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서 온 바람에 모래가 실려 왔다. 사람들은 황사라고도 했고, 흙비라고도 했다. 숨쉬기가 버거웠고, 목이 아팠다. 모래알갱이가 서걱서걱 씹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봄을 기다렸지만, 봄은 황사에 밀려 쉬이 오지 못했다.
서걱거리는 황사 속에서 왜 자꾸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끝없는 이기심들의 암묵적 합의로 태어난 거짓의 향연 속에 사막의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후회가 부질없기는 하지만 때로는 뼈에 새기는 아픔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황사 속에 끝없는 폐허가 아른거린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황지우, 뼈아픈 후회]
모두 폐허다,
뼈아픈 후회, 너무 와닿네요…
황량하기 그지없는 이 모든것..
신문이나 온라인매체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란 표현을 읽으면..
아직도 그게 잘 실감이 나지 않곤 합니다.
추.
황지우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데요.
그의 산문(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읽으면서 이렇게 한국어를 감각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구사할 수 있구나 놀라웠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집은 ‘나는 너다’인데… 문득 그 시집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최근에 황지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하는 꼬라지를 보고…
아,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이 양반도 늙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 살면서 내가 인정한 세상의 두가지 진리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과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변하게 되어 있고,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뼈아픈 후회가 되는 것은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이 떠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