버렸고 거대한 매트릭스속의 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시민이란 존경할만한 정치인이 있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고…..
    문제는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남편을 비롯하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그 프레임에서 살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비록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답답하기만 해도,
    우리 국민들이 선택한 노무현대통령이 존재했었던 대한민국이라는 위안, 이런 인터넷 소통의 장이 있다는 것, 소요유님같은 분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1. 오월의 노래 님, 고맙습니다. 제 블로그가 님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저는 행복합니다.

      노무현이라는 횃불을 짓이겨버린 사람들이 밉습니다. 그들에게 빛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노무현이라는 불이 꺼지자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그 어두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밉지만 불쌍하기도 합니다.

      유시민이 조그마한 불씨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를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2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날이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희망과 절망을 나누는.

      건강하세요.

  3. 노무현은 국민이 죽인 겁니다.
    국민은 언제나 용서받는 존재일까요?
    국민은 개인이 아닌, 나라에 속한 집단입니다.
    놀부님께서 시스템이라 하셨는데,
    국민이 죽였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국가시스템을 말하는 겁니다.
    스포츠광팬으로, 때로는 외국인혐오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금모으기도 하고요…
    삼성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
    애플은 외국기업, 삼성은 우리나라 기업…
    이런 생각, 진보언론이라는 경향, 한겨레에서 자주 봅니다.
    한국은 조선에서 경향까지 결국 모두 국민신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집단 움직임에서 빠지겠다고 하면
    넌,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면서 욕합니다.
    심지어는 이 나라를 떠나라 그렇게 외국이 좋냐? 합니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동참하고 안 하고는 각자가 판단할 일인데 말이죠.
    그런 집단의 가장 큰 형태가 국민이겠죠.
    지구인이여 뭉치자! 이런 건 아직은 개그니까요.

    국민에 속한 개인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집단,
    국민이라는 시스템을 못 믿는 겁니다.
    국민을 욕하는 것이 사람을 욕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 국민이란 생각을 버린 지 오랩니다.
    그냥, 이 나라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로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세금 꼬박꼬박 불만없이 냅니다. 세입자이니까요.
    투표도 열심히 합니다. 세입자이니까요.

    한때(2002년 겨울 이후 약 5년 동안)는 잠시 착각한 적도 있습니다.
    나도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하지만 그런 생각 접었습니다.
    아니, 생각을 접은 게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게 됐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이번 선거 때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입자로서 투표할 겁니다.

    국민, 정말 싫습니다.
    국민이신 분들은 저를 욕하시고 싶겠지만,
    국민이라는 집단 속에 숨어서, 그 시스템으로 욕하지 마시고
    그냥 한 사람으로서 욕해주십시오.
    그런 욕은 가슴 아프도록 듣겠습니다.

    1. 저도 삐삐 님처럼 착각을 한 적이 있었지요. 이 역시 노무현 때문입니다. 노무현 때문에 희망을 보았고, 우리도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요. 지금 보면 참 부질없는 희망이었습니다.

      저도 님처럼 이 나라에서 희망찾기를 거의 접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정신 못차린다면 미련없이 접을 생각입니다.

      이 정도 상황에서도 노예로 살겠다고 한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족속들일테니까요.

      건강하세요.

  4. 제가 이해를 잘못한 것일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국민들의 수준이 아직은 높지 않아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것이다 정도로 이해를 했습니다. 노무현, 유시민 같은 정치인을 만들기에는 시민사회의 수준이 그 정도가 아니다 정도로 말이죠.

    전 약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선택을 한건 아닐까요?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보았듯이 토건형 CEO를 대통령으로 뽑고 80년대의 민주투사들 다 떨어트리고 현실성없는 뉴타운 공약이나 남발하는 한나라당 후보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든것은 ‘부동산 가격’과 토건위주의 경기부양을 원해서 그런 것이라고요. 민주주의는 독재정도만 아니면 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집값’이다. 뭐 이런 선택말이죠. 그리고 그 지지는 아직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하고 무한경쟁을 즐기며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그런 경제시스템을 선택한듯합니다. 그게 조금 피곤했던지 이번 지방선거에서 ‘복지’라는 말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긴합니다.

    1. veri 님과 저의 견해는 거의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택을 한 것이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 국민들에게는 민주주의 보다는 아파트 값이 더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노무현 보다는 이명박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기 때문에 괜히 유시민 같은 이가 헛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노무현을 기점으로 신자유주의가 내면화되었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는 없구요, 신자유주의는 IMF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확산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천민 자본주의였으니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5. 시민이형 화이링~

    밖에서 볼짝시면,
    김진표씨,
    ‘뚝심’이 장난이 아닌 인물이라는 사실이 앞뒤로 드러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왜?
    모름지기,
    민주당이야말로
    김민새 같은 애들이 최고위원에다가 선거 머시기 저시기 한두 자리 하는 곳 아니겠슴까?

    요유형 건승하시길.

    1. 김진표 씨도 합리적이고 강직한 인물이라 판단됩니다. 대중성에 있어서 유시민에 미치지 못할 뿐 나머지 면에서는 유시민 못지 않은 훌륭한 재목일 겁니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이 중용해서 장관으로 쓰셨겠지요.

      제가 요유형이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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