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책읽기

2012년 책읽기

작년 말에 아내와 딸아이가 1년 동안 읽은 책목록을 놓고 네가 많이 읽었느니, 내가 많이 읽었느니 하면서 티격태격 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내년에는 아빠도 끼워 달라고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두 여인네는 콧방귀만 뀌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끼워주든 말든 상관없이, 올해는 책을 좀 정리하면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무계획, 무대책, 무신경의 3무 책읽기에 변화가 있을런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연말에 아내와 딸아이 앞에 아빠의 책목록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두 여인네의 콧방귀뿐이겠지만…ㅎㅎ

2012년에 읽은 책은 다음과 같다. (이 목록은 책을 읽는대로 계속 갱신될 것이다.)

  1. 짚 한오라기의 혁명, 후쿠오카 마사노부, 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2011
  2.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우광호, 여백, 2011
  3. 달려라 정봉주, 정봉주, 왕의서재, 2011
  4. 경영이란 무엇인가, 조안 마그레타, 권영설 김홍열 옮김, 김영사, 2004
  5. 넥스트 소사이어티,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2007
  6. 내몸 사용설명서, 마이클 로이젠, 메멧 오즈, 유태우 옮김, 김영사, 2007
  7. 매니지먼트, 피터 드러커, 남상진 옮김, 청림출판, 2007
  8. 침뜸의학개론,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2
  9. 아파야 산다, 샤론 모알렘, 김소영 옮김, 김영사, 2010
  10.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A. G. 로엠메르스, 김경집 옮김, 지식의숲, 2011
  11.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오픈하우스, 2010
  12. 경락경혈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2
  13. 회남자, 유안, 김성환, 살림출판사, 2007
  14. 음양이 뭐지, 전창선, 어윤형, 세기, 1994
  15. 오행은 뭘까, 전창선, 어윤형, 세기, 1994
  16. 홍성수의 경영강의, 홍성수, 새로운제안, 2012
  17. 황제내경 소문, 이케다 마사카즈, 이정환 옮김, 청홍, 2001
  18. 황제내경 영추, 이케다 마사카즈, 이정환 옮김, 청홍, 2001
  19. 거꾸로 희망이다, 김종철 외 11명, 시사IN북, 2009
  20. 변산공동체학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윤구병, 김미선, 보리, 2008
  21.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민족의학연구원, 보리, 2009
  22. 서머힐, A. S. 닐, 이현정 옮김, 매월당, 2011
  23. 홀가분, 정혜신 이명수, 해냄, 2011
  24. 무경계, 켄 윌버, 김철수 옮김, 무우수, 2005
  25. 깨달음, 법륜, 정토출판, 2012
  26. 반야심경, 오쇼 라즈니쉬, 이윤기 옮김, 섬앤섬, 2010
  27. 선심초심, 스즈키 순류, 정창영 옮김, 물병자리, 2007
  28.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 이상호, 나무와숲, 2010
  29. 주기자, 주진우, 푸른숲, 2012
  30. 켄 윌버의 일기, 켄 윌버, 김명준 민회준 옮김, 학지사, 2010
  31. 빅 데이터 비즈니스, 스즈키 료스케, 천채정 옮김, 더숲, 2012
  32. 당신은 행복한가, 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류시화 옮김, 문학의숲, 2012
  33. 알기쉬운 반야심경, 송원 스님, 상아, 1993
  34. 사물의 민낯, 김지룡, 갈릴레오SNC, 애플북스, 2012
  35.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류시화, 문학의숲, 2012
  36.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2
  37. 노무현입니다, 정철 장철영, 바다출판사, 2012
  38. 경혈, 미카엘 하메스 외, 구성태 외 옮김, 한솔의학, 2011
  39. 병인병기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3
  40. 장상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3
  41. 빅데이터와 DBMS의 시장전망, 편집부, 하연, 2012
  42. 긍정의 한줄, 스티브 디거, 키와 블란츠 옮김, 책이있는풍경, 2009
  43. 우리 침뜸 이야기, 정진명, 학민사, 2009
  44. 우리 침뜸의 원리와 응용, 정진명, 학민사, 2011
  45. 베트남 견문록, 임홍재, 김영사, 2010
  46.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쌤앤파커스, 2012
  47. 순오지, 홍만종, 구인환 엮음, 신원문화사, 2003
  48.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이진원 옮김, 김영사, 2012
  49. 상처 떠나보내기, 이승욱, 예담, 2011
  50. 경험이 너를 만든다, 주디장, 이른아침, 2012
  51. 골프도 독학이 된다, 김헌, 양문, 2012
  52. 뜸의 이론과 실제, 김남수, 정통침뜸연구소, 2007
  53. 침뜸진단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4
  54.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정목, 공감, 2012
  55.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함유근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2012
  56. 면역 항염 야채수, 심재근, 건강다이제스트사, 2011
  57.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창비, 2012
  58. 1일1식, 나고모 요시노리, 양영철 옮김, 위스덤스타일, 2012
  59. 택리지, 이중환, 이익성 옮김, 을유문화사, 2002
  60. 나의운명사용설명서, 고미숙, 북드라망, 2012
  61. 빅데이터 혁명, 권대석, 21세기북스, 2012
  62. 빅데이터가 만드는 비즈니스 미래지도, 송민정, 한스미디어, 2012
  63. 100년 후에도 읽고싶은 한국명작동시,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 예림당, 2005
  64. 종교란 무엇인가, 오강남, 김영사, 2012
  65.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청전 스님, 휴, 2010
  66.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실천문학사, 1998
  67. 깨달음으로 가는 위빠사나 명상, 해공, 근원, 2012
  68. 나는 없다, 해공, 책세상, 2012
  69. 담배 가게 성자, 라메쉬 발세카, 이명규 송영규 옮김, 2009
  70. 처럼처럼, 최규승, 문학과지성사, 2012
가해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가해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2011년 12월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학생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그 학생을 괴롭혀온 가해자들의 만행은 세상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친구에게 욕설과 폭행은 기본이고, 심지어 물고문까지 가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가해 학생들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구속되었다.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 시절 받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3선 의원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5년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그는 이근안으로부터 한달 가량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김근태는 파킨슨병을 얻었고, 결국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를 고문한 이근안은 2000년에 체포되어 7년 징역을 살다가 지금은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군부독재의 원흉, 전두환은 여전히 주머니에 마르지 않은 29만원을 넣고 다니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집회가 열렸다. 지난 20년 동안 할머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들이 가슴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는 입장이고, 오히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검찰과 언론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의 집단 괴롭힘이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그 검찰과 언론의 뒤에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있고, 그 뒤에는 재벌이 있었다. 그들은 친일과 군부독재 그리고 기회주의라는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살려둘 수 없었다. 이명박은 여전히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이 나라 국회의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친일과 독재 부역 언론인 조중동은 여전히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학생들의 학교 폭력과 집단 괴롭힘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과연 학교 교육만이 잘못되어서 일어난 일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들은 기득권세력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수천억원의 부정부패를 일삼은 군부독재의 원흉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전직 대통령 행세를 한다. 민주운동가를 고문한 경찰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하고, 전과 14범 사기꾼에 속아 대통령으로 선출한 후 경제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아무 죄도 없는 전직 대통령을 검찰과 언론을 동원하여 여론재판을 한 후 끝내 죽이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네가 성공하려면 네 경쟁자들을 밟아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학교, 친구한테 맞지 말고, 먼저 때리라고 가르치는 부모, 가해자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친구를 밟아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정글보다도 못한 무한경쟁 시스템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목숨을 끊은 중학생은 잊혀질 것이며, 심성 착하고 가해자가 될 수 없는 또다른 학생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재벌과 한나라당, 조중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특권을 지켜나갈 것이고, 검찰과 경찰은 여태 그랬듯이 특권층의 주구 노릇을 할 것이다. 앞으로 노무현과 같이 정의를 목놓아 부르는 정치인을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나타난다 하더라도 또 죽임을 당할 것이다.

2012년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 따위는 별로 없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연민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연민

지난 번 중국 출장 때 우연히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갔었다. 단아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젊고 아리따운 여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었고, 식당 한켠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작은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 위의 가수와 무희들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고, 추지 못하는 춤이 없었다. 그들의 공연은 흥겨웠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먹먹함이 깔려 있었다.

북한을 지배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수천년 지속될 것 같은 그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너무나 공평하였다. 예수나 붓다 같은 성인들도,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도, 북한의 위대한 수령이라 불린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도 죽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아무리 엄청난 돈이나 권력이라도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무상해진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가 삶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인간들은 그것들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양 어제도 달리고 오늘도 달린다.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언젠가도 얘기했듯이,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봉건주의 국가다. 북한을 지배하는 권력은 김일성에서 아들 김정일에게로 세습되었다. 김정일이 죽자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이 권력의 후계자로 나섰다. 무늬는 인민민주주의이지만, 그 본질은 김씨왕조라고 할 만하다. 북한은 그들의 체제와 자주성을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그것이 북한 인민들의 현재 상태를 변명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김정일의 공개된 시신을 보면서 중국으로 외화벌이를 떠난 아리따운 북한 처녀들의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쓸쓸한 미소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 시선이 증오나 적대감이 아닌 연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한의 3대 세습과 남한의 친일독재세력의 권력 독점은 이란성 쌍둥이다. 남북한 민중들의 고난과 역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매트릭스를 어떻게 깨고 나오느냐, 아니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느냐가 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과 후계자 김정은의 등장은 북한의 인민들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남한 민중들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그들을 연민하고 스스로를 연민한다.

한반도에 봄은 언제나 올 것인가. 답답한 겨울이 가고 있다.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그래, 나 노무현 좋아. 난 자연인 노무현보다 남자다운 남자를 본 적이 없어. 나보다 남자다워. 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자가 다 됐어. 그 전엔 나도 부분적으로 찌질했어. 하여튼 난 그런 사람 처음 봤고 아직까진 마지막으로 봤어.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끼가 아예 삼년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김어준, 닥치고 정치, p. 299~300>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보다가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이명박 같은 자가 노무현을 죽일 수 있었을까. 이런 일은 영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이 빌어먹을 땅이 저주를 받긴 받은 모양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은행잎은 저리도 노랗게, 예쁘게 물드는데…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구르는 천둥이 남긴 말

구르는 천둥이 남긴 말

비를 내리게 하는 체로키 인디언 치료사 구르는 천둥(Rolling Thunder)이 남긴 말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기 때문에 늘 가슴에 담아두면서 되새기고 싶다.

삶의 가르침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서 진리에 대해 토론한다고 해서 진리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대는 삶 속에서 진리를 경험해야 하고, 진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 해도 진리를 깨닫기가 어렵다. 진리는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며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p. 54)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개인이나 정부도 사람들을 강제로 어떤 조직이나 체제에 들어가게 하거나 학교나 교회로 보내거나 전쟁터에 내보낼 권리가 없다. 모든 존재는 고귀한 것이고 또한 생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힘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곧 영적인 힘이다. (p. 264)

인간은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 오히려 대지가 인간을 소유한다. 어떤 사람은 문서를 작성해 자신이 그 땅의 소유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대지의 소유자가 아니며,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다. 대지의 소유자는 ‘위대한 정령’이며, 다만 우리에게 그 권한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대지를 보호하는 자이다. (p. 344)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지혜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들은 오래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이미 깨달은 사람들이다. 얼굴 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자 인디언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어 사라져 버린다.

몇몇 남겨진 인디언들의 잠언만이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과연 세상은 발전하는 것인가?

스티브 잡스 (Steve Jobs)

스티브 잡스 (Steve Jobs)

Steve Jobs
Steve Jobs (1955-2011)

세상을 바꾸려던 천재들은 늘 그렇게 일찍 세상을 등졌다.

오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가 만든 아이폰으로 그의 부음을 들었다.

명복을 빈다.

9월이 간다

9월이 간다

시인은 9월에 대해 이렇게 읖조렸다.

9월이 오면 강물이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 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남겨 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바람과는 달리 9월은 슬픔과 분노와 아쉬움만을 남긴 채 가버렸다. 일년 중 가장 풍성한 때인 한가위가 있었음에도 9월은 도무지 신명도 즐거움도 없이 그렇게 가버렸다.

추석 전 날, 아이들을 위해 늘 노심초사 봉사하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사악한 검찰 집단에 의해 구속되었다. 추석이 지나자마자 7개 저축은행들이 영업 정지를 당했고, 그 저축은행에 돈을 예금한 서민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추악한 권력 비리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민노당과 참여당의 진보 통합 노력이 좌절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꿈꿔왔던 대중적 통합 진보 정당의 출현이 불발된 것이다.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가 안쓰러웠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희망이 속시원하게 실현된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그런 바람과 희망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실현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바람들은 아름다운 것이고, 인간들은 늘 그런 바람과 희망이 실현되길 기도하는지도 모른다.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 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 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머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노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안도현, 구월이 오면>

9월이 가고, 10월이 온다.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방법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방법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주 귀하고 소중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농부는 그 씨앗이 너무나 소중해 몇 백년이라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대를 이어 가보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농부는 그 씨앗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그 씨앗은 서서히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씨앗은 생기를 잃었습니다. 씨앗은 너무나도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지만, 생명을 잃은 씨앗은 더 이상 씨앗이라 불릴 수 없었습니다. 농부도 그 씨앗의 존재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도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농부는 이듬 해 봄에 그 씨앗을 밭에 뿌렸습니다. 농부는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때론 날이 너무 가물었고, 때론 세찬 바람이 불었으며, 때론 억센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농부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씨앗이 죽지 않고 싹 틔우길 매일매일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씨앗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그 씨앗은 수천 아니 수만의 씨앗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비록 처음의 그 씨앗은 땅 속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그 씨앗과 똑같은 수천 수만의 씨앗을 얻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그 귀한 씨앗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그 귀한 씨앗을 받고 기뻐했고, 새봄이 어서 오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씨앗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란 씨앗입니다.

현역 정치인 중에 유시민과 이정희 만큼 노무현을 닮은 정치인은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노무현 정신”을 누구보다도 더 잘 꽃피울 사람들입니다. 나는 참여당 대표 유시민과 민노당 대표 이정희를 신뢰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당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노무현을 꼭 닮은 정치인들이 양당의 대표를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고, 많은 서운함이 있더라도 지금이 함께 할 기회입니다. 그 소중한 씨앗을 최소한 밭에 뿌려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통추 활동을 접고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하는 대목에서 3김청산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칙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전략적, 전술적 명제는 타협할 수 있다. 나는 ‘3김청산’이라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타협할 수 있는 전략적 명제라고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DJP연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념과 노선을 100% 순수하게 밀고가기는 어렵다. [중략] 정당에 대해서도 그렇다. 누가 주도하는지를 본다. 주도세력의 색깔이 그 정당의 색깔이다.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 총재로 결정된 이상 주도세력 문제는 정리가 된 것이 아닐까? [중략] 주도세력의 성격과 철학이 뚜렷하면 된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주도하는 정당이라면 그 당이 참여당이든, 민노당이든,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두 사람이 주도하는 정당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 살아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가 기독교를 창시하지 않았듯이, 노무현은 참여당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참여당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원이 주인이 되고 당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정당의 당원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서운해 했는지도 모릅니다.

손학규가 대표인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이 아닙니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년 두 번의 선거에서 그 민주당과 어떻게든 연합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무현 정신”을 실현해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통합된 진보정당이 필요합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하면, 민주당이 지금처럼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민주당은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불임정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함께 싹틔우고 꽃피울 통합되고 대중화된 진보 정당, 그 길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 길이 “노무현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고하고 올바른 길이라 믿습니다.

사위어가는 고향

사위어가는 고향

어릴 적, 추석에 고향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고향가는 사람들로 꽉 들어찬 버스는 차리리 꽁치통조림이었다. 비포장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굽이굽이 달렸던 통조림 버스 속에서 고향은 여전히 아득했다. 서너 시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당도한 고향은 생기와 위안을 주었다. 시골이라도 북적거렸고, 명절 냄새가 가득했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했다. 고향을 지키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팔순이 넘거나 아니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많은 것이 편리해졌지만, 고향은 점점 소멸해가고 있었다. 뜨거운 가을 볕에 팔순을 넘긴 농부 몇이 밭에 엎드려 힘겨운 노동을 견디고 있을 뿐, 그 예전의 북적거림과 생기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면, 고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인들은 해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기력을 잃었다. 머리 맡에 한 바구니의 약봉지만이 그들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도 오래지 않아 떠날 것이다. 고향에는 빈집들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고, 논밭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할 것이다.

명절에 찾은 고향은 점점 사위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곧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사라질 것이고,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의 여운을 길게 남길 것이다. 고향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아련함을 추억하며 살 것이다.

안철수 그리고 정치인의 조건

안철수 그리고 정치인의 조건

9월 초부터 몰아닥친 안철수 태풍이 박원순 변호사와의 단일화로 일단락되었다. 윤여준이라는 모사꾼과 언론이 부추긴 안철수 현상은 그의 권력 의지 부족과 준비 부족으로 일단 중단되었는데, 안철수 교수는 현 시점에서 아주 현명한 결정을 내린 셈이다.

안철수 교수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상식에 기반한 삶을 추구하는 인물로 능력이 뛰어나며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최근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의 청춘콘서트라는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

그의 평소 이미지로 봤을 때, 그는 정치인이라는 직업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그의 말투나 음성에서는 정치지도자 특유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다. 그에게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대학 교수라는 직업이 훨씬 잘 어울리고 잘 해낼 것 같다.

안철수 교수의 정치적 성향이나 좌표를 알 수 없는 현 시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나 지지는 유보한다. 그가 여태까지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은 산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정치인으로서 또는 지도자로서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처럼 젊은이들의 인기와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인물이 만약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른 정치인들처럼 그렇게 쉽게 밑천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신문방송에서 한 이야기들이 정말 그의 내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그를 지지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실망과 열패감을 느끼지 않도록 당당했으면 좋겠다.

안철수 교수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그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 물론 연막전술일 수는 있겠지만, 어떤 때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야권단일후보로도 나설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젠가도 얘기했듯이, 정치적 이념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요소다. 좌우 또는 보수 진보라는 정치적 지향을 확실히 드러낼 때 그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안철수 교수가 정치를 시작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지향 또는 이념이 같은 세력, 정당과 함께 해야 한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 단기필마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설령 당선된다 하더라도 시장이나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세력이고 안철수는 어떤 세력과 계층을 대변할 것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는 슈퍼맨이 아니다.

안철수 교수가 그의 말대로 역사의식이 있다면, 그는 이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대립과 갈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과 독재세력들이 특권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재벌, 언론, 검찰로 상징되는 권력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행위들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있어야 한다. 조중동, 한나라당, 그리고 뉴라이트가 어떤 족속들인지 그는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역사의식이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당연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어떤 식으로든 계승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에서 평가받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그럴 자신과 용기가 없을 때는 아예 정치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이 안철수 본인이나 안철수를 존경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

역사의식이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수구반동 기득권 세력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것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다. 안철수가 그 정도의 강단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안철수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0.1% 안에 드는 기득권층이다. 선량하고 유약한 기득권층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겸 학자가 사악한 조중동, 검찰, 한나라당을 이기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판단을 유보하지만, 사실 회의적이다.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정치에 뛰어들지 말고 차라리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남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그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나 여러 모로 유익하다. 그리고 절대 윤여준 같은 모사꾼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는 여우의 꾀를 가진 뱀과 같은 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안철수 태풍은 지나갔고, 안철수는 현명한 결정을 했다. 그가 여전히 많이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로 남았으면 한다. 정치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마저 기회주의자로 판명이 난다면 정말 많은 젊은이들의 배신감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

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