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네 가진대로 찍어라
이 글은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조중동문 같은 후안무치한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들에게 속아서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쓴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집도 없이 월세나 전세를 살면서 “세금폭탄”이라는 말 한마디에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얘기하기 위해 쓴 글이다. 지난 대선 때, 한 백수 젊은이가 나와서 취직이 안된다며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메가를 지지한다”는 그런 눈물겨운 코메디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오래 전 김규항은 “비판적 지지”라는 투표 행위를 비판하면서 “네 이념대로 찍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김규항은 그 글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비판적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면서, “털끝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는 “네 이념대로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김규항, 네 이념대로 찍어라]
언젠가 얘기했듯이, 나는 “비판적 지지”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정치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이지, 누구를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실제 투표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에게 했다면, 그는 보수주의자다. 따라서 비판적 지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개 위선적이다. 자기의 진보적 이념과 보수적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과 행위를 해왔는지 더 주의깊게 본다.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은 현재의 그 사람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말로 하는 진보를 믿지 않는다. 그 말들이 아무런 달콤하고 장미빛 미래를 보여준다 해도 그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념대로 찍어라”는 김규항의 충고는 담백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념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념을 잘 믿지 않는 이유는 자기 이념의 변절자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때 대한민국 대표적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빨갱이를 때려잡는 반공의 화신이 되었고, 극렬 좌파였던 이재오, 김문수는 수구 정당에 들어가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대학을 다닐때 노동자, 민중을 위해 투쟁했던 대다수 학생회장들은 보수 정당에서 궁물이나 빨아먹는 존재들이 되었다.
선거에서 우리는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기준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잣대가 필요하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며 도덕적 파탄자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은 씨도 안먹히는 얘기다. 하여 나는 주장한다. 당신들이 가진대로 찍어라. 당신들의 재산대로 찍어라.
당신이 고려대 같은 명문대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니며, 강남에 십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찍는 것이 맞다. 이 말은 경제적 관점에서만 얘기한 것이다. 물론, 당신이 고소영 범주이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진보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당신이 월세, 전세를 살면서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아이들 사교육비를 걱정하며 제발 양극화가 해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고 억대 연봉자도 아니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현재 처지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당신은 당신의 어리석은 정치의식 때문에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총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될 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헤아려 보시라. 그리고 당신이 가진대로 찍으면 된다. 이것이 서민이라 불리는 당신에게 드리는 기본적인 투표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