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나바라 왕국으로 향했다. 산을 계속 오르니 안개가 점점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순례자들을 따라 구름도 피레네를 넘고 있었다. 롤랑의 샘을 지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온다. 여기부터 나바라 왕국(스페인 북부)의 땅이라는 표지가 없었다면 아무도 국경인 줄 알 수 없는 그 평화가 부러웠다.
해발 1400m가 넘는 레푀데르 언덕에 도착하니, 눈 앞에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지친 순례자들이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리는 곳이다. 저 아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뻗어 있다.
론세스바예스. 장미의 계곡. 롤랑과 그의 부하들이 죽은 후, 샤를마뉴가 적군과 아군의 시체를 구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아군 시체의 입에서 장미가 피었다는 전설을 지닌 그곳. 피레네를 넘은 카미노의 스페인 첫마을. 그곳에서 롤랑의 노래와 전설을 만났다.
오리송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는 17Km, 약 5시간이 걸렸다. 새로 단장한 알베르게가 깨끗했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관광안내원을 따라 성당과 박물관을 한바퀴 돌았다. 저녁을 먹고 미사에 참석했는데, 스페인 신부가 한국말을 비롯한 각국의 언어로 순례자들의 평안을 기도했다.
조병식 원장이 쓴 <암은 자연치유된다>라는 책은 암환자와 암환자 가족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조병식 원장은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였는데, 현대의학의 한계를 깨닫고 자연의학의 길로 들어선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암과 같은 난치병을 고치려면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2005년 산 속에 ‘자연의원’을 열었다.
조병식 원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원래 자연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주류의학인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이고, 그 현대의학으로 환자들을 치료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현대의학의 허와 실을 알고난 후 자연의학으로 돌아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열린 사람이고 용기있는 사람이며, 굉장히 드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현대의학으로는 암을 고칠 수 없다. 암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환자의 면역력(자연치유력)을 키워 그 힘으로 암세포를 없애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인정하고 있는 암 치료방법은 수술, 항암, 방사선 요법인데, 이 세 가지 방법 모두 환자의 면역을 높여주지 못한다. 특히 항암과 방사선 요법은 엄청난 부작용을 동반한다.
<암은 자연치유된다>에서 조병식 원장은 동양의학, 니시의학, 양자의학, 해독요법, 식이요법, 파동치료 등 기존의 대체요법들을 동양의학의 정기신(精氣神)의 틀로 통합한다. 그렇다고 그가 현대의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암을 진단하는 것은 현대의학의 방법을 사용하고, 그리고 필요한 경우 수술도 권한다.
이 책은 자연의학의 새로운 치료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치료 방법은 기존의 자연의학이나 대체의학에서 다 사용하던 것들이다. 그는 언제나 환자의 면역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기존 대체의학 요법들을 적절하게 통합하여 병 중심이 아닌, 항상 환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조병식 원장은 올바른 패러다임으로 암과 같은 퇴행성 질환을 치료하고 있고, 그의 임상 경험이 10년이 넘어간다는 점은 암환자들에게 기쁜 소식이다. 환자들은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판단해 치료법을 선택해야 한다. 조병식 원장은 암에 관한 한 현대의학보다 더 나은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오리송 산장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카미노는 안개 속에 사라졌다. 꿈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보니 어제 그 청명했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산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혀 있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안개 속에 사라진 카미노는 이미 이 세상 길이 아니었다.
이슬비와 안개와 구름으로 가득한 꿈같은 길. 그 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순례자들. 안개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 소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티아고로 향했던 카미노는 이제 다른 세상에 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안개 속의 카미노와 같은 것.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저 안개 너머에 무지개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가는 것.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온몸을 전율하는 것. 무산몽환(霧山夢幻).
피레네 산맥의 안개 속 카미노를 걸으면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이 늘 같이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 죽음이 삶을 가치있게 한다는 역설. 안개 속 카미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워 나갔다.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바로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간은 그가 집착하는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죽은 다음에 그는 그가 한 행위들의 미묘한 인상을 마음에 지니고서 다음 세상으로 간다. 그리고 그의 행위들의 수확을 그곳에서 거둔 다음에 그는 이 행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이와 같이 욕망을 가진 자는 환생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임종을 맞이할 때 붓다와 보디사트바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에게 임종자 자신이나 그의 가족들이 예물을 바친다. 마음으로 상상해서 예물을 바칠 수도 있다. 손에는 향기 좋은 향을 들고 마음을 모아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말한다.
아, 열 가지 방향에 있으며 더없는 자비를 갖추시고 지혜와 투시력과 사랑을 갖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보호해 주시는 붓다들과 보디사트바들이여. 자비의 힘으로 이곳에 내려오셔서 차려 놓은 공양물과 마음으로 만든 공양물을 받으소서.
아, 자비로운 이여. 당신은 무한한 지혜와 자비의 사랑과 신통력과 보호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비로운 이여, 지금 (동진이)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려 합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큰 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제 친구가 없습니다. 불행은 참으로 큽니다. 그는 이제 지켜 줄 이도 보호해 줄 이도 없으며, 아무런 능력도 동행자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빛이 져 버렸습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는 무거운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가파른 절벽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는 고독의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카르마의 힘에 끌려 다닙니다. 그는 광막한 정적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다닙니다. 그는 카르마의 바람에 밀려 다닙니다. 그는 안정이 없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큰 갈등 속에 빠집니다. 그는 거대한 악귀들의 포로가 됩니다. 그는 죽음의 왕이 보낸 사자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에 빠집니다. 카르마가 그를 윤회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 혼자서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아, 자비로운 이여. 지켜 주는 이 없는 (동진이)를 지켜 주소서. 보호받지 못하는 그를 보호해 주소서. 그의 힘이 되어 주시고 동행자가 되어 주소서. 사후세계의 어둠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소서. 카르마의 붉은 광풍으로부터 그를 비켜 가게 하소서. 죽음의 왕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하소서. 사후세계의 길고 좁은 여행길로부터 그를 구하소서.
아, 자비로운 이여. 자비의 힘을 늦추지 마시고 그를 도우소서. 그를 불행한 곳으로 가게 하지 마소서. 당신의 옛 맹세를 잊지 마소서. 당신의 자비의 힘을 늦추지 마소서.
아, 붓다들과 보디사트바들이여. 이 사람을 향한 자비의 힘을 거두지 마소서. 당신의 자비의 밧줄로 그를 붙잡으소서. 악한 카르마의 힘에 이 생명 가진 자가 굴복하게 하지 마소서.
아,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이여. 사후세계의 불행으로부터 이 사람을 보호하소서.
전설이 있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가 별들의 들판에 묻혀 있다는. 그 전설에 의해 길이 열렸고, 그 길을 따라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향했다. 그들은 순례자라 불렸다.
길은 피레네산맥을 넘고 나바라와 메세타 평원을 거쳐 갈리시아에 닿아 있었다. 그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신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길을 떠났고, 다른 이들은 진리를 찾아 떠났다. 기적을 믿는 이들도 있었고, 치유가 필요한 이들도 있었다.
길은 그곳에 있었고, 그 길은 꿈 꾸는 자가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고, 필요한 것을 내주었다. 길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고,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 탐욕의 폐해를 알게 해주었고, 겸손이 무엇인지, 열정이 무엇인지, 인내가 왜 필요한지 가르쳐 주었다.
길은 공평하였다. 걸은 만큼 알게 해주었고, 사람들은 걸은 만큼 성장하였다. 그 길 위의 사람들은 동료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기쁨을 같이하고 슬픔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걸었다. 산티아고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곳에 정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 야고보는 상징일 뿐이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 사랑이 산티아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순례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 존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뿐만 아니라 모든 길에 있다는 사실도, 그 모든 길 위에서 걷고 있는 모든 존재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순례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며, 그 사랑이 모든 존재임을 깨닫는 여정이다. 길은 그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생장에서 오리송까지는 약 10Km. 아내는 오리송 산장에서 꼭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고 우겼다. 성수기인 여름에 여기에서 묵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눈 앞에 펼쳐진 피레네의 멋진 풍광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곳을 지상낙원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 아래 풀을 뜯고 있는 양들과 말들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온 신부님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산장에 묵는 40여명의 사람들과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우연으로 보이지만 운명으로 만난 이들이었다. 시끌벅적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카미노에서의 첫날밤, 모두들 평화롭게 잠에 취했다.
덧.
<야고보의 전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후, 예수의 제자였던 야고보가 스페인 북부 지방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다. 그 후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하고, 그의 유해가 돌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해안에 떠내려오게 된다. 야고보의 유해가 스페인 북부에 묻히게 되고 그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9세기에 별들의 들판이라 불리는 곳의 한 무덤이 별의 계시에 따라 야곱의 무덤으로 밝혀진다. 왕은 그곳에 성당을 짓고 성 야고보를 추모한다. 그 후 사람들의 순례가 시작되었고, 중세에는 교황이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산티아고데캄포스텔라를 3대 성지로 선포하였다.
계획하지도 않았고 별 기대도 없었지만,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일찍 잠을 깼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일찍 일어난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강가에 나가 산책을 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저 유장한 강물은 어디에서 바다를 만날 것인가. 바욘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세 명의 한국 젊은이들을 만났다. 젊음은 생장에서 더욱 빛났다. 그들은 론세스바예스로 서둘러 떠났고, 남겨진 자는 생장의 낡은 성곽을 둘러 보았다. 돌틈의 이끼가 시간의 두께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늘은 드높고, 독수리 같이 보이는 새 서너 마리가 공중을 빙빙 돌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피레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하얀 구름모자가 멋스럽게 걸렸고, 바닥에는 산티아고의 방향을 가리키는 금속 표식이 번들거렸다.
계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뜻밖의 여정에 순례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겨진 자에게는 이 길을 걸어야하는 숙명 같은 임무가 있었다. 그는 그 임무를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성당에 들러 이번 여행의 안녕과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상쾌한 출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