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의 성공, 한 명의 진중권보다 4백만의 관객이 낫다
2001년 짐 웨일스가 위키피디아라는 온라인 백과사전을 시작했을 때 아무도 그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일반 네티즌들이 백과사전을 쓰다니, 게다가 아무런 통제도 없고 편집자도 없이. 이건 거의 21세기형 돈키호테 프로젝트라 여겨졌다. 그런데 돈키호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비아냥거리던 지식인들조차 그제서야 “집단 지성” 운운하면서 위키피디아 현상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은 위키피디아에는 쓰레기 정보만 가득하다면서 여전히 찌질댔다.
작년 네이처에서 위키피디아와 기존의 최강 백과사전이었던 브리태니커의 정확성을 비교했는데, 결과는 막상막하였다. 4000여명의 박사들이 저술한 브리태니커와 이름 모를 네티즌들이 아무 보수도 없이 “자기가 그냥 하고 싶어서” 만든 위키피디아가 거의 동등한 질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보다 15배쯤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추가되고 갱신되고 있다. 브리태니커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면 적어도 2년이 걸리는데, 위키피디아의 잘못된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수정된다.
유명한 미학자이자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백분토론에서 심형래의 영화의 “형편없음”을 다시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론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까지 들이대면서 “디 워”의 허술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진중권이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도 알만큼 안다. 심형래의 영화가 훌륭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중고등학생 정도만 되도 다 안다.
관객들은 7000원의 입장료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심형래가 지난 20여년간 보여준 열정을 이해하고 성취를 평가하기 때문에 설령 영화 구조가 허술하더라도 눈감아줄만큼은 관대하다. 개봉된 지 2주만에 400백만명이 찾았고 계속 흥행을 한다는 사실은 “디 워”가 관객들에게 7000원 이상의 뭔가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
누구든 영화에 대해 좋고 나쁨을 얘기할 수 있다. 영화 평론가든, 관객이든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관객들과 네티즌들이 화가 난 것은 영화의 주류 집단 (충무로와 몇몇 감독들 그리고 평론가들) 의 태도 때문이다.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하며 관객들의 가르치려 할 뿐만 아니라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이중적 태도 (그들은 심형래를 같은 영화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스토리의 구조는 다소 허술하지만 심형래 감독의 초기작에 비한다면 현저한 발전을 이루었다”라는 것과 “300억짜리 루즈를 바르다고 예뻐지나”라고 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디 워”에 대해 심형래가 홍보에 들어갔을 때 언론이 떠들었던 것은 심형래의 “학력 위조” 주장이었다. 심형래가 20여년간 이룬 성취는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사실 심형래의 영화보다 더 허접한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계는 심형래의 성공을 반겨야 하는 것 아닌가? 올해 한국 영화가 죽을 쓰고 있다니 울상지우면서 왜 심형래의 영화를 옹호하고 열광하는 관객들을 “적”으로 돌리는가? 스크린 쿼터만 사수하면 한국 영화가 지켜지나? 홍상수, 이창동의 영화가 필요하다면 심형래의 영화도 필요한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과거 지식인들이 누렸던 권위를 추락시켰다. 네티즌들의 집단 지성은 4000여명의 박사보다도 훨씬 창조적이고 방대한 지식을 생산해냈다. 세상이 변했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진중권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이제 네티즌들은 예전의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계층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더욱 생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건 지식인들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중권들은 결국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한국 영화계에 필요한 것은 한 명의 진중권이 아니라 400백만명의 관객이다. 관객들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관객들을 믿어라. 결국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무모해 보이는, 바보같이 보이는 돈키호테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