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 주례를 맡기에는 아직 삶의 경륜과 깊이가 모자라 주저하였다. 하지만, 이미 2년 전에 처음 주례를 했었고, 신랑, 신부를 모두 잘 아는 처지라 거절할 수 없었다.
신랑, 신부는 슬기롭고 신의있는 친구들이라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평생 행복하게 잘 살 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이란 것이 보통 일생에 한 번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니, 그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전략>
결혼식에 가보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합니다. 부부가 일심동체로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사는 부부는 많지 않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사랑하고 결혼했지만,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갑자기 부부가 되었다고 한마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일심동체로 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이제 막 남편과 아내로 시작하는 신랑 신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기 바랍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두 사람은 닮아있을 겁니다. 겉모습도 닮을 것이고, 마음 씀씀이도 닮을 것이며, 인생의 목표도 닮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 일심동체의 부부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 시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단편 중에 <세 가지 질문>이라는 짧은 우화가 있습니다.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화두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첫 번째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가불하지 마십시오. 행복의 시작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 없이 즐기고 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두 번째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신랑에게는 신부가, 신부에게는 신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부모님께는 섭섭하게 들릴지 몰라도, 오늘부터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모님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오늘부터 늘 함께 하면서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그 사랑과 행복이 널리 퍼져, 다른 사람들도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파랑새입니다.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후회 없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고,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두 사람의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 차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시 한 편을 신랑 신부에게 선물하며, 이 주례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신랑과 신부는 서로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로운 삶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저를 포함한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신랑 신부가 걸어갈 삶의 여정에 늘 건강과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