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사띠

마음과 사띠

아나가리카 무닌드라(Anagarika Munindra)는 마음과 사띠(Sati)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은 본래 색깔이 없다. 그것이 욕망으로 물들 때 우리는 그것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 부른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화내는 사람’ 혹은 ‘화내는 마음’으로 불린다. 사띠(마음챙김)가 없으면 마음은 이 분노의 영향을 받는다. 분노는 마음을 오염시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독을 만든다. 그러나 마음은 분노가 아니며 분노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탐욕이 아니고 탐욕은 마음이 아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마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마음’은 단지 ‘아는 능력’,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미르카 크네스터, 마음에 대해 무닌드라에게 물어보라, p. 23>

무닌드라는 사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띠(마음챙김)는 깨어 있음이고, 알아차림이고, 기억하는 것이고,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잊지 않고 단지 알아차리고, 대상에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 사띠는 지금 이 순간에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르카 크네스터, 마음에 대해 무닌드라에게 물어보라, pp. 23-24>

순간순간을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여 맑게 살 수 있다면 누구나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어떤 효도

어떤 효도

그의 아버지는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였고, 해방 이후 남로당 군총책이었으며,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독재자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지키고자 유신을 선포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탄압했다. 역사는 그의 아버지를 친일 매국노, 독재자로 기록했다. 그는 아버지를 기록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아버지의 명예(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회복을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한다. 아버지를 친일파로, 독재자로 기록한 역사책은 편향된 교과서이고, 그런 편향된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독재를 했다기보다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역사는 그를 심청이 수준의 효녀로 기록할까?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의 효도가 눈물겹기만 하다.
왜 나라를 팔았나?

왜 나라를 팔았나?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옥윤이 염석진에게 총을 겨누면서 묻는다. “왜 동지를 팔았나?” 염석진은 이렇게 소리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염석진 같은 친일 매국노들은 해방될 줄 몰라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조국의 독립이나 해방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눈 앞의 이익만을 좇는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일제가 좋아서 친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친일 매국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다. 나라와 민족과 동지를 판 대상이 굳이 일제일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심지어 북한이든 상관이 없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만주국 장교 박정희는 해방이 되자 광복군으로 잽싸게 옷을 갈아 입었고, 좌익이 득세를 하자 남로당 군총책을 맡았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에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다.

친일 매국노들은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원하지 않았다. 해방될 줄 몰라서 나라와 동지를 판 것이 아니고, 그들은 해방을 원하지 않았다.

안철수의 민낯

안철수의 민낯

질문: 선생님, 도대체 안철수라는 사람의 정체가 뭡니까? 이 사람 언행을 보면 뭐가 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명색이 야당 국회의원인데, 야당인 듯 야당 아닌 야당 같은 행보가 이해불가입니다.

답변: 안철수 씨는 기회주의자입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하고, 해악이 큰 기회주의자이지요. 그의 기회주의 행태는 이미 지난 대선 때 다 드러난 것이구요. 현재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전직 대표로서 그가 남긴 건 폐허뿐이었습니다.

물론, 정치인들 중에는 기회주의자들이 많지요. 하지만, 안철수가 다른 정치인들과 다르게 위험한 이유가 있는데, 안철수는 자기를 구름 위의 메시아로 본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메시아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어요. 자기만이 깨끗하고, 자기만이 성스러우며, 자기만이 정치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이지요. 안철수가 말로는 새정치를 하겠다는 하지만, 실제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몸담은 곳은 온통 시궁창이 되지요.

질문: 안철수가 문재인과 대립하는 이유는 뭡니까?

답변: 안철수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정치에 들어오기 전, 그는 회사의 대표였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잠시 본인의 신분을 세탁하기도 했지만, 그는 “의”보다는 “이”에 밝은 사람입니다. 안철수의 목적은 “새정치” 또는 “야당의 혁신” 같은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만, 그건 그냥 개나 주라고 하세요.

안철수는 문재인을 끌어내리고 야당의 대표를 하고 싶어 하겠지요. 그리고 “새정치”라는 이름으로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겁니다. 물론 대통령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사람들이 안철수의 정체를 알기 시작하니 쉽지 않을 거고, 최소한 야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안철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안철수의 사전에 정정당당이란 없습니다. 항상 꼼수와 반칙뿐이지요. 지난 번 대선 단일화 때도 그렇고, 이번 야당 혁신위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철수의 전략은 끝까지 떼를 써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겁니다. 아주 짜증나는 스타일이지요.

이번에도 아직 시작도 안 한 혁신이 실패했다고 나팔을 불다가, 문재인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하니 재신임하지 말라고 또 떼를 씁니다. 왜? 재신임이 될 것 같으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재신임 안 될 것 같으면 끝까지 재신임하라고 떼를 썼을 겁니다.

질문: 안철수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2012년 대선 직전 안철수의 행태를 보면서 쓴 몇 가지 글이 있는데, 한 번 읽어 보세요. 3년 전만 해도 안철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나, 지금 보면 나름 핵심을 짚은 글들입니다.

문재인과 리더십

문재인과 리더십

김대중과 노무현이 사라진 이후 야당은 지리멸렬했다. 거의 모든 선거에서 야당은 새누리당을 이기지 못했다. 정치, 언론 환경을 비롯한 모든 조건이 야당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야당 내부에 있다. 그것은 ‘후단협의 추억’이라 부를만한 기회주의자들의 창궐이다.

하나로 똘똘 뭉쳐 친일과 독재 세력들과 싸워도 이기기 힘든 판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당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후단협의 후예들이 암세포처럼 당을 좀먹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기회주의자들의 힘은 무척 세다.

문재인은 현재 이런 야당의 대표다.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다.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착한 사람이다. 노무현이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문재인이 정치판에 들어올 일이 없었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얘기한 문재인의 말처럼, 그는 지금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야당의 홍보위원장 손혜원 씨의 인터뷰 중에 문재인을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 그렇게 훌륭한 면들이 유권자에게 어필하지 못 하는 건 결국 문 대표의 리더십 부재 때문 아닌가.

“그건 아니다. 다만 정치를 하려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문 대표는 남을 너무 많이 배려한다. 본인이 소신을 갖고 맞다고 생각하면 그걸 제압해서 자기 쪽으로 밀고 가야 하는데 문 대표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강압적으로 자기 의견으로 모으는 일들을 안 한다. 늘 표결을 해야 결론이 난다. 균형감 있는 얘기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아니라고 반대를 하면 가만히 있는 거다. 샤이(수줍음을 타는 것)해서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러 들어와 .. 재신임 안 되면 나도 떠날 것>

손혜원 씨의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재인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좋은 사람인데, 사람이 너무 좋아 리더십이 미숙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다.

리더가 해야할 일 중 가장 힘든 일은 바로 갈등을 조정하고, 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John Maxwell)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다음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 그들이 변할 능력이 있는가? (능력)
  • 그들이 변할까? (태도)

이 두 가지 질문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그들(부정적이고 비협조적이며 무능한 조직원들)과 함께 갈 수 없다.

당신을 따르지도, 생산적인 직원이 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당신을 더 나은 리더로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그저 조직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직원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누군가를 조직에서 퇴출해야 함에도 인정에 이끌리든 어떤 이유로든 조직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리더십이 미숙하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중략>

이처럼 어려운 결정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는 그런 결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좋은 리더는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단호하게 결단을 내린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것이 조직에 최선일까?”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직원을 계속 안고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조직에 최선이 아니라면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존 맥스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시 물어야 할 것들, pp. 215-217>

지금 문재인이 해야할 일은 야당 안에서 암세포처럼 당을 좀먹는 기회주의자들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그 기회주의자들은 새누리당을 제외한 이 나라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족속들이다. 이 족속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야당은 물론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유감이라는 말장난

유감이라는 말장난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남과 북의 대결이 6가지의 합의를 뒤로한 채 막을 내렸다. 겉으로는 맞짱을 떠보겠다고 짐짓 허세를 떨었지만, 남이나 북이나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한 번의 전쟁은 공멸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지능만으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합의가 있기 전, 남한의 최고권력자 박근혜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는 한 합의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나온 합의문에는 지뢰 폭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남한의 쓰레기 언론들은 이 문구를 가지고 북한이 사과를 했다며 설레발을 떨었다. 이것이 사과가 되어야만 박근혜가 제시한 지침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말한다. 위의 합의문 2항에서 북한은 지뢰 폭발을 자기들의 짓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았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도 않았다. 지뢰 폭발로 남측의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이 유감이라고만 했다.

유감은 “마음에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을 가리킨다. 북한이 남한 군인들의 부상에 유감을 표했다는 것은 그저 “다쳐서 안타깝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합의문에서 북한의 속내는 “우리가 한 짓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쳤으니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고, 그냥 위로 정도의 인삿말인 것이다.

(유시민에 따르면) 합리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박근혜가 고집을 피워 전쟁불사를 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국민들은 유감이라는 말장난이 사태를 봉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정말 편리하다. 정치인들이 사과를 해야할 때, 그들은 흔히 “유감스럽다” 또는 “유감을 표한다”고 한다. 기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회주의적 표현이긴 하지만, 그 기회주의적 표현이 때로는 더 큰 불행을 막기도 한다.

독재자 후손들의 치킨 게임

독재자 후손들의 치킨 게임

우연인지 운명인지, 현재 남과 북의 최고권력자는 독재자들의 후손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김일성의 손자요, 김정일의 아들이다. 이제 겨우 삼십을 넘은 이 젊은 권력자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젊었을 때 모습을 많이 닮았다.

북한은 겉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김씨왕조 국가다. (국가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인 폐쇄된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봐도 될 듯하다.) 21세기에도 권력이 3대째 세습되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자기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숙청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권력 기반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다. 박정희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한국현대사의 가장 걸출한 기회주의자다.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은지 35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그를 반인반신으로 지지하는 불쌍한 노인들이 많아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남한의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남한은 자본주의 국가다. 경제 성장도 제법 이루었고, 형식 상의 민주주의도 이룬 나라지만, 남한 권력의 9할은 친일과 독재의 후예들이 잡고 있다. 때문에 정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자신이 노예인 것을 모른 채) 노예처럼 살고 있다.

이 독재자들의 후손들이 며칠 전부터 7500만 민족의 목숨을 담보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지뢰 도발에 남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하자, 남북한이 서로 포탄을 쏘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 곧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것은 공멸이다. 김정은이나 박근혜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조성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 위기를 조성하고, 적당히 주고받으면서 권력을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북한은 어차피 왕조국가이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쿠데타나 민중혁명이 성공하지 않는 한 김씨왕조는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남한이다. 남한은 5년마다 최고권력자가 선거에 의해 바뀌는 구조지만, 지배계층은 늘 친일과 독재 후예나 부역 세력들이다. 많은 백성들이 노예로 살면서 아무 고민없이 1번만 찍는 이상, 독재자 후손들의 치킨 게임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 2년 반동안,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보여준 리더십은 완벽했다. 세월호, 메르스, 국정원 해킹도 모자라 이제는 전쟁을 빌미로 국민들을 협박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 박정희가 살아온 듯한 전율을 느낀다. 대한민국은 침몰해가는 세월호일 뿐이다.

남북한의 권력자들이 이제 국민들의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계속 안녕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계속 안녕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시간에 대하여

시간에 대하여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환상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이다. 이 시간이라는 관념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거의 모든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과 같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라는 관념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라는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싯다르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 비밀, 그러니까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비밀을 강물로부터 배웠습니까?”
“그래요, 싯다르타.” 바주데바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강물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강의 원천에서나, 강 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도처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배웠을 때 나는 나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의 인생도 한 줄기 강물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는 장년 싯다르타와 노년 싯다르타로부터 단지 그림자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을 뿐, 진짜 현실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싯타르타의 전생들도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었으며, 싯타르타의 죽음이나 범천에로의 회귀도 결코 미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무아지경에 빠져 황홀한 상태로 말하였으니, 이러한 깨달음이 그를 그토록 기쁘게 하였던 것이다. 아,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그 근원은 모두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pp. 157-158>

적절한 최고임금은 얼마인가

적절한 최고임금은 얼마인가

지난 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한 시간에 5210원이었다. 이것을 월급으로 계산하면 108만8890원(월 209시간)이 된다. 물론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법에서 규정한 임금으로 계산하면 연봉 1300만원 정도가 2014년의 최저임금이었다.

2014년에 제일 돈을 많이 번 대기업 등기임원은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인데, 연봉 146억원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고 돈을 많이 버는 회사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 146억이라는 숫자는 전혀 현실감이 없다. 최저임금의 무려 1100배가 넘는 액수니까.

그렇다면 재벌총수들은 어떤가. 이들은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 대부분 등기임원에서 빠져 2014년의 연봉 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2013년 SK 최태원 회장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301억원을 받았다. 최저임금의 무려 200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죄를 지어 구속이 되었는데도 회사에서 30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과연 실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믿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나 대기업 사장들은 최저임금의 수천 배가 넘는 돈을 연봉으로 받고 있다. 이런 극단적 불균형과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1%도 안 되는 소수의 집단이 사회 전체의 부를 거의 모두 차지하는 이런 현실은 부도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나치게 많은 돈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 치고 형제 간에 싸움을 하지 않는 집안이 없다. 그들이 벌이는 골육상잔의 막장 드라마를 볼라치면, 인간이라는 종족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시스템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않을 만큼의 최고임금은 어느 정도일까?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에 따르면, 한 조직의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20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 20배를 넘게 되면, 종업원들의 분노와 사기 저하가 회사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I have often advised managers that a 20-to-one salary ratio is the limit beyond which they cannot go if they don’t want resentment and falling morale to hit their companies.”

<What’s the right ratio for CEO-to-worker pay?, Washington Post>

실제로 홀푸드(Whole Foods)라는 회사는 최고경영자의 임금을 회사 평균 임금의 19배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드러커의 20:1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회사를 발전시키고 종업원들의 사기를 높여 더 좋은 회사로 만든다.

2015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시급 5580원이고, 연봉으로 따지면 1400만원 정도다. 따라서, 이것을 기준으로 드러커의 원칙에 따라 계산하면 바람직한 최고임금은 2억 8천만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을 연동시키면, 최고경영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지금처럼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를 줄일 수 있고, 건강한 경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

과연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릴만하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자들에게 수십 조의 세금을 깍아주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회, 나라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1%도 안 되는 최상위 계층이 가져가는 사회, 한 집안의 재산이 수천만 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사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사회를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출마의 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Let me be very clear. There is something profoundly wrong when the top one-tenth of 1 percent owns almost as much wealth as the bottom 90 percent, and when 99 percent of all new income goes to the top 1 percent. There is something profoundly wrong when, in recent years, we have seen a proliferation of millionaires and billionaires at the same time as millions of Americans work longer hours for lower wages and we have the highest rate of childhood poverty of any major country on earth. There is something profoundly wrong when one family owns more wealth than the bottom 130 million Americans. This grotesque level of inequality is immoral. It is bad economics. It is unsustainable. This type of rigged economy is not what America is supposed to be about. This has got to change and, as your president, together we will change it.

<Bernie’s Announcement>

주류 언론은 그를 과격하다며 사회주의자로 몰았다. 상식을 가진 사람을 빨갱이로 모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바닥을 파는데 22조의 혈세를 펑펑 쓰면서 아이들 의무 급식은 무상으로 할 수 없다는 정치인들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자원외교 한답시고 수십 조를 아무렇지도 않게 써버리면서 반값등록금 얘기만 나오면 벌벌 떠는 나라에서 상식을 갖고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성공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