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며느리 또는 공벌레
새벽에 명상을 하려고 앉았는데, 책장 밑에서 벌레 한 마리 기어 나온다. 자세히 보니 쥐며느리 같다. 아파트 10층에 이 녀석이 어떻게 올라왔을까, 신기해서 가만히 쳐다보다가, 살짝 건드려보니, 어라! 이 녀석이 공처럼 몸을 말아 버리네. 쥐며느리처럼 생겼지만, 건드렸을 때 몸을 마는 녀석은 ‘공벌레’라고 하는구나. 한참 몸을 말고 있다가 아무 기척이 없으니 다시 몸을 폈는데, 아뿔싸! 그만 몸이 뒤집어져 허연 배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몸을 뒤집으려고 짧은 다리로 버둥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그래서 도와주려고 살짝 건드리니 다시 몸을 말아 버린다. 아무리 해도 녀석을 도와줄 방법이 없다. 건들기만 하면 몸을 말아 공이 되고, 몸을 펴면 뒤집어져 있고.
삶의 법칙이 공벌레 한 마리에게도 에누리 없이 적용된다. 결국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한다는 그 법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