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김대중, 그리고 카르마
불과 석달 사이에 우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 두 명을 연달아 여의었다. 떳떳하게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고, 대통령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단 두 명의 정치인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서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이렇게 쉽게 떠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개된 일기 속에서 그는 적어도 5월 초까지는 소소한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김대중 대통령 마지막 일기 중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20년이나 어린 후배를 먼저 보내야하는 노 정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 같은 민초도 슬픔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그는 얼마나 비통했을까.
노무현은 유서에서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 두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 그렇게 떠나간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 그것은 그 두 사람의 운명뿐만이 아닌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이었다.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고 독재의 부역자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이 현실에다, 무지한 백성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팽개치는 상황에서, 운명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정치인의 목숨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곡했다. 감히 말하건데 노무현의 죽음을 그렇게 서럽게 울어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그 휠체어에는 KARMA(카르마)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이 민족이 지은 업보를 두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 지고 떠났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 민족의 카르마는 또 어떤 댓가를 요구할 것인가? 삼천리 금수강산을 내놓으라 할 것인가? 그 정도 댓가를 치루면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나 있는 것일까? 카르마에는 에누리가 없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의 이용호 화백은 “지팡이와 밀짚모자”라는 만평에서 이 세상을 떠난 두 정치인의 다정한 모습을 아련히 그려 놓았다.
© 미디어오늘 이용호 화백
슬픔은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