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비

가을 나비

182년만에 찾아온 윤구월 때문인지 올 가을은 길고도 깊었다. 산자락부터 산꼭대기까지 울긋불긋 물이 들었고, 은하수 별만큼이나 무수한 낙엽으로 산은 아늑했다. 서걱거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에서 바싹 마른 가을 햇볕 냄새가 났다.

하늘은 높았고, 숲은 고요했다. 갈색 융단처럼 낙엽이 깔렸다. 그 속을 헤치는 발자국 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만이 숲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바람이 선듯선듯 불어왔다. 억새가 바람을 타고 나긋나긋 손짓했다.

갈잎을 헤치고 숲길을 거슬러 오르자 어디선가 나비 몇 마리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나타난다. 가을 나비, 그것도 11월의 나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인적이 없는 갈참나무 숲 속에서 나비가 날아 오른다. 나비는 갈색이기도 하고 옅은 노란색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철을 모르는지 아니면 원래 11월에 생겨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길은 수천년 전의 전설 속으로 가을을 데려갔다.

그 나비들을 따라가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노래하는 이백을 만날 것도 같다. 윤구월의 가을은 깊어가고, 하염없는 나비들의 날개짓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 듯 멈췄고, 세상은 어느덧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2014년의 가을은 나비들과 함께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신해철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순간을 사는 것이고,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하며 사는 것임을 알게 한 당신이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안다 해도, 당신의 부재는 쓸쓸함과 그리움을 남길 것입니다. 당신이 남긴 음악은 어렵고 또 험한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줄 것이고, 우리는 그 음악을 들으며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은 얘기하겠지요.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당신이 영원히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고마워요.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숲 속 참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나뭇잎들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나무들이 솨아솨아 소리내어 바람을 배웅한다. 참나무 아래로 도토리들이 떨어지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매들이 도토리들을 주어 담는다. 오늘 저녁엔 떫떠름한 도토리묵이 밥상에 오를 것이다.

가을은 깊어가고, 숲은 서서히 겨울 맞을 채비를 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숲 속 참나무에 기대 앉아 시 한 편 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 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김기택, 바람 부는 날의 시>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 따르면,

정부는 빈자들로부터 부자들을, 또는 가지지 않은 자들로부터 가진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Civil government, so far as it is instituted for the security of property, is in reality instituted for the defense of the rich against the poor, or of those who have some property against those who have none at all.

<아담 스미스, 국부론>

2014년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이 언술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가진 자들을 철저히 보호하고 부족한 세수는 서민들에게서 거둔다. 이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서민들은 부자를 보호하는 정부를 지지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완성된다. 이러한 정부를 지지하고 선출하는 서민들을 노예라 부른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사실상 노예제가 내재된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가장 슬픈 코미디는 이들 노예들이 스스로 노예인지도 모르고 정부를 앞장서서 옹호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어버이연합과 일베충 등이 있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정부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같다고 보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아담 스미스 시대를 살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3:34>

달의 꽃

달의 꽃

일본의 하이쿠 시인 오니쓰라는 보름달 달빛 아래서는 모두가 꽃이라고 말한다.

나무도 풀도
세상 모든 것이 꽃
달의 꽃

木も草も世界みな花月の花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이 꽃처럼 아름답기를 기도한다. 한가위 달빛 아래에서 모든 것들이 꽃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이곳이 천국이 되길, 밝은 달님 아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천국이 되길 기도한다.

민들레 그리고 국수집

민들레 그리고 국수집

시인 신용목이 쓴 민들레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신용목, 민들레, 2004>

민들레국수집을 벌써 11년이 넘게 운영해온 서영남 대표의 미소는 한없이 온화하다. 그의 느릿하고도 부드러운 말투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흐른다.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없이 굶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는 그의 손길이 아름답다. 그로 인해 가난하고 비참했던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천국이 되었다.

비루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늘은 가끔씩 천사들을 내려 보내는 듯하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이들은 바로 이런 분들이 아닐까.

서영남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톨스토이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사람들을 개선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If you see that some aspect of your society is bad, and you want to improve it, there is only one way to do so: you have to improve people. And in order to improve people, you begin with only one thing: you can become better yourself.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일베충과 어버이연합 그리고 뉴라이트를 아무리 비난해도 우리 사회는 나아지지 않는다.

어제보다는 오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손을 내미는 것,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그런 노력들이 세상을 단 한 뼘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지 않을까.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One of the most difficult things is not to change society – but to change yourself.

지금 퇴행하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면,  몇 백 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여한(餘恨)

여한(餘恨)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진상규명이었다. 왜 그 천사같은 수백 명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부모들은 알아야 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물론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그 유족들의 바람을 외면했다. 유족들의 한은 깊어만 갔다. 박근혜는 석달 반 전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유족들과 면담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국민들께는 말씀을 드리겠지만 특별법은 필요하다 그렇게 봅니다. 특검도 해야 된다. 근본부터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지 그냥 내버려두면 그게 또 그게 계속 자라가지고 언젠가 보면 또 부패가 퍼져 있고, 이렇게 돼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다. 국정조사도 한다고 했고 수사도 하고 있으니 그런 모든 것이 차제에 또 부패방지법이 있지 않나. 그 부분도 강력하게 시행해야 된다, 통과시켜서. 그런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오늘 다 얘기를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여러분들에게 계속 반영이 되고, 투명하게 공개가 되냐 하는 것을 다시 의논을 드리겠다. <세월호 靑대화록>③ “진상규명 유족들 여한없게 할것”
물론 거짓말이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진상규명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지 코 앞에 닥친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를 위한 립서비스가 필요했을뿐. 두 번의 선거가 지나가자, 그들은 유족들을 벌레 보듯 하기 시작했다. 기회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표리가 부동하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필요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지만, 막상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뒷통수를 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대책이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정권 유지는 커녕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니 그들의 책임을 밝히겠다는 수사와 진상규명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의 한은 눈물이 되고 빗물이 되어, 오늘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내일 모레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단식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유족들의 여한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삼보일배
너의 의미

너의 의미

사랑은 과연 말로 표현될 수 있을까? 그 그립고 아련하고 가슴 시린 감정은 전달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진짜 사랑일까?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소년이 사춘기에 품기 시작한 사랑에 대한 물음들이다. 사랑이 무엇이지 알지 못하는 그 순진한 소년의 물음에 답을 준 노래가 있었다.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을 들을 때면 이 땅에 태어나기 다행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바벨탑 인 강남스타일

바벨탑 인 강남스타일

바벨탑은 인간들의 욕망의 정점을 상징하는 신화 속의 건축물이다. 인간이 신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교만은 하늘을 찌를 듯한 탑으로 형상화되었고, 이에 분노한 신은 인간들의 언어를 뒤섞어 탑의 건설을 중단시킨다. 이것이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에 관한 신화다. 피테르 브뢰헬의 바벨탑 서울 잠실에 세워지고 있는 제2롯데월드는 자본과 권력의 결탁의 상징이자, 이 나라 지배계층의 탐욕의 정점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국가안보는 안중에도 없이) 성남공항 활주로 변경까지 해가며 건축 승인을 해준 이명박과 (아이들에게 껌을 팔아 돈을 번) 재일교포 재벌 신격호의 만남은 시작부터 이미 비극을 내재하고 있었다. 잠실 석촌호수의 물이 빠지고 주변 도로 곳곳이 침하되자, 사람들은 이것이 제2롯데월드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며 수근거렸다. 최근에는 잠실 공사장 부근에서 커다란 씽크홀(동공)들이 발견되었다. 서울시는 일단 그 동공들이 지하철 공사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내놓았지만, 엄청난 규모의 건축과 지하철 공사 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견고하지 않은 지반이 곳곳에서 내려앉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잠실 주민들은 불안하지만 집값이 떨어질까봐 쉬쉬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집값이 중요한들 사람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이미 삼풍백화점 붕괴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증상들은 시작부터 내재된 비극의 실현을 예고하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강남의 바벨탑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탐욕의 끝은 파멸이다. 역사는 이러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오늘도 파멸의 수렁 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제2롯데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