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꽃비

바람이 부니 꽃비가 내린다.

하얀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아름다운 것들은 머물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왔다가 그렇게 쉬이 떠나는 것.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간일 뿐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기억되지 않는 슬픔.

순간으로 존재하면 완전한 것이다.

 

4월 19일

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렸다.

닭공장 세상

닭공장 세상

옛날 닭들은 말이지, 양지 바른 뒷곁에서 유유자적하며 놀았어. 벌레 한 마리 잡아 먹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모래 한 알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 보고. 세상은 고요했고, 바삐 돌아가는 것은 없었어.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종종거리며 따라다니구. 가끔 시집 간 딸과 사위가 오면 제일 실한 놈이 잡혀서 털이 뽑히기도 했지만, 닭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었지.

요즘 닭들은 말이지, 공장에서 태어나고 공장에서 자라다가 공장에서 죽어 가지. 세상이 변했어. 모든 것은 돈과 경쟁으로 환원되어 버려. 닭들은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닭장에 갇혀서 하루 종일 인간들이 갖다 주는 사료를 먹고 살을 찌우지. 달걀을 낳게 하려고 잠도 재우지 않고. 30촉 백열 전구 밑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 병이라도 생기면 항생제가 기본이고,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이 돌면 그냥 산 채로 땅에 파묻어 버리지. 불과 30년 만에 세상은 그렇게 변했어.

그런데 닭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인간들도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지. 더군다나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닭공장 같은 학교와 학원에 가둬 놓고 숨도 못쉴 정도로 공부를 시켜. 사실 그런 것들을 공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말이야. 아이들을 시험 잘보는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인간들은 그런 것을 경쟁력이라고 불러.

이런 닭장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거야. 거의 매일 같이 떨어져 죽거나 죽을려고 마음 먹는 아이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는 세상이야.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자살은 아예 관심도 없어. 교통사고 같이 취급이 되거든.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죽고, 대학생들도 닭공장 같은 세상을 못견뎌 죽어 나가. 그런데도 인간들은 죽은 아이들의 연약함을 비난하거든.

세상은 닭들에게도 지옥이 되었고, 인간들에도 지옥이 되었어. 정말 돈만 잘 벌고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닭공장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는 있는 건지, 언제까지 이런 닭공장 세상을 견디며 살 수 있는 건지, 아이들을 닭공장으로 밀어넣는 부모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 어쩔 수 없는 건지.

이런 것이 몹시 궁금한 봄날 아침인데, 목련과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었어.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것이 이런 건가?

부음(訃音)

부음(訃音)

인간들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이후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고, 인간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려 말세인 세상을 구원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때때로 후세에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걸출한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인간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을 저주하여 죽였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꽃같은 젊은이들이 매일매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그들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젊은 시절, 기성세대들의 탐욕을 욕했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자 그들의 부모를 닮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말도 안되는 변명을 뇌까리면서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정글로 몰아넣었다.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 중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부터 죽어나갔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영화 제목으로만 의미가 있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보다 나이 어린 이들의 부음(訃音)을 받을 때만큼 고역스런 일이 없다. 그들의 죽음에 공범 아닌 공범으로 그리고 기성세대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만큼 불쌍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야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손으로 자기가 낳은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절망하여 세상을 뜨고, 부모들은 먼저 간 자식들을 생각하며 절망한다. 운 좋게도 아직 그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을 위한다며 그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절망의 악순환은 중단되지 않는다.

섬진강의 매화와 진해의 벚꽃이 만개하여 이 조그마한 땅 한반도에 온통 꽃향기 휘날릴 때에, 어떤 아이들은 어디선가 혼자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에 슬픈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손학규와 이광재, 기회주의자의 천국

손학규와 이광재, 기회주의자의 천국

적어도 이땅 한반도에서 역사의식이 있고 양심있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 한나라당(새누리당)에 몸담는 행위
  •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행위
  • 뉴라이트에 참여하는 행위

민주당 대표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서 3선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 지사 등 단물이란 단물은 모두 빨아먹고,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희망이 없자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민주당으로 날아온 철새다. 아주 거물급 기회주의자인 것이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있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아냥댔다. 손학규는 뉴라이트 창립 1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하여 “무능한 좌파 정권이 국민들을 좌절과 패배 의식 속에 몰아넣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민주당에 와서는 김대중 정신, 노무현 가치를 되살린다고 한다. 아주 대단한 기회주의자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기 그런 손학규를 간파하고 보따리 장수 같은 정치를 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이광재가 손학규를 공개지지하고 나섰다.

이 전 지사는 지난 17일 밤 강원 원주시 문막읍 취병2리 마을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희망대장정 행사에 동행해 “예측가능한 분이 대통령되는 것을 보고 싶다”며 손 대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전 지사는 “솔직히 손 대표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대통령 한 사람이 집권 5년 동안 나라를 거꾸로 가게 하고 못 바꾸도록 정말 예측된 미래가 중요하다”면서 “손 대표는 예전 어려운 시기에 민주화운동을 했고,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지사, 당 대표를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예측가능한 분이 대통령 돼야” 희망대장정 동행… 친노 분화 가속화, 경향신문>

노무현은 손학규를 보따리 장수라 비판했는데, 그를 20년 보좌했던 이광재가 손학규는 “예측가능한 분”이라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노무현의 무덤에 흙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 이광재.

나이가 들다 보면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게 된다. 안희정과는 다르게 이광재에게는 단심이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변절할 것으로 보았고, 기회주의자 면모를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노무현이 20년이 넘도록 주장했던 원칙과 상식의 그의 오른팔 이광재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못미쳤으니 말이다. 친노의 핵심이 배노(背盧)의 첨병으로 나섰다.

요즘 노무현을 지지했다라는 사람들 중에 손학규를 지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가짜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자다. 진짜 노무현 지지자들은 손학규를 지지할 수 없다. 가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손학규를 지지하는 것은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는 것이다.

손학규가 기회주의자란 오명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가장 빠른 방법은 정계를 떠나는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민주 세력 통합을 위해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오로지 야권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때문에 손학규는 변절한 기회주의자일 뿐이고, 이광재는 배노(背盧)의 선구자가 될 것이다.

손학규가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 주자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된다 하더라도 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 사이비 기회주의자는 원조 기회주의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손학규를 지지한다는 것은 이 나라를 기회주의자의 천국으로 만들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5년 더 연장된 한나라당의 집권, 행복하시겠는가 아니 견딜 수는 있으시겠는가?

꺼지지 않는 불

꺼지지 않는 불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일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그로 인해 발전소의 냉각 장치가 고장났다. 냉각 장치가 고장난 여섯 개의 원자로는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고, 일본 정부는 이 원자로들을 식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본은 지진이나 해일로 인한 피해 복구보다도 이 원자로들이 폭발할까 그야말로 노심초사 하고 있다.

한때 원자력이 차세대 대체 에너지로 각광을 받았다. 물론, 지금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자력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고, 여전히 그렇게 쓰이고 있다. 체르노빌이나 쓰리마일 섬의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은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선전되었다.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우라늄 235의 반감기가 7억년 정도 된다. 인간들이 우라늄을 핵분열시켜 전력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한 번 가동된 원자로를 멈출 수가 없다. 원자로는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있다. 수명이 30~40년 밖에 되지 않는 원전이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있고, 핵연료들은 엄청난 방사성 물질들을 뿜어내고 있으니,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 보다 폐기가 훨씬 어려운 문제다.

만약 후쿠시마의 원전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면(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유일한 방법은 체르노빌 때처럼 콘크리트로 산을 만들어 그것들을 묻어버릴 수 밖에 없을텐데, 그 경우 그 지역은 인간을 포함한 어떠한 생물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사태에서 인간들이 뭔가를 깨닫고 배우길 바라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여전히 “경제”라는 잣대를 들이댈 것이고, 미래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나올 거라는 무대책적 낙관주의가 판을 칠 것이다.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탐욕의 기차는 브레이크가 없어 멈출 줄 모르기 때문이다.

끝이 어떨지 훤히 보이는데도 꼭 끝까지 가보겠다는 데에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욕망의 크기를 줄이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인간들은 가장 지능이 발달한 동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기도 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더이상 원자력이 답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있다.

별 일 없는 삶

별 일 없는 삶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자 지붕 위 고양이 두 마리가 아무 생각없이 낮잠을 잔다. 그 고양이들에게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배가 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잔다. 세상에서 잘난 고양이가 되겠다는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삶이 저 봄볕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만도 못한 세월이다.

2011월 3월 11일, 일본 북동부 센다이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났다. 엄청난 지진 해일이 일본 동쪽 해안을 덮쳤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온 마을이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고, 그 순간이 TV로 생생히 중계되었다. 지진에 익숙한 일본 사람들도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다.

지진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었고, 여섯 개의 원자로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만에 하나 이 원자로들이 폭발한다면, 일본은 물론, 북반구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 체르노빌 때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그런 참혹한 상황이 될 것이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폐가 걸려있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 일본 사람들은 지진과 해일의 피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건설해 놓은 원자로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들은 원자력이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이 있는 것인지 이미 60여년 전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는 국민들을 상대로 폭격을 하는 독재자가 군림하고 있고, 그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외세가 개입하였다. 물론, 그 외세들의 목적은 리비아 국민들을 구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원유라는 이권 확보에 있다.

최근 들어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봄볕 아래 아무 생각 없이 낮잠을 자는 고양이들처럼 욕망을 줄이면 줄일수록 별 일 없이 살 수 있다.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벌어지는 것들이다. 인간들의 탐욕이 자연이 허용하는 본능을 넘어섰기 때문에 발생하는 재앙들이다.

일본과 리비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도 아무 별 일 없는 일상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 자임하던 강금원 회장이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독설을 날렸다. 그 이후 친노를 표방하는 인기 정치사이트 서프라이즈에서는 운영자 독고탁에 의해 유시민 지지자들의 글이 삭제당하고, 아이피가 차단되었다. 참 서글픈 일이다.

어떤 노빠(라고 얘기하는 자)들의 주장처럼 노무현 지지자와 유시민 지지자는 분리될 수 있을까? 노무현은 지지하는데, 유시민은 지지할 수 없는 그런 진짜 노빠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 분열이고, 자기 모순이며, 결국에는 자신들이 진정 노무현 지지자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강금원은 의리의 사나이였다. 그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노무현이 떠나고 난 뒤 그의 가족을 챙기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것처럼 그는 노무현을 목숨보다 소중히 생각했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가,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는 그가 노무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완장질을 시작했다.

그가 유시민에 대해 친노라 하든, 반노라 하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에게 서운한 것도 있을 것이고, 안타까워 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을 친노라 하든, 반노라 하든 그것은 강금원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문제는 유시민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얘기할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 들였다.

친노 정당인 국민참여당이 있는데 따로 연구소를 차린 까닭은 무엇인가?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그래도 노 대통령과 유시민 전 장관의 관계는 김근태·정동영 전 장관과는 다르지 않나?

김근태·정동영과의 관계 이하라고 본다.

<“유시민이 친노라고? 이유를 모르겠다”, 시사IN>

여기서 강금원 회장한테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식이 있던 봉하에서 공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주는 그 동영상 말이다.

강금원이 개인적으로 유시민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알 바 아니다. 그리고 그 의견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개인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마시라. 그건 영원한 친구인 노무현을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인격자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노무현은 공개적으로 유시민을 인정했다. 유시민은 노무현의 가신이나 부하가 아니라 노무현의 모든 가치를 물려받을,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갈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때문에 유시민은 안희정, 이광재 하고는 다르다. 물론 강금원하고도 다르다.

만약 강금원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을 김근태나 정동영과의 관계 이하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노무현이 아니다. 나는 겉다르고 속다른 노무현을 알지 못한다. 그는 결벽증이 있을 만큼 수미가 일관된 삶을 산 사람이다.

강금원 회장에게 부탁한다. 자신의 의견을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입하지 마시라. 그것은 영원한 친구가 해야 할 도리는 아니다. 당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에게 보이는 그 의리는 언제나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노무현을 사유화 하지는 마시라.

유시민이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지 않는 한, 노무현의 유산은 오로지 유시민이 떠안을 것이다. 그는 단심이 있고, 총명하며,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무현을 사랑한다. 유시민은 언제나 노무현을 지지했고, 노무현은 유시민의 손을 들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강금원의 의견이 아니고, 노무현의 삶과 의지이다.

죽은 친구의 이름에 침을 뱉는 사람은 영원한 친구가 아니다.

<500회 특집 인터뷰> 소요유를 만나다

<500회 특집 인터뷰> 소요유를 만나다

소요유 블로그가 블로그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9월 26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5개월 전의 일입니다. 길다면 긴 시간인데, 그 기간동안 소요유 블로그에는 제법 많은 글들이 올라왔고, 이제 500번째 글을 올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500이라는 숫자가 아무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500회 특집 인터뷰 “소요유를 만나다”를 준비했습니다. 이건 그냥 재미로 하는 겁니다.^^ 사회자: 요즘은 SNS의 돌풍으로 블로그가 한풀 꺾인 모양새입니다. 예전과 같은 블로그계의 활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젊은 세대들은 긴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블로그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소요유: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이 블로그는 인터넷 상에서 소요유의 정체성을 가감없이 보여 줍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저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노닐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여기에 글을 쓰면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가끔은 이름모를 벗들도 들러서 한 마디씩 거들어 줍니다. 저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계정을 갖고 있지만, 많이 사용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남의 집에 와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내 집입니다. 아무리 초가삼간이라지만, 내 집이 제일 편한 법이지요. 아마 별 일 없으면 이 공간은 제가 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남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자: 예전에는 글을 꽤 많이 썼는데, 최근에는 글을 자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요유: 바쁘다는 것은 물론 핑계구요, 예전과 같은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글을 쓸만한 얘깃거리도 마땅치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오랜 기간 침묵했었고, 이명박 패거리들의 얘기는 더 이상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얘기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언제였던가 뜨거운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시 구경꾼이 된 거고, 비겁해진 겁니다. 하기야 저는 늘 주변인이었기 때문에, 다시 구경꾼이 되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네요. 원래 구경꾼이었던 것 같군요. 사회자: 소요유 블로그의 중요한 얘깃거리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노무현에 대해 왜 그리 지독하게 천착하는지요? 소요유: 이 땅 한반도에 역사가 생기고,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처음이었습니다. 바로 그 역사의 순간에 제가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농민의 아들이 정의와 상식, 그리고 원칙을 부여잡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반만 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 한반도에서 처음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나라에 어찌 그런 사람이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불가해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신화가 되어버린 거지요. 그 이름은 주홍글씨로 제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를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회자: 노무현이 무슨 예수라도 되는 듯이 얘기하는군요. 그렇다면 신은 존재합니까? 소요유: 대부분 종교에서 흔히 얘기하는 그런 천지를 창조한 아버지 같은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킨스의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신은 존재합니다. 이 세계 만물의 모든 개별성이 사라질 때 남는 것이 신입니다. 신은 세상의 창조자도 아니며,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신은 의지도 없고 욕망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할 따름입니다. 신은 언제나 일인칭입니다. 사회자: 소요유의 정치적 좌표를 짐작해 보면 무정부주의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소요유: 노암 촘스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띄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누구의 지배를 받거나 누구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가 말씀하셨던 황금률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사회자: 예수를 자주 언급하는데, 혹시 기독교 신자인가요? 소요유: 어렸을 적에는 교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고 난 후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예수의 가르침을 저버린 건 아닙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면 오히려 교회에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 뿐입니다. 교회와 관련되어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일인데, 제가 다니던 조그마한 개척 교회 목사님이 어느 일요일 아침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몹시 가난했고, 나이가 많았으며, 건강도 좋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저를 밥상머리에 앉혀 놓고 다짜고짜 나중에 커서 목사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아무 영문을 모른 채 그냥 그러겠다고 얼버무리고 나왔습니다. 그 이후 얼마되지 않아 그 가난하고 늙고 병든 목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분은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일요일 아침의 밥상머리 대화는 일종의 유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대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목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회자: 소요유의 글을 읽어 보면, 불교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윤회를 믿나요? 소요유: 불교와 윤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입니다. 지난 번에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노숙자 한 분이 다가와서 윤회를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자기가 가르침을 줄테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더군요. 제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더니, 지금 아니면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느라 그 노숙자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영원히 잃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회자: 의학에도 제법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요. 소요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래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의학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고, 현대 의학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의학이든, 신학이든, 법학이든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얼핏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관념들은 그것들의 실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번민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차라리 모를 때가 마음은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사회자: 최근에는 행복에 대한 글들이 종종 보이던데,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소요유: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입니다. 특별해지길 포기한다면 그리고 그 포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랫만에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목이 너무 아프네요. 기침도 나구요. 쿨럭 쿨럭.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메일이나 댓글 주세요. 시간이 나면 대답해 드릴테니. 나이가 드니까 몸이 예전 같지 않구만요. 쿨럭 쿨럭. 사회자: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하지요. 아무튼 500번째 글 축하드리구요. 게으름 피우지 말고 꾸준히 블로깅하기 바랍니다. 소요유: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가 게으른 건 사실입니다. 그렇게 타고난 걸 어쩌란 말입니까?^^ 아무튼 모두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쿨럭 쿨럭.
삶에는 직선이 없다

삶에는 직선이 없다

지난 추석 물난리 때도 얘기했지만,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직선은 인간들처럼, 욕망이 본능을 넘어서는 탐욕적인 생명체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직선을 추구하는 인간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도 직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에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패가 없었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의 향기,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많이 실패해 보고, 많이 넘어져 보고, 많이 아파 보고, 시련을 겪어 보고, 그 시련을 이겨도 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은 깊어지고, 향기가 난다. 그러므로, 세상에 공짜는 없고, 삶은 공평하다. 누구나 어려움과 고난은 싫어하지만, 정작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면 그는 더 깊고 유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전직 교사이자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인 송인수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삶에 울림을 준다.

저는 인생에 직선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샛길로 새지 않고 직선으로 달려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 생에는 직선이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4대강을 다 펴면 아름답겠습니까. 곡선이니까 유장한 거지요. 유장하려면 깊이 있는 물이 돼야 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 통찰을 품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방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로를 선택하고 다음 진로를 찾을 때 지금 있는 길과 전혀 다른 쪽으로 점핑을 하는 게 아니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다음 일의 실마리가 찾아집니다.

[시사IN, “우리 인생에 직선은 없다”]

깊이있는 물이어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 때로는 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뒤돌아볼 줄 아는 삶, 때로는 더디더라도 더불어갈 줄 아는 삶, 그리하여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삶을 누리라.

설을 맞아 이제 11살이 되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딸아이가 알아 들을까? ^^

아내에게 ‘그남자’되기 프로젝트

아내에게 ‘그남자’되기 프로젝트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아내에게 ‘그남자’되기를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아내는 외국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연속극을 곧잘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을 즐겨보았다. 내가 이 연속극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순전 아내 덕분이다. 나는 사회지도층은 아니지만, 연속극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같은 짓은 곧잘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입술로 닦아주기 (불행히도 아내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아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엉엉 울기
  • 현빈이 불렀던 ‘그남자’라는 노래를 현빈보다 더 잘 부르기 (외모는 현빈과 비교할 수 없지만, 목소리와 노래를 그보다 낫지 않을까^^) 등등

이런 짓을 하면 아내는 좋아할까, 싫어할까? 아무튼 ‘그남자’ 노래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다. 고고씽~~~.

한 남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 남자는 열심히 사랑합니다
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남자는 웃으며 울고있어요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니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잔 웁니다

그 남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그 남자의 마음은 상처투성이

그래서 그 남자는 그댈 널 사랑했대요 똑같아서
또 하나같은 바보 또 하나같은 바보 한번 나를 안아주고 가면 안돼요

난 사랑받고 싶어 그대여 매일 속으로만 가슴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 그 남자는 오늘도 그 옆에 있대요

그 남자가 나라는 걸 아나요 알면서도 이러는 건 아니죠
모를꺼야 그댄 바보니까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보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니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잔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