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15년 간의 동거를 끝내며
네가 내게로 온 것이 그러니까 내가 처음 직장에 들어간 날이었지. 나는 그날을 아직도 기억해. 어머니가 입사를 축하한다며 내 바지 주머니에 너를 찔러 넣어 주셨다. 너는 평범했지만 깔끔한 녀석이었어. 그날 이후로 넌 15년 동안 단 하루도 날 떠나지 않았지.
넌 매일 내 엉덩이에 눌려 있으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내가 잡동사니를 마구 구겨 넣었을 때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어. 친구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스티커 사진을 붙여 주었을 때, 너는 잔잔하게 웃었다. 그 스티커 사진이 이제 빛이 바래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네.
네가 낡아갈수록 그리고 볼품 없어질수록 난 너에게 더 정이 들었단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너를 버리라고 성화일 때도 너를 외면할 수 없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너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런 물건이 되어 버렸지.
이제 너를 떠나 보낼 때가 되었나 봐. 지난 15년간 내 바지 주머니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너를 놓아주어야 할 것 같아. 미안하다. 너를 더 잘 보살폈으면 네가 지금보다는 좀 더 낫지 않았을까? 내 무심함조차 이해해 주는 너를 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너를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었어. 너와의 고락이 묻어 있는 그 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의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잘 가라. 그리고 이제 편히 쉬어, 나의 까만 지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