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획을 긋는다는 것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최신작 <아바타>로 까칠한 천재 흥행 감독에서 스탠리 큐브릭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계보를 잇는 거장의 반열로 올라섰다. 민노씨 님의 말처럼 좋든 싫든 이제 인간들이 만들어낸 영화는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카메론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감독으로는 피터 잭슨 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나머지로 전락했다.
영화의 줄거리나 모티브가 새롭지는 않지만, 과문한 내가 보기에도 영화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완벽한 영상은 모든 반론들을 무마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완벽한 영상들의 흐름을 아우르는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의 한마디는 왜 이 영화가 걸작인가를 말해준다.
All energy is only borrowed and one day, you have to give it back.
영화를 보면서 내내 씁쓸했던 것은 자본의 폭력과 인간의 탐욕이 우주 저 편 판도라 행성만 파괴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한 탐욕과 폭력은 지금 여기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나비족은 판도라 행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 한반도에도 있는 것이다.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아바타>로 획을 그었고, 이 땅 한반도는 <4대강 죽이기>로 난도질당하고 있다.
4 thoughts on “아바타, 획을 긋는다는 것”
오랜만에 소요유님 글에 제 부족한 글이 링크 인용되서 반갑습니다.
올해 마지막날 마무리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고맙습니다. : )
‘아바타 이전 / 아바타 이후’는 독창적인 인식/표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죠.
이것은 ‘시민케인 이전 / 시민케인 이후’를 이론적으로 ‘발견해 낸’ 위대한 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혜안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긴 합니다. ㅡ.ㅡ; 아바타든 시민케인이든 그 이후의 영화들에 지워지지 않을 레퍼런스를 남겼다는 점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이제 ‘레전드급’으로 등극(ㅎㅎ)한 것 같기는 합니다.
동시에 그 주류적인 기술집약적 영화들이 이른바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영화시장의 다양성을 (역설적인 의미에서) 축소하지 않을는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올 한해 개봉영화들의 박스 오피스를 잠깐 살펴봤더니, 100만 이상의 전국관객 동원 영화와 전국 1000개 이상 극관에서 개봉된 영화 수가 각각 40개 정도 되더군요. 이 영화들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영화에서 3D 혁명을 ‘완성’ 단계로 진입시킨 아바타는 당분간은 이 3D라는 놀랄만한 테크놀로지의 유행 속에서 ‘작은 영화들’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나 미국 헐리웃 외 환경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은 더더욱 그런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죠. 최소한 3D기술이 어떤 감독이나 그 선택에 따라 활용가능한 기술은 현재로선 전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헐리웃 기술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에서 말이죠.
아무튼 아바타는 ‘위대한’이라는 수사에 거의 근접한 영화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론 합니다. 그 여파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그리고 영화의 서사, 구성 역시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카메론의 역량을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압도적인 영상을 완성해냄으로써 다른 차원의 질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야오의 생태주의, 반인간주의, 판타지, 도약과 뜀으로 형상화되는 막연한 희망의 이미지들은 이제 그 질감을 달리하면서 아바타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쓰다보니 어쩐지 글이 길어졌네요…. : )
소요유님 새해에는 한번 뵈어야 할텐데 말이죠. ㅎㅎ.
이 이야기한지도 꽤 된 것 같습니다. ^ ^
시각적으로 가장 현란한 영상들을 모범적으로 버무려낸 <아바타>는 말씀하신대로 헐리우드 영화의 전형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다른 감독들이 카메론의 수준에 범접하는 블록버스터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민노씨 님의 우려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민노씨 님,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글 그리고 활발한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민노씨 님 블로그의 애독자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구요. 🙂
두 분과 같은 영화를 거론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연초에 와이프랑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제게 가장 일감으로 다가온 것은 미국인의 의식에 변화가 올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람보류의 제국주의로서의 거만함을 스스로 경멸할 수 있는 영화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자원을 놓고 원주민을 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침략을 행하는 제국주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원주민의 힘에 패퇴당한다는 메시지는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카메론 이전과 이후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줄거리 얼개는 <포카혼타스>나 <늑대와의 춤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비판자들은 역시 나비족에 대한 구원이 역시 제이크라는 백인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 역시 <포카혼타스>나 <늑대와의 춤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헐리우드 영화의 근본적인 한계일 수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도 이런 비판을 미리 예견한 것 같았고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때문에 주인공 제이크를 장애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이런 비판을 비켜가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영화사에 남을만한 역작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