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1] 라벤더와 침묵 – 세낭크 수도원
햇볕이 빽빽하게 내리쬐는 날, 건조한 바람은 지중해 쪽으로 불었다. 론강에는 푸른 물이 흘러 넘치고 포도밭과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프로방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채 마을 고르드를 지나 세낭콜 계곡 깊은 곳에 라벤더 향기 은은한데, 그곳에 소박한 수도원이 숨어 있다.
프로방스의 세 자매 중 하나로 알려진 세낭크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énanque). 해마다 여름이면 수도원 주위로 라벤더 꽃이 넘실댄다. 이 수도원은 기도와 침묵의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그곳의 수사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기도와 묵상 그리고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수도원 2층에는 수사들의 기숙사가 있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회랑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중정이 있고, 로마네스크 풍의 교회 종탑이 보인다. 회랑 옆으로 수도원 예배당이 나오는데, 그야말로 검이불루(儉而不陋) 예배 공간이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경건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곳이다. 프랑스에는 마을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한 성당들이 있는데, 세낭크 수도원의 검소한 예배당만큼 인상적인 곳은 없었다.
계단 왼편에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필사실이 있고, 계단 오른편에는 회의실이 있는데 수도원장과 수사들이 모여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읽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말이 허락되는 방이다. 침묵 속에서 수사들의 내면은 깊어간다.
라벤더의 꽃말은 침묵이다. 수사들이 왜 라벤더 농사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사들은 침묵 속에서 침묵의 라벤더를 키운다. 라벤더 향이 프로방스 들판에 퍼진다. 그 향기 속에서 사랑과 구원의 길을 깨닫는다.
7월에 프로방스를 여행한다면, 라벤더 꽃이 만발한 세낭크 수도원과 아름다운 성채 마을 고르드를 가야 한다. 그리고 보라빛 사랑과 침묵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