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한계

부의 한계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부에 한계가 있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물의 한계는 우물에서 물이 마를 때이고, 부의 한계는 부가 충분했을 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에 대해서는 충분하다고 느낄 때가 없기 때문에 더욱 욕심을 부리다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桓公問管仲 「富有涯乎」 答曰 「水之以涯, 其無水者也. 富之以涯, 其富已足者也. 人不能自止於足, 而亡其富之涯乎.」

<한비자, 제23권 설림 (하)>

부의 한계는 파멸이다. 사람들의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것을 깨닫기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만큼 어렵다.

참 좋은 말

참 좋은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엄마 아빠 일터 갈 때 주고받는 말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신이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 맛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인데요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나는 나는 이 한마디가 정말 좋아요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엄마 아빠 일터 갈 때 주고받는 말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신이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 맛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인데요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나는 나는 이 한마디가 정말 좋아요

사랑 사랑해요

<김완기 작사, 장지원 작곡, 참 좋은 말>

참 좋은 노래고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살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운명처럼 꼭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면 좋으련만,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아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수도 있겠다.

2019년에는 원하지 않지만 꼭 해야할 일들이 몰려오고 있다. 받아들이고 즐기는 수밖에 다른 방도를 알지 못한다.

빈소

빈소

나이 어린 후배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업이 잘 된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실상은 아니었나 보다. 그가 짊어졌던 절망의 무게가 쓸쓸하고 안쓰러웠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선배는 초라한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황망한 마음으로 빈소를 찾을 뿐이다.

영정 속 그의 모습은 꽃다운 청년이었다. 딸의 통곡 소리가 장례식장에 번졌다. 문상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먼저 떠난 후배의 명복을 빌 뿐,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다음 생에서는 부디 행복하길 빌어 보는데, 그것조차 부질 없었다.

말 많은 사내

말 많은 사내

늘 그렇듯이, 그는 말이 몹시 많았다. 그의 말은 삼행시로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최근 벌어진 일들이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다고 했다. 하긴, 그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 그런 일로 힘들어지게 되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다.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농담이었지만, 별로 웃기지 않았다. 그의 말 속에 그의 욕망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걸 눈치챘다. 그의 말은 빨라졌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말은 의미를 잃고 말을 위한 말이 되고 말았다. 그의 말은 그치지 않았고,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잊혀질 수 없는 미래

잊혀질 수 없는 미래

컴퓨터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는 인터넷으로 연결되는데, 그 위에 안전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데이터는 블록체인으로 저장된다. 한 번 저장되면 수정되거나 삭제되지 않고 영원히 남는 거래와 기억들. 사기도 칠 수 없지만, 잊혀질 수도 없는 기록들. 그것을 보장하고 촉진하기 위해 발행되는 암호화폐들. 이것이 블록체인이 상상하는 미래다.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잊혀질 수 있는 권리는 점점 불가능한 소망으로 바뀌고 있다.

요세미티

요세미티

미국의 자연은 대체로 거대하다. 인간의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그 거대한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수천 년된 세콰이어 나무들은 너무나 크고 높아서 감히 한 번에 다 쳐다볼 수 없다. 바위 절벽은 너무나 크고 가팔라서 감히 올라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자연의 거대함은 위협으로 다가오고 인간은 그 앞에서 한없이 초라하며, 자연과의 합일은 아득히 멀어진다.

요세미티는 원주민 말로 살인자(those who kill)란 뜻인데 바로 침략자이자 학살자였던 백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아름다운 계곡에서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 학살되고, 그 거대한 계곡은 요세미티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문명을 가진 인간들은 그 아름다운 자연에 슬프고도 잔인한 역사를 새겨 놓았으나, 그 역사는 시간과 함께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Yosemite, Tunnel View
El Capitan
Yosemite Falls
Bridalveil Falls
Giant Sequoia
Tuolumne Grove
인면수심

인면수심

겨울답지 않게 며칠째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니 아니나 다를까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 먼지들은 서해안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온 것도 있고, 오래된 경유차의 배기구멍에서 나온 것도 있고, 중국 베이징에서 날아온 것도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찬 바람이 불지 않으면 겨울 하늘은 늘 잿빛이다.

어렸을 때부터 코치에게 폭행을 당하고 커서는 성폭행을 당한 여자 빙상 선수가 폭로를 하자, 유도에서도 몇 년 간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자 선수가 공개적으로 코치를 고발했다. 자신이 십수 년 간 가르쳐온 선수들을 때리고 성폭행을 할 수 있는 그 자들의 인면수심에 구역질이 났다. 세상에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널려 있다.

자유한국당이 5.18 광주민주항쟁 진상조사단에 추천한 조사위원 면면이 공개되었다. 물론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진상조사 위원이라기보다는 진상조사 방해 위원이라고 해야할 사람들을 추천해 놓고 희희낙낙하는 그들 역시 인면수심이긴 마찬가지다. 하기야 광주학살 책임자 전두환을 민주주의 아버지로 생각하는 자들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미세먼지 가득한 따뜻한 겨울보다는 차라리 살을 에는 추위라도 좋으니 차갑고 맑은 겨울 날이 훨씬 낫다.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을까? 답답한 월요일이다.

탕수육의 추억

탕수육의 추억

어릴 적 장날이면,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가곤 했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이것저것 식재료를 구입하셨고,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닌 꼬마의 다리는 몹시도 아팠다.

장을 보고 난 후 어머니는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한 그릇 사주곤 하셨는데,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짜장면 값이 15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이사를 하신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자식을 대처에서 가르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중국 음식이라면 짜장면과 짬뽕 정도만 먹었던 시골 아이가 도시에 와서 처음으로 탕수육을 먹어 보았다. 그때의 맛을 역시 잊을 수가 없다.

고소하고 바삭하게 튀겨진 돼지고기가 달착지근하면서 시큼하고 끈적하고 느른한 소스에 버무려져 나왔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른들을 따라 고추가루를 푼 간장에 찍어 먹었다. 달콤하고 시큼하고 짭잘한 돼지고기가 입 속에서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 당황했는데, 몇 번 먹다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음식도 있구나! 그때부터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3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결혼하기 전 아내와 만날 때, 우리는 주로 탕수육을 먹었다. 탕수육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회사 근처의 탕수육 잘하는 중국집은 모두 섭렵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2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일요일 점심, 가족들과 함께 중국음식점에 가서 탕수육을 먹었다. 바삭한 고기와 새콤달콤한 소스가 따로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찍먹 탕수육이었다. 그 탕수육을 먹으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도 탕수육은 크게 변한 게 없었고, 식구들은 여전히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