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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제사

역설(亦雪)과 역설(逆說)

역설(亦雪)과 역설(逆說)

북쪽에서 온 눈보라는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흰 눈 속의 강산과 마을은 하릴없이 적막했고, 거센 찬바람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이런 날씨에 친구를 찾기 위해 남도까지 왔다고 하면 모두들 정신나갔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지난 날 그가 보여 준 따스한 정이 사무치게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흔적 없는 눈 덮인 들판을 지나 동네 어귀에 이르자, 인적은 보이지 않고 개들만 컹컹 짖었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눈보라 속에 10년 전 세상을 달리한 친구가 잠들어 있을만한 곳을 더듬더듬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한 자의 눈이 쌓여 있었다. 둥근 봉분 안에 잠들어 있을 친구와 10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달려온 여덟 명의 동기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추억하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슬픔보다는 아련함을 남겼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살아 남은 녀석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고, 그 선물은 마법처럼 1년에 한 번씩 우리를 만나게 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건만, 30년 전의 싱그러운 청춘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넋두리는 눈 내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기약없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진도아리랑을 따라 멀리 간 친구에게

진도아리랑을 따라 멀리 간 친구에게

남도의 겨울은 하릴없이 따뜻했다. 바다 바람은 거셌지만 그 속에서 봄내음을 느낄 만큼 겨울은 저만치 멀어져 갔다. 동백은 좀 이르다 싶게 꽃을 피웠고, 그 꽃의 붉은 빛에 하늘은 높았다.

흔들리는 갈대와 푸른 배추밭 사이로 친구는 잠들어 있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비석에는 그를 보내는 남편의 짧은 글귀가 서럽게 새겨져 있었다. 친구가 남기고 간 세 아이의 이름이 눈에 시렸다. 엄마 없이 살아야 할 녀석들의 시간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친구와 함께 보냈던,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언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두터운 봉분 속에 누워있는 친구가 그리웠고, 그 흙의 두께조차 감당하지 못한 우리들의 부질없음이 야속했다.

진도의 개들은 허공을 보고 짖어댔고, 배추밭에 엎드려 있는 아주머니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그 노래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기약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치어다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려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 창파 둥둥 뜬 저 배야
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