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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행복

어버이날, 사랑하는 딸이 보낸 편지

어버이날, 사랑하는 딸이 보낸 편지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 보니, 딸아이로부터 편지가 와 있었다. 어버이날이라고 엄마 아빠한테 제법 그럴 듯한 편지를 보낸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이런 편지를 보냈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은 그 처지가 뒤바뀌어 버렸다. 딸아이의 마음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사랑하는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

요즘은 파릇파릇한 초록빛 나뭇잎이 한창 피어나면서 나무가 옷을 갈아입는 것 같아요. 이제 여름이 되려나 봐요. 햇살도 따뜻하고요. 저에게 햇살만큼 따뜻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제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곁에 있어 주시고, 제가 아플 때 잠들 때까지 간호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이제 엄마 피곤하실 때 옆에서 심부름이랑 안마 많이 해드릴께요.

아빠, 제가 아플 때 일찍 퇴근해서 함께 놀아주시고 기분 풀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제가 보고싶은 영화나 책을 아낌없이 사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책을 많이 읽어서 훌륭한 사람이 될께요.

엄마, 아빠! 은하수에 있는 별들 보다도 많이 사랑해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12. 5. 7.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예쁜 딸 올림

“은하수에 있는 별들 보다도 많이 사랑”한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어린 녀석이 어디서 이런 표현을 배웠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천사같은 아이들을 가진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 오늘 하루 만큼은 부디 행복하시길.

예봉 연대기

예봉 연대기

우리 부부는 딸 아이를 예봉이라 부른다. 이름이 따로 있는데도 우리는 그 녀석을 예봉이라 부른다. 11년 전 어느 날, 그러니까 그날은 봄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는데도 엄청난 눈이 내렸다. 예봉이는 긴 기다림 끝에 봄눈처럼 우리를 찾아왔다.

예봉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녀석은 차라리 한 마리 토끼였다. 눈도 뜨지 못하고, 머리가 너무 크고 팔이 짧아 만세를 부르지도 못했다. 한 마리의 작은 토끼. 아빠 품에 안긴 녀석은 드디어 눈을 뜨며 이 세상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몇 달이 지나자 예봉이는 배밀이를 하고 뒤집기를 하면서 점점 사람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상은 예봉이를 중심으로 돌았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지만, 그만큼 겁도 많았다. 행복은 새벽 안개처럼 우리 가족을 감쌌다.

세월이 흐르고, 녀석은 인간의 언어를 배워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면서 글을 깨우쳤고, 셈을 하기 시작했다. 예봉이가 부쩍부쩍 클 때마다 우리는 문득 서운함을 느꼈다. 예봉이가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또 다시 그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예봉이는 학교에 들어갔고, 우리는 드디어 학부모가 되었다. 늘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녀석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봉이가 커 갈수록 점점 아내를 닮아간다. 얼굴이 그렇고 마른 체형이 그렇고, 큰 키가 그렇다. 이제 녀석의 얼굴에서 점점 어린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점점 소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녀가 된 예봉은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날 것이다. 녀석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우리 부부는 언제나 녀석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예봉이가 있는 곳은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할 것이며, 우리는 늘 녀석의 행복을 기도할 것이다. 세상은 늘 완전했으며, 우리는 그것을 문득문득 깨달을 것이다.

사랑한다. 예봉아! 내 딸아!

리더의 조건

리더의 조건

요즘 공부 꽤나 한다는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열에 아홉은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라고 답한다. 그냥 리더도 아니고, 글로벌 리더다. 확실히 우리가 어렸을 때와는 생각의 규모가 다르다.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면서도 왜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꿈을 꾸게 되었는지 개운치 않다.

<리더십에 관한 21가지 불변의 법칙>을 얘기한 존 맥스웰(John Maxwell)에 따르면, 사람들은 먼저 대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대신 대의를 전파하는 리더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리더가 얘기하는 비전을 따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리더는 좋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리더로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훌륭한 비전이나 대의명분을 제시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지식이 있고 비전이 있어도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은 늘 사사로운 이익에 민첩한 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리더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설령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여 리더가 된다 하더라도 기회주의자들의 밑천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기회주의자가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 조직은 금세 망가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기회주의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리더로서 받아들여질 것이고, 사람들은 리더의 비전을 따르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기 기회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일 뿐 지도자로 모시지 않는 것이 내 철학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들을 포섭의 대상으로 보았으나,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민초는 기회주의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다만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눈 앞의 이익에 민첩하기 때문에 이익을 앞세우는 세상에서 득세하게 되어 있다. 그들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저 압도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인물은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기회주의자가 아닌 리더가 되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다. 생각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다. 리더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면, 리더보다는 민초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꿈이 소박하면 할수록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부음(訃音)

부음(訃音)

인간들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이후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고, 인간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려 말세인 세상을 구원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때때로 후세에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걸출한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인간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을 저주하여 죽였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꽃같은 젊은이들이 매일매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그들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젊은 시절, 기성세대들의 탐욕을 욕했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자 그들의 부모를 닮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말도 안되는 변명을 뇌까리면서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정글로 몰아넣었다.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 중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부터 죽어나갔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영화 제목으로만 의미가 있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보다 나이 어린 이들의 부음(訃音)을 받을 때만큼 고역스런 일이 없다. 그들의 죽음에 공범 아닌 공범으로 그리고 기성세대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만큼 불쌍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야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손으로 자기가 낳은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절망하여 세상을 뜨고, 부모들은 먼저 간 자식들을 생각하며 절망한다. 운 좋게도 아직 그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을 위한다며 그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절망의 악순환은 중단되지 않는다.

섬진강의 매화와 진해의 벚꽃이 만개하여 이 조그마한 땅 한반도에 온통 꽃향기 휘날릴 때에, 어떤 아이들은 어디선가 혼자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에 슬픈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특별해지기를 포기하라

특별해지기를 포기하라

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리 짧지도 않았던 나의 생을 돌아보면 대체로 평온했다. 운이 몹시 좋은 편이었다. 그것 밖에는 달리 평온한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을 고통이라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시련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시련도 사라져야 할 때가 되니 사라져 버렸다. 아무것도 의도한 것은 없었다. 대체로 평온한 삶 속에서 나는 순간순간 행복했는데, 그 행복한 이유는 아무것도 집착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가 무척 빠른 사람이었다.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라는 속담은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한번은 찍어 보지만 넘어가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열에 아홉은 한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였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는 한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가 있었고, 나는 그 나무를 선택해 버렸다. 내 삶의 궤적은 그런 식으로 결정되어졌다. 학교도, 직장도, 결혼도 모두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이 왜 성공을 하려 하는지, 왜 부와 명예를 쫓는지,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성공, 부, 명예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면 대체로 편안해진다. 무엇을 갖고자 하는 욕망,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것이 “책”인데, 그것도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 의미가 없어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여전히 책을 사고 책을 읽는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학자, 릭 핸슨(Rick Hanson)과 리처드 멘디우스(Richard Mendius)가 쓴 책 <붓다 브레인(Budda’s Brain)>은 추천할만한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자아 내려놓기”는 누구나 한번은 읽어보았으면 하는 부분인데, 특히 내 삶의 궤적을 합리화할 수 있는과학적 논리를 제공해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몹시 기쁘고 행복했다. 저자들이 신경과 뇌를 연구하면서 밝힌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는 “나” 또는 “자아”는 환상이라는 사실이다.
신경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 느끼는 통합적인 자아란, 완전한 환상에 불과하다. 뚜렷하게 일관성 있고 확고한 ‘나’라는 개념은 사실은 발달 과정을 거쳐 여러 하부 및 하부-하부 체계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여기에는 어떤 뚜렷한 중추도 없으며 ‘나’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희미하고 산만한 주관성의 경험을 통해 날조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란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결국 종교(특히, 불교)에서 얘기하는 깨달음의 첫걸음은 이런 자아의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자아가 원래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면 자아를 벗어나기가 한결 쉬울 것 같다.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인데, 그 개념은 욕망과 함께 자라난다.
자아는 소유에서 자라난다. 자아는 주먹 쥔 손과 같다. 손을 펴서 내어 주면, 주먹은 사라지고, 자아도 사라진다.
이 대목은 왜 법정 스님께서 늘 무소유를 주장하셨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자아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바로 무소유였기 때문이다. 욕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견고했던 자아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자아가 사라질수록 우리는 평안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몇 가지 충고들은 나를 몹시 기쁘게 했는데, 그것은 때때로 아내가 나에게 “무대책적 낙관주의자”라며 핀잔을 줄 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변명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특별해지기를 포기하라. 중요한 사람이 되고 존경받고 싶다는 갈망을 버려라. 포기는 집착의 반대이므로 행복으로 가는 특별한 급행로이기도 하다.
특별한 사람이 될 이유도 없었고, 되고 싶지도 않았던 내 삶이 비로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소설에는 “행복”라는 화두를 지니고 여행을 떠나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가 등장한다. 꾸뻬 씨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통해 꾸뻬 씨가 배우게 된 23가지의 지혜들은 행복에 관한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또는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그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 또는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 완성된다.

꾸뻬 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늙은 스님은 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는지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게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p. 190>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 한 조각 바라보면서,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한송이를 바라보면서, 무더위를 식히는 한줄기 소나기를 바라보면서, 저녁 밥에 스며있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길을 느끼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무한히 감사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파랑새다.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우연히 찾은 당신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할 것이며, 그로 인해 나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지리라.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미국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 운동의 지도자이자 시인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To laugh often and love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rsons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obation of honest citizen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give of one’s self;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have played and laughed with enthusiasm and sung with exulta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this is to have succeeded.

<Ralph Waldo Emerson, What is Success?>

시인 류시화는 이 말을 이렇게 번역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류시화 역, 무엇이 성공인가>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안다면, 그리고 나의 삶이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했다면, 나는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다. 성공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충만한 마음만 가지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덧.

위의 구절이 에머슨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군요. 누구의 것이든 깊은 성찰이 있는 구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http://www.cas.sc.edu/engl/emerson/Ephemera/Success.html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아홉살 먹은 딸아이는 아직도 성탄절을 기다리며 예수님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놓았다. 예수님이 읽어 보고 꼭 선물을 달라는 애원(또는 협박?)이었다. 편지 앞면에는 예수의 탄생 장면이 그려져 있고, 뒷면(이면)에는 예수님께 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었다.

예수님께!

예수님, 내일이 예수님의 생신 성탄절이에요.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죠?

저는 욕심꾸러기에요. 어쩌면 선물을 받고 싶어서 이러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용서해 주실 거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벌을 받을께요…

이면지를 꼭!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편지를 본 아빠의 마음은 급해졌다. 예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탄 전날, 많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았고, 동네 장난감 가게만이 나와 같이 마음 급한 부모들로 북적거렸다.

12월 25일이 예수 탄신일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분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고,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 그것 이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

딸아이는 정확하게 예수님의 참뜻을 알고 있었고, 그것과 더불어 한가지 더, “선물”을 바라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고, 아빠는 선물을 마련하였다.

천국이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늘 행복하다.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들으며 무심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일본으로 지나간 태풍때문인지, 하늘은 맑고 깨끗했으며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나무들은 서서히 온몸으로 가을을 증거하려 하고 있었다. 그 노래와 가을의 풍광은 겹쳐지고 뒤섞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스런 노랫말 그리고 청명한 가을의 풍경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 사람이 아내라는 사실에 나는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10여년을 넘게 살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삶에 대한 지향과 세계관이 비슷했다. 아내는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기뻐할 때나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아내는 내 곁에 있었다.

아내를 만나고 많이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사람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신 앞에 선 단독자들이지만, 그것이 진리라 하더라도 이 생에서 아내와 같이 살게 되어서 행복했다.

아내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나도 아내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로 인해 내가 행복했던 것처럼 아내도 나를 만나 10년을 넘게 사는 동안 그렇게 행복했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고, 아내와 같이 산 날들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삶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이적, 다행이다>

이 노래를 연습해서 아내에게 불러줄 생각이다. 그러면 아내의 고단함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한비야, 지혜로운 삶을 말하다

한비야, 지혜로운 삶을 말하다

미리내 님의 글들을 보다가 한비야가 새책을 내며 독자들과 나눈 대화를 보게 되었다. 한비야의 책을 꽤 읽긴 했지만, 그의 삶의 태도가 놀랍도록 성숙한 줄은 몰랐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한비야의 책을 내게 처음 선물해준 이는 지금 내 아내다. 결혼 전 아내는 한비야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 그리고 그 에너지가 펄펄 끓어 넘치는 모습은 20대의 여성들에게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의 책을 거의 모두 섭렵했고 그의 열정이 몹시도 부러웠지만, 아내처럼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같이 삶에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사람과 한비야의 열정은 양립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희망이나 열정이 없었다. 그냥 주어지는대로, 물이 흐르는대로 몸을 맡길 뿐이었다. 때문에 나에게 도전이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 삶은 이리저리 나를 데려갔다. 그런 나에게 한비야의 모습은 전혀 다른 종족의 삶이었다. 나는 도전하지 않았고 어떤 성취를 바라지 않았다. 한비야는 끊임없이 도전했고,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어갔다. 나는 한비야의 삶을 존경했지만, 동경하지는 않았다.

한비야가 새책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든 이들이 공평한 삶을 사는 세상,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세상이죠. 그런 세상이 올까요?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요? 난 40대 때의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부었어요. 그런데 세상은 변했나요? 그대로예요. 바보들의 행진.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나는 너무 행복해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빛의 딸 한비야, “58년 개띠, 난 아직 뭐가 될지 궁금해요”, 오마이뉴스]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 과정이 너무 행복했단다. 너무나 행복해서 아무것도 이루지는 못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단다.

한비야의 에너지와 도전정신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토록 지혜로운지는 미처 몰랐다. 무엇을 이루려기 보다는 삶의 과정을 즐기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그는 몸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이 한비야의 행복한 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줄 것이다. 나는 늘 그렇듯 물처럼 흘러갈 것이지만, 한비야의 도전을 지켜볼 것이고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아내는 여전히 한비야를 좋아한다. 그의 새책을 아내에게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