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진보다?

나만 진보다?

최근 몇 달 동안 진행되어 온 진보세력들의 통합 논의를 지켜보면 과연 이들을 진보세력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5월 31일,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에 서명을 하고도 그 합의사항을 보란 듯이 팽개쳐 버리는 이들이 과연 진보세력일까?

진보라는 개념을 이념만을 가지고 재단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이념은 여러 가지 기준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며, 그 이념이라는 것이 고정불변도 아닐 뿐더러, 역사적으로 봤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손쉽게 배신했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열린 마음이고 겸손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다. 이런 덕목들이 결여된 사람들을 오직 이념이 좌편향되었다고 해서 진보세력이라 칭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고, 진보세력이 진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이른바 노심조)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신당의 일부 세력들은 진보통합의 검열자로 나섰다. 노심조가 슈퍼스타K2의 심사위원도 아닌데, 누가 진보인지 아닌지를 심사하고 있다. 특히, 유시민과 참여당에 대한 그들의 비토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보신당이 민노당과 분리되어 나갈 때, 그들은 한때 동지였던 민노당 당원들에게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였었다. 민노당은 노심조가 뛰쳐 나간 뒤 강기갑, 이정희 의원이 대표를 맡으면서 오히려 건강한 진보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존의 민노당의 문제는 종북좌파가 문제가 아니라 노심조로 상징되는 좌파기득권 세력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이 하나로 뭉치려는 움직임 속에서도 유독 진보신당의 노심조들만 유시민과 참여당을 비토하고 있다. 조직적 반성과 성찰을 하라는 둥, 반성에 진정성이 없다는 둥, 민노당과의 통합에 훼방을 놓지말라는 둥, 도무지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고 있다.

사실 정강정책만으로 진보신당, 민노당, 참여당을 비교하면 적어도 70~80%는 거의 동일하다. 진보신당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사회주의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것 같다)를 강조하고, 민노당은 자주를 중요시하며, 참여당은 노무현의 기본 철학인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 당의 지향점은 거의 유사하다.

이런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의 노심조들이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는 것은 그들의 열등감에 있다고 보여진다. 노심조는 노무현과 유시민이 인간적으로 싫은 것이다. 노무현의 후계자인 유시민이 싫은 것은 그들이 좌파 속에서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의 열등감과 질투가 유시민과 참여당을 밀어내는 기본적 동기인 것이다.

이제는 그들의 어깃장을 들어줄 인내심도 바닥이 났고, 현실적으로 시간도 없다. 조만간 버스는 떠나야 한다. 진보신당의 노심조들이 유시민과 참여당과의 통합을 끝내 함께 할 수 없다면, 그들은 5.31 연석회의 합의문부터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결정은 진보신당 대의원 총투표를 통해 5.31 합의문을 부결시키고, 진보대통합의 전선에서 빠져야 한다. 짐작컨데, 진보신당 당원들도 노심조들의 편협함을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이념만을 가지고 진보를 재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기회주의자들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을 솎아내지 않고는 진보가 진보할 수 없다.

지금은 열등감과 질투로 똘똘 뭉친 그리고 좌파 기득권만을 부여잡은 노심조들이 아니라 유연하고 건강한 진보로 거듭나고 있는 이정희와 유시민이 답이다. 이정희와 유시민을 중심으로 진보세력은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열린 마음과 겸손이 결여된 좌파는 진보가 아니라 그냥 좌파일 뿐이다. 그것도 찌질이 좌파일 뿐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기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기술

언제부턴가 귀에 몹시 거슬리는 단어가 있다. “재테크”. 재무 테크놀로지(Financial Technology)를 일본식으로 줄여서 부르는 말인 것 같은데, 한마디로 말하면 “돈 버는 기술”이란 뜻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일은 하지 않고 돈 놓고 돈을 먹겠다는 일종의 야바위 기술”을 의미한다. 2007년 말부터 세계 금융 시장에 위기가 닥쳤다. 미국발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Loan)이 문제가 되어 전세계 금융 시장을 강타했다. 물론 몇 년 전부터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되었지만, 미국의 부시 정권은 그것을 대응할 만한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금융 위기의 원인이 복잡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위기는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일은 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그 도둑놈 심보 같은 탐욕이 금융 위기의 근원인 것이다. 위기에 봉착한 각국 정부는 땜질식 처방으로 위기를 넘겨 보려고 안간힘을 쓰곤 있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는 한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같이 금융 시장이 완전 개방되어 있고, 외부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는 치명적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이명박 정권은 미국의 부시 정권에 버금가는 무능함과 무대책을 갖추고 있지 않는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시장이 도박장으로 변한지는 오래 전이다. 기업들에게 건전한 경로를 통해 자본을 대주고, 기업의 성과를 투자자들에게 나누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주식시장은 본말이 전도되어,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판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판국에 개미투자자라고 불리는 개인들이 이 판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실제로 연일 폭락하는 주식사장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불빛을 보고 달려든 불나비처럼 그들은 그렇게 스러지고 있다. 주위에 주식하는 사람들이 꽤 되지만, 그 판에서 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다. 돈 놓고 돈 먹기 판에서 개인들이 기관이나 외인들을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시중 서점가에는 “재테크”에 대한 책들이 널려 있고, 신문, 방송 등의 언론에서도 연일 현명한 “재테크”를 운운한다. 이런 식의 호객 행위로 아무 것도 모르는 개미들의 탐욕을 자극하여 판을 키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재테크”라고 불리는 것은 전형적 야바위꾼 기술이다. 지금의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누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그만큼 잃게 되어 있다. 아무런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치를 생산하려면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은 없고 앉아서 돈만 챙기려고 하니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테크”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며 사기다. 그리고 그 사기질에 대다수 개미들은 속고 있다. 물론 그 개미들의 탐욕도 사기꾼들의 탐욕과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금융 시장은 실물 경제의 보조적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실제로 가치를 생산하는 분야는 실물이고, 금융은 그 실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차원을 넘어, 실물 경제와는 무관하게 금융만으로 돈을 벌겠다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유행처럼 번졌던 “재테크” 열풍은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나는 “재테크”라는 말을 혐오한다. 인간들의 탐욕을 자극하여 종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하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속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개미들은 정신차리고 그 탐욕의 야바위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동안 그 판에서 많은 돈을 잃었다 하더라도 과거는 모두 잊고 빠져나와야 한다.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 길만이 살 길이다. 잃은 돈을 만회해 보겠다고 계속 기웃거리면 결국에는 파멸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확천금을 노리지 마라. 돈을 벌고 싶으면 일을 하라.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라. 행여 필요 이상의 돈이 모이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라. 그리고도 돈이 조금 남는다면 그냥 저축을 하라. 이것이 내가 가진 상식이다. 부디 많은 개미들이 “재테크”라는 허울 좋은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고, 상식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나가수> 감상법

<나가수> 감상법

이명박 정권 들어 뉴스를 비롯한 방송을 거의 보지 않았다. 정권은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했다. 언론이나 기자라 불리는 것들은 권력이 장악하기도 전에 그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것들의 야비함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으므로,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거들떠 볼 수 없었다.

그 와 중에 지난 몇 달간 유일하게 본방사수를 외치며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은 바로 <나는 가수다>이다. 일명 <나가수>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가수들의 공연을 5백명의 청중이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일종의 생존 게임이다.

<나가수>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는 황폐해진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의 대중가요계는 “아이돌”이라 불리는 수많은 그룹들에게 점령되었다. 아이돌들은 음악을 하는 가수라기 보다는 철저히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일종의 공산품이었다. 거의 모든 아이돌들은 가수가 아닌 만능 엔터테이너들로 키워졌다. 산업의 논리가 가요계를 점령해 버리자,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줄을 섰다. 다양한 가수들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꼭두각시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다시 일깨워준 프로그램이었다. 노래는 산업이기 전에 음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음악은 대중들의 삶과 사랑을 투영하며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난 몇 달 간 <나가수>는 수많은 화제를 뿌렸고, 사람들의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듣곤 했다. 아이돌 산업이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을 사막화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을 위로해 주는 노래와 가수들에게 목말라했다. 그것에 대한 반향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나타났다.

<나가수>는 일종의 생존 게임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경쟁이 있고, 순위가 매겨지게 된다. 함정은 여기에 있다.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나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청중들은 본질을 외면한 채 순위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순위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냥 흥미를 더하기 위한 곁가지일 뿐이다.

본질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들이 최선을 다해 그 무대를 준비하고, 노래하고, 청중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출연 가수들은 긴장도 하게 되고, 부담감도 갖지만 음악을 통해 청중과 교감하며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본질인 것이다.

<나가수> 출연 가수들에게 경쟁이나 순위는 별 의미가 없다. 그 순위라는 것은 단지 선곡에 따른 운과 청중평가단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설령 7위를 해서 탈락한다 해도 아무도 그들이 실력 때문에 탈락했다고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정을 즐기고 그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삶은 몇 등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단 <나가수> 뿐만 아니다. 학교에서건 사회에서건 순위는 결코 본질이 아니다. 그 과정을 얼마나 즐겼는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얼마나 행복했는가, 그로 인해 다른 이들도 행복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본말을 전도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위에만 관심을 갖는다.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삶의 모든 과정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모든 이들을 가치의 잣대가 아닌 존재로서 대해야 한다.

여러 말들이 난무하지만, <나가수>라는 프로그램는 충분히 지지받을만 하다. <나가수>가 아니었으면 임재범을 다시 볼 수 없었을 것이며, 박정현이나 김범수 그리고 YB의 노래를 6개월 가까이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소라의 소름끼치는 <넘버 원>을 들을 수도, 조관우의 <하얀 나비>를 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당분간 <나가수>는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 것이다. <나가수>를 통해 최고 가수들이 준비하는 최선의 무대를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통해 충분히 행복해질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친엄마 맞아?

친엄마 맞아?

암탉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기 알을 품어 새끼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목숨 걸고 양계장을 탈출해야 하는 이유였다. 암탉은 숲에서 어미 잃은 청둥오리의 알을 품었고, 청둥오리 새끼의 엄마가 되었다.

“친엄마 맞아?”

늪에서 살던 다른 짐승들이 수군거렸다. 암탉이 오리를 키우다니. 암탉은 하늘을 날지도 못했고 헤엄을 칠 줄도 몰랐다. 청둥오리가 크면서 배워야할 것들을 알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암탉은 친엄마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며 새끼 오리를 키웠다. 암탉에게 친엄마, 새엄마는 아무 의미없는 편견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을 단 하나 고르라면 그것은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는 생명의 기원이고, 세상을 유지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복제 동물을 제외하고 엄마 없는 생명은있을 수 없다. 엄마 잃은 새끼처럼 불쌍한 생명은 없다.

계절이 바뀔수록 청둥오리는 건장하게 자랐고, 암탉은 시름시름 야위어갔다. 암탉은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청둥오리는 누구보다도 높이 누구보다도 멀리 날았고, 자기 아비처럼 청둥오리 무리의 파수꾼이 되었다.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오리를 보면서 늙은 암탉은 행복했다.

암탉은 자신의 천적인 족제비의 새끼들에게도 연민과 사랑을 느꼈고, 급기야 자신의 몸을 양식으로 주었다. 그것은 비극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이었고, 세상을 지켜주는 행복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아직도 중년의 아들에게 “아가”라고 부르는 나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딸아이를 낳아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아내에게 바치는 예찬이었다.

엄마,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의 원천인 엄마.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 엄마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고, 붉은 노을의 흔적도 점점 사라지면서 땅거미가 내렸다. 작렬하던 태양의 뜨거운 빛이 사위어 가면서 바람이 불었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바람이 불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춤을 추었고, 숲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저수지에 갇힌 물들이 바람을 타고 내 앞으로 밀려왔다. 나는 한 포기의 들풀이 되었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바람이 부는대로 내 몸을 맡겨 버렸다.

바람 부는 한여름 밤에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앞산마루에 길쭉한 달이 떠올랐다. 바람은 달을 밀어 올렸고 별들을 은하수 너머로 흐르게 했다. 그 별들을 따라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이 흘렀다.

시간이 멈췄다. 바람이 불었지만 세상은 고요했다. 텅 빈 풍경과 함께 모든 욕망은 침잠했다.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아픔은 바람과 함께 내 곁을 떠났다.

바람은 누군가의 노래를 싣고 왔다.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의 노래가 들렸다. 세상에 온 이유를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그 원죄와도 같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

바람은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여행자들의 삶은 바람과 함께 번져 나갔다.

7월의 어느 밤에 바람이 불었다.

리더의 조건

리더의 조건

요즘 공부 꽤나 한다는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열에 아홉은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라고 답한다. 그냥 리더도 아니고, 글로벌 리더다. 확실히 우리가 어렸을 때와는 생각의 규모가 다르다.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면서도 왜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꿈을 꾸게 되었는지 개운치 않다.

<리더십에 관한 21가지 불변의 법칙>을 얘기한 존 맥스웰(John Maxwell)에 따르면, 사람들은 먼저 대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대신 대의를 전파하는 리더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리더가 얘기하는 비전을 따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리더는 좋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리더로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훌륭한 비전이나 대의명분을 제시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지식이 있고 비전이 있어도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은 늘 사사로운 이익에 민첩한 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리더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설령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여 리더가 된다 하더라도 기회주의자들의 밑천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기회주의자가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 조직은 금세 망가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기회주의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리더로서 받아들여질 것이고, 사람들은 리더의 비전을 따르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기 기회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일 뿐 지도자로 모시지 않는 것이 내 철학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들을 포섭의 대상으로 보았으나,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민초는 기회주의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다만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눈 앞의 이익에 민첩하기 때문에 이익을 앞세우는 세상에서 득세하게 되어 있다. 그들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저 압도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인물은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기회주의자가 아닌 리더가 되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다. 생각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다. 리더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면, 리더보다는 민초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꿈이 소박하면 할수록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장마철 블로그 새단장

장마철 블로그 새단장

비를 몹시 좋아하는 나도 몇 주째 계속되는 장마가 부담스럽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듯이, 아무리 비를 좋아한다 해도 일년 내내 햇빛을 볼 수 없다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모처럼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눈을 상쾌하게 한다.

지난 7월 4일에 워드프레스 3.2 “Gershwin”이 출시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물끄러미 창 밖에 내리는 비만 바라 보았다. 블로그에 들르지 않은지 오래 되었고, 스팸이라 불리는 광고 댓글도 제대로 치우지 않은 터라 새로 나온 워드프레스를 설치한다는 것은 게으른 나에게 몹시도 귀찮은 일이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불현듯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새단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나온 워드프레스 3.2는 PHP 5.2.4 이상을 요구했다. 리눅스에 설치된 PHP를 최신 버전으로 판올림하고 난 후 워드프레스 3.2.1 버전을 설치했고, 블로그의 겉모습도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2011”이라는 주제로 바꾸었다.

좋은 디자인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고급스러워야 한다. 새로 단장한 블로그가 마음에 든다. 아주 오랜만에 대청소를 한 느낌이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기도

기도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리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 나서, 식사를 하기 전에, 일을 끝마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위대한 자연과 어머니 대지와 나와 관계하는 모든 이들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리라.

늘 온화하고 겸손하고 충만하게 삶을 대하리라.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고 검박하게 삶을 누리리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예견하지 않고, 언제나 순간순간에 충실하리라. 분노보다는 용서로, 두려움보다는 자비로,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삶을 채우리라.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행복을 기원하리라.

식사 기도

이 음식을 주신 하느님(위대한 정령)께 감사드립니다. 곡식들이 자랄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니 대지와 힘든 노동으로 그것들을 거두어 주신 농부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음식들의 건강함이 우리 안에 하느님(위대한 정령)의 온전성을 가져다 주기를 기도합니다.

We thank Great Spirit for the resources that made this food possible; we thank the Earth Mother for producing it, and we thank all those who labored to bring it to us. May the wholesomeness of the food before us, bring out the wholeness of the Spirit within us.

<Native American, Prayer before eating>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5월은 푸르름이다. 산천초목이 새로운 생기를 얻어 푸르게 피어나는 계절. 5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가장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것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꼭 두해가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라지만, 때로는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사진만 보아도,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글만 읽어보아도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인다. 그를 추모하는 전시회에 가서 울지 않으려 했지만, 때로는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불과 2년 사이에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추모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과 죽음만큼 큰 간극을 보였다.

노무현을 탄핵으로 몰았던 민주당이 노무현의 맏상주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노무현을 경포대라 비난했던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가 되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부르짖고 있다. 노무현 생전과 사후에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이땅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이고, 노무현이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쉽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릴만한 유시민은 요즘 생전의 노무현 만큼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다. 그 이유는 생전의 노무현이 욕을 먹었던 이유와 같다.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무현을 보좌했던 이들도 유시민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노무현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인가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했지만, 그들의 비열함과 탐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유시민도 노무현 만큼 시달릴 것이고, 고통을 받을 것이고,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이 끝까지 노무현 정신을 놓지 않는다면, 노무현 지지자들은 유시민을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한번이면 족하다. 또다시 노무현 정신을 부여잡고 가는 이들을 노무현처럼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해마다 아름다운 5월이면, 광주와 노무현으로 세상은 슬픔에 잠길 것이다. 노무현을 가슴에 묻은 나는 해마다 5월이면,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을 통해 노무현의 부활을 꿈꿀 것이다.

울지 마라, 유시민

울지 마라, 유시민

간절함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쉽게 가면 좋으련만 애당초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은 가시밭이었고 돌밭이었기에 아무도 가려하지 않은 길이었다. 노무현이 그 길을 갔고, 이제 유시민 당신이 그 길을 따르겠다고 한 것 아닌가. 게다가 당신은 노무현이 못다 이룬 꿈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니 그 얼마나 고난의 길이겠는가.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뒤돌아 보면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당신의 선택 우리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간절함이 사무쳤지만 때가 되지 않은 것일 뿐. 옳은 선택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길을 유시민 당신이 앞장서지 않으면 누가 앞장서겠는가.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을 따르고자 했던 당신의 운명이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나 같은 이름없는 지지자들의 운명인 것을.

노무현을 지지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잘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에게서 제대로 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였다. 모두들 눈 앞에 이익을 쫓아 달려가는 세상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나선 그이를 보고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을 때 그 옆을 끝까지 지켰던 당신, 유시민. 이제 노무현이 떠난 세상에서 노무현의 부채를 탕감하겠다고 나선 당신.

강금원이 당신을 버리고, 이기명이 당신을 버리고, 이광재가 당신을 버리고, 서프라이즈가 당신을 버리고, 한때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하던 이들 모두가 당신을 등진다 해도 나는 당신 곁에 남을 것이다.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을 일으켜 세우고, 당신과 비를 맞으면서,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그 길, 당신과 함께 갈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해타산을 따지지만, 오늘 나는 유시민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노무현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한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당신 곁에는 노무현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노무현들이 있고, 수많은 유시민들이 있다.

울지 마라, 유시민!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마라. 오늘은 푹 쉬고, 새날이 밝으면 새날의 길을 가자. 그 길의 끝에서 우리들의 꿈이 영글고 있다. 노무현의 꿈이 영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