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치유

마하라지는 신이 베푸는 치유의 손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고통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것을 종식시키는 것도 인간의 능력 범위 내에 있습니다.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행위의 결과(업보)와 대면하게 하고, 균형을 회복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도와줍니다. 카르마(Karma)는 정의를 위해 작용하는 법칙입니다. 그것이 신이 베푸는 치유의 손길이지요.

<마하리지, I AM THAT>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그것만이 궁극의 치유일 것이다.

대선 그리고 매트릭스(Matrix)

대선 그리고 매트릭스(Matrix)

이번 대선 결과는 이 나라가 완벽한 매트릭스(Matrix)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Morpheus: Do you want to know what it is? The Matrix is everywhere. It is all around us, even now in this very room. You can see it when you look out your window or when you turn on your television. You can feel it when you go to work, when you go to church, when you pay your taxes. It is the world that has been pulled over your eyes to blind you from the truth.

Neo: What truth?

Morpheus: That you are a slave, Neo. Like everyone else you were born into bondage, born into a prison that you cannot smell or taste or touch. A prison for your mind.

지난 5년간 이명박 치하에서 안녕했듯이, 앞으로도 영원히 안녕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에게 니오(Neo)는 없다.

만트라

만트라

해공 선생이 제자들을 위해 만든 21가지 순수 진리의 만트라다.

  1.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는 본래 없다.
  2. 모든 것의 근원인 참나는 본래절대다.
  3. 실재와 허상은 하나다.
  4. 찾는 자가 찾고 있던 대상이다.
  5. 삶은 연기 법칙으로 저절로 펼쳐진다.
  6. 이 세상은 한바탕 꿈이다.
  7. 인생은 한 편의 코미디다.
  8. 참나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9. 오직 참나만이 존재한다.
  10. 현상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11. 보는 자는 없고 오직 봄만 있다.
  12. 현상적 무아가 절대적 진아다.
  13. 드러나도 하나, 사라져도 하나다.
  14. 있는 그대로 진리다.
  15. 내가 했다, 네가 했다 착각 없이 있는 그대로 보라.
  16. 나와 너는 대상이 아니다.
  17. 현상으로만 나와 너이지, 근원으로서의 절대는 그냥 하나다.
  18. 내가 곧 절대임을 확신하게 되면 개체로서의 연극은 끝이 난다.
  19. 깨달음은 개체적 자아가 본래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다.
  20. 파도치는 바다만 있을 뿐 파도는 없다.
  21. 항상 근원에서 전체를 통째로 보라.

<해공, 깨달음으로 가는 위빠사나 명상,  p. 279-280>

안철수 결산, 미완의 도전

안철수 결산, 미완의 도전

무소속 대선후보 안철수가 지난 주말 사퇴했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과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자,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사퇴를 아름다운 양보라 했고, 어떤 사람은 감동이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실패라 했다. 단일화 과정은 지리멸렬했지만, 안철수는 끝내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다.

안철수가 살기 위한 단 한 가지 선택지가 바로 사퇴였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결단의 순간에 그런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안철수 스스로 “영혼을 팔지 않았다”라고 했다지만, 그 결단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런 선례를 남겼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리고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지난 해 가을부터 안철수는 새정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사람들은 그의 착한 성공을 보면서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지, 대통령에 출마할지 많은 관심을 보였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출마하기도 전에 그는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른 바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었다.

두달 전, 안철수는 드디어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의 출마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새정치의 희망을 주었다. 이렇게 그의 시작은 희망이었고, 그의 사퇴는 감동이었다. 하지만, 지난 두달 간의 과정은 전략 실패와 역량 부족이었다. 박근혜와 맞서기 위해서 문재인과의 단일화는 예선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출마 직후부터 사퇴 직전까지 제대로된 전략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보다 훨씬 높던 그의 지지도는 두달 사이 많이 하락했다.

안철수는 조직이 없었기에 바람으로 승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그 승부를 뒤로 미루었고, 결국 제대로된 승부도 하지 못한 채 사퇴하고 말았다. 안철수가 처음부터 국민경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면, 그는 지금쯤 문재인 대신 박근혜와 대결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100만 국민경선을 하자고 한다면, 안철수는 1000만 모바일경선으로 맞받아했었다. 통크게 바람을 일으키면서 문재인보다 먼저 제안하고 민주당을 압박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전형적인 전략의 실패와 용기 부족이었다. 이러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그가 제대로된 캠프를 꾸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제대로된 사람들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캠프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정치 낭인들이었거나, 실제 정치 경험이 전무한 교수들 또는 전문가 집단이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제대로된 전략이 나올 리 만무했다. 안철수는 매순간 끊임없이 계산했고, 결정을 연기했으며,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목표는 명확하지 않았고, 색깔도 선명하지 않았으며,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도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외통수로 계속 몰아갔다.

안철수는 늘 새정치를 주장했지만, 그와 그의 캠프가 보여준 것은 전혀 새정치가 아니었다. 참담했다. 안철수가 새정치의 바람을 일으켰지만, 역설적으로 안철수는 그 새정치를 감당할만큼 역량이 되지 못했고, 준비도 부족했다. 그리하여 그의 도전은 두달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단일화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퇴함으로써 그는 희망의 끈을 소진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 긍정적일 수 없다. 그는 청춘의 멘토로 남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나는 독심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보인 행동과 선택으로만 판단할 뿐이다. 설령 안철수가 사람들이 얘기하는 충만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라는 것이 그 선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만약 정치인으로 계속 남길 바란다면, 그는 처음부터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량과 내공을 키워야 한다.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장삿꾼의 잇속을 버려야 한다. 계산하지 말고, 국민을 믿고 원칙과 상식을 부여잡고 뚜벅뚜벅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과연 안철수가 그럴 수 있을까? 그가 절실해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건투를 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사람을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

사람을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물론 아주 사소한 선택들도 있고 정말 중요한 선택들도 있지만, 그러한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우리의 삶을 완성한다.

이러한 선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 많은 지원자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배우자로서 지금 이 사람은 괜찮은가? 우리 모임의 회장은 누가 되는 것이 좋을까? 대통령 선거가 코 앞인데,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여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 특히 어떤 조직이나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선택할 때 적용할 만한 기준은 없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선택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 첫째, 이 사람의 삶의 궤적이 어떠한지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사람의 주요 선택들을 살펴 보는 것이다. 특히, 절박한 상황에서의 선택들은 대체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제시대에 일본군 장교가 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를 쓰고 입학하였다면, 그 누구도 이 사람을 민족주의자나 독립운동가로 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정권을 잡기 위해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민주주의자로 보지 않는다. 또,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탄압했다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를 독재자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이런 독재자의 공과 과를 나누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친일과 군사독재에 부역했거나 또는 그런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기준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한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특히 공허한 얘기들을 하지 않는다. 매일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뜬구름 잡는 얘기들만 하며, 증명될 수 없는 언술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기꾼이거나 기회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 후보가 매일매일 정치혁신을 주장하고, 새로운 정치를 해야한다고 말한다고 하자. 물론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그럼 당신이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가 무엇이요?”, 또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요?” 라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국민이 판단할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후보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정치혁신에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이 말만 이렇게 하고 돌아다닌다면 그는 가짜다. 사람은 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이(利)에 민첩한지 아니면 의(義)에 민첩한지를 살피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이인편에서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말을 남겼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조직이든 자기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조직의 장이 되었을 때, 그 조직이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이 퇴임 후 살 집을 짓기 위해 아들 명의로 땅을 샀다고 하자. 그리고 아들 명의의 땅을 싸게 사기 위해 경호처 지분을 비싸게 사려 했다면 아무도 이런 대통령을 정상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조그마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기의 아들과 자신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을 피의자로 만들고 범법자로 만드는 사람을 정상적인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은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이런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아니 참 쉽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콩이야 팥이야 얘기를 해 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준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를 저지른다. 자기를 객관화시키기가 말처럼 쉽지 않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면 이 글에서 얘기한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 보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후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에서 선택이란 일단 최악의 후보를 피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맥북에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맥북에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2006년 이후로 노트북은 계속 맥북과 맥북 에어만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에 몇 가지 이유로 맥북 에어를 다시 하나 구매했다. 맥북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다른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기 쉽지 않다. 단순하고 유려하며 견고한 하드웨어와 편리하면서도 진보된 그리고 아름다운 OS까지. 하드웨어와 OS가 원래 그런 것처럼 일체되어 있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것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시 Windows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맥북에 (익숙하지 않아) 거부감을 갖던 아내도 이젠 Windows 기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에 구매한 11인치 맥북 에어에는 2GHz Intel Core i7 CPU, 8GB 1600MHz DDR3 메모리, 128GB SSD가 장착되어 있다. 이 정도 사양이면 업무를 하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맥북 에어를 구매하고 다음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Google Chrome FileZilla Twitter Skype Daum Cloud avast! Free Antivirus CCleaner Battery Health TextWrangler VLC Flip4Mac Microsoft Office Adobe Acrobat Adobe Photoshop Hancom Office Hanword Viewer R RStudio
젊은 치매 급증, 올 것이 온 것인가?

젊은 치매 급증, 올 것이 온 것인가?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30대~50대에서 치매 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치매는 보통 노인층에서 나타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젊은 층의 치매 원인은 뚜렷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전적 요인, 심한 음주와 흡연 등에 의한 알콜성 치매, 뇌졸중 등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 그리고 알츠하이머 치매가 있다. 문제는 젊은 층의 치매 중 50~60% 이상이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알츠하이머 치매가 급증했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지난 5년간 젊은 층의 인구가 급격이 증가한 것도 아니고, 젊은 층이 음주와 흡연을 몇 배로 한 것도 아닌데, 젊은 치매 환자가 2배 이상 급증했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통계를 살펴 보자. 미국에서 1979년 알츠하이머로 죽은 사람이 659명인데, 2002년에는 58,785명이 같은 병으로 죽었다. 불과 24년만에 알츠하이머로 죽은 사람이 8,900%나 늘어났다.

알츠하이머와 인간 광우병은 증세로 보았을 때 매우 유사하다. 이것이 인간 광우병인지, 알츠하이머인지 확진을 하려면 죽은 사람의 두개골을 쪼개 확인해 보는 방법 밖에 없다. 예일 대학에서 알츠하이머로 죽은 환자 46명의 뇌를 쪼개 보았더니 그 중 6명이 CJD (Creutzfeldt-Jakob Disease)로 밝혀졌다. 즉, 알츠하이머로 죽은 사람의 13%가 CJD로 죽은 것이다. 피츠버그 대학에서도 알츠하이머 환자 54명의 뇌를 조사한 결과 5%인 3명이 CJD로 밝혀졌다.

미국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약 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럼, 최소로 잡아도 그 중 5%는 알츠하이머가 아니라 CJD라는 얘기다. 20만명 이상이 인간 광우병이나 그와 유사한 질명을 앓고 있다는 얘기다. CJD도 자연적으로 백만명 당 1명 발생하는 sCJD와 인간 광우병인 vCJD로 나눌 수 있는데, 광우병(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에서 sCJD나 vCJD 모두 발병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와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볼 때, 확진은 안 되었지만, 우리나라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 급증에는 일정 부분 CJD가 기여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가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2008년, 대한민국의 훌륭하신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민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이시고자, 30개월 연령에 관계 없이, 살코기뿐만 아니라 각종 내장과 뼈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시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 급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소비가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 급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근 4~5년 사이 이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도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재 이러한 추세를 막을 방법은 없다. 육식을 중단하고 채식주의자가 되면 이러한 위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독히 운이 좋기를 매일매일 기도하든지. 대통령 선거일에 놀러가지 말고 투표를 해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안철수 환상 깨기

안철수 환상 깨기

솔로몬 왕에게 두 여인이 와서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었다.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나누어 두 여인에게 반 쪽씩 나누어 주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다른 여자에게 주라고 애원하고, 가짜 어머니는 “우리 둘 가운데 아무도 그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그냥 나누어 달라”라고 말한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어 아이를 돌려주었다. 구약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유명한 솔로몬 재판에 관한 이야기다.

안철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르다. 그는 영악하며 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고, 자기가 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단일화에 쉽게 응할 이유가 없다. 그의 목표는 정권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솔로몬 재판에 나오는 가짜 어머니다. 아이가 둘로 나누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자기의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문재인이 포기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이 포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철수는 아쉽거나 답답할 것이 없다. 어차피 아이는 둘로 나누어질 것이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플랜 B로서 나쁠 것이 없다.

안철수는 역사의식도 없고, 정치에도 문외한인 데다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눈곱만큼도 기여한 바가 없다. 더구나 그는 이 나라의 0.01% 안에 드는 특권층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 부역했던 사람이고, 그의 정치의식도 이명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철수 뒤에 이명박이 있다고 얘기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서민을 위해 또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권교체에 앞장서길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김칫국을 마시는 일이다. 그는 떡 줄 생각이 전혀 없다.

안철수는 연일 정치혁신을 주장하지만, 그건 그냥 해보는 이야기다. 구체적 각론에 들어가면 알맹이도 없고, 핵심을 찌르지도  못한다. 고민과 관심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밑천도 떨어진 데다가 언론 플레이로 만들어진 안철수 환상이 깨지기 때문에 토론을 기피한다.

문재인의 상대는 사실 박근혜가 아니고 안철수다. 그가 어떻게 해서든 안철수를 단일화 협상에 끌어들여 그를 주저앉힐 수만 있다면 문재인은 노무현의 유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문재인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권교체를 원하면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영악한 안철수도 국민을 두려워할 것이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안철수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진정한 정치혁신을 원한다면 우선 정권교체부터 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외면하면서 정치혁신을 외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벼락처럼 쏟아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절망을 대하는 자세

절망을 대하는 자세

살다 보면, 절망이 엄습할 때가 있다. 거듭된 실패와 시련으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수천년 전부터 그 절망적 상황은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성으로 그 수천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논리적인 설명을 부여하기는 불가능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라고 하늘을 원망하거나 삿대질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어쩔 것인가.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런 절망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은 이번 생에서 꼭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절망적 상황은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상황을 극복하게 되면 사람은 한층 깊어지게 마련이다. 잘 알려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보면 왜 절망이 축복인지 알게 된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지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을 삼으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덕을 베푸는 것을 헌 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적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당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보왕삼매론>
시련과 실패는 사람을 깊어지게 한다. 절망을 이겨내면 더욱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비오는 날을 몹시 좋아한다. 주룩주룩 싱그럽게 내리는 봄비도 좋고, 추적추적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가을비도 좋다. 그런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고 아늑해진다. 마치 엄마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 양수 속에서 유영을 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 비오는 날 파전이나 김치전을 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하고 담백한 칼국수 한 그릇도 괜찮고. 비오는 날, 고구마를 삶아 놓고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여름에는 열무김치를 좋아하고, 겨울에는 동치미를 즐겨 먹는다. 내가 더 늙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열무김치와 동치미를 담는 법이다. 아니면 마눌님께 배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맞는 수가 있다.^^

한때는 시를 꽤나 좋아해서 시집을 자주 들춰 보곤 했다. 백석이나, 신경림, 황지우 등의 시들을 많이 봤었다. 류시화를 오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내공을 알고 나서 류시화의 책은 빠짐없이 본다. 지금도 책을 좋아해 줄기차게 사서 보기는 하는데, 소설이나 시를 예전만큼 보지는 않는다. 주로 건강 서적이나 종교 서적, 그리고 고전들을 보고 있다.

집에 오래된 기타 한 대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조금 배운 기타 실력으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비오는 날, 기타를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 듯 노래를 부른다. 마눌님의 품평은 생긴 것에 비해 목소리는 괜찮다고 하는 편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날과 루시드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이병우의 기타 연주도 좋아한다.

민중가요가 좋아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적도 있었고, 복음성가가 좋아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다. 젊었을 때 노래방에 자주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 “노래방집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예전에는 유행하는 노래들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었을 뿐더러 요즘 노래들은 듣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한다. 쉬는 날에는 자주 산에 가려고 한다. 땀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만큼 몸을 정화시키는 것도 없을 듯하다. 제일 좋아하는 산은 계룡산인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태어난 곳이 계룡산 근처이다 보니 계룡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제주의 올레도 좋고, 지리산 둘레길도 좋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숲 속을 걷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혼자 걸어도 좋고, 마눌님과 같이 걸어도 좋다. 편백나무 숲도 좋고, 전나무 숲도 좋고. 숲 속을 걸으면서 나무와 바위와 얘기하는 것도 좋다.

딸아이와 같이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만화영화를 자주 보곤 하는데, 토토로는 백 번도 더 본 것 같고, 나우시카도 거의 그 정도 본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은 미래소년 코난. 그 녀석의 발가락이 너무 부러울 정도였으니까. 미야자키의 만화영화는 빠짐없이 즐겨 본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이창동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의 첫작품인 “초록물고기”를 좋아한다. 그 당시 한석규라는 배우를 참 좋아했다. 한석규를 좋아했던 이유는 혹시 내가 (특히 내 목소리가) 한석규를 닮지 않았나하는 착각 때문이었다. 물론, 마눌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ㅠㅠ 이창동 감독의 최근 영화 “시”도 너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외국 영화 중에는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 같은 SF영화들을 즐겨본다.

딸아이와 쎄쎄쎄를 자주 하는데, 요즘은 딸기아줌마 가위바위보를 배워서 놀고 있다. “딸기아줌마 딸기아줌마 주먹을 내세요 파송송 계란탁”하면서 상대방의 머리를 툭하고 치는 것이다. 가위를 내세요 하면, “파리모기 에프킬라 칙칙”하면 된다. 예전에는 공기놀이도 자주 했었는데, 딸아이는 우리동네 아빠 중에서 내가 제일 공기를 잘 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딸아이가 나보다 공기를 더 잘 한다.

“이런 잡문을 쓰다 보니 한도 끝도 없네. 어떡하지, 지금 끝내면 아쉬워서.”

“이월해.” “이월~, 이월~, 이월~”

그래, 오늘은 그만 자고 다음에 짜투리 시간이 나면 또 쓰지 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