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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정치인

사이다를 믿지 마라

사이다를 믿지 마라

무더운 여름날 마시는 사이다 한 잔은 시원하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사이다를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난다. 사이다 속의 설탕으로 몸 속의 당분이 증가하고 삼투압이 높아져 더 심한 갈증을 느낀다.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는 비만과 각종 성인병을 일으킨다.

가슴 후련한 말을 자주 하는 정치인을 사이다라고 한다. 사이다 발언은 시원하다. 시원한 말들은 청량하지만 거칠고 가볍다. 가벼운 말들은 쉽게 흩어지고 쉽게 바뀐다. 그것은 리더의 말이 아니고, 선동가의 말이다. 리더의 말은 진중하다. 리더는 말에 책임져야 하고, 그 말은 행위로써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리더의 말은 무겁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모든 국가나 조직이나 단체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정당의 대표나 대선후보는 당원들이 정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눈 앞의 유불리 때문에 이 원칙을 훼손한다면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정치인들의 사이다 발언에 현혹되지 말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 정치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면 그의 밑천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선택할 때는 사이다를 믿지 마라. 사이다는 사이비일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신사의 품격

문재인, 신사의 품격

세상의 거의 모든 탐욕과 이해가 충돌하는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품격과 헌신으로 비전과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정치인이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의원이 보여준 지난 1년간의 모습은 (진중권이 얘기했듯이) 초인적 인내를 바탕으로 한 품격과 헌신 그 자체였다.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고, 멋진 신사다. 그처럼 좋은 사람은 야수의 탐욕에 맞서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견뎌야 하는 정치인과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처럼 마음이 선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이가 정치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비루한 나라 (백성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치판에 벼락 같은 축복이고, 어찌 보면 불가해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문재인이 정치판에 들어올 일은 없었다. 노무현의 운명이 문재인의 운명이 되었고, 결국 노무현을 죽인 이 땅의 기득권을 가진 빌어먹을 기회주의자들이 문재인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셈이다.

문재인이 당대표로 선출된 후 당내 비주류들은 그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흔들어댔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을 정도로 그들의 공격은 집요했고 악랄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단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문재인은 한 번도 화를 낸 적도 없고 큰소리를 친 적도 없다. 묵묵히 견디면서 당의 혁신을 위해 대표가 해야할 일들을 견고히 해나갔다.

혁신위원회에서 나온 혁신안을 제도화했고, 유능한 인재들을 두루 모아 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10만명이 넘는 자발적 당원을 확보했다. 그는 단 한 차례도 사심을 가지고 일을 한 적이 없다. 정치인이 단 한 차례도 사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했듯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드러웠지만 견고했다. 어눌한 듯하지만 세련되었다. 흔들리는 듯했지만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 늘 정직하고 정도를 행했다. 언제나 당원과 국민만을 생각했다. 정말 성숙한 인격과 품위를 갖춘 정치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만큼 당 대표직을 훌륭히 수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문재인을 보면서 안쓰럽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묵묵히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해내는 그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의 정치적 앞날이 밝지는 않지만, 만약에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2002년에 이어 또 하나의 기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은 가장 선하고 품격있는 지도자를 맞을 것이다.

문재인이 있기에 숨을 쉴 수 있었던 지난 1년이었다. 그의 인품에 감동하고 그의 헌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 15 남북정상회담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안철수 그리고 정치인의 조건

안철수 그리고 정치인의 조건

9월 초부터 몰아닥친 안철수 태풍이 박원순 변호사와의 단일화로 일단락되었다. 윤여준이라는 모사꾼과 언론이 부추긴 안철수 현상은 그의 권력 의지 부족과 준비 부족으로 일단 중단되었는데, 안철수 교수는 현 시점에서 아주 현명한 결정을 내린 셈이다.

안철수 교수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상식에 기반한 삶을 추구하는 인물로 능력이 뛰어나며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최근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의 청춘콘서트라는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

그의 평소 이미지로 봤을 때, 그는 정치인이라는 직업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그의 말투나 음성에서는 정치지도자 특유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다. 그에게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대학 교수라는 직업이 훨씬 잘 어울리고 잘 해낼 것 같다.

안철수 교수의 정치적 성향이나 좌표를 알 수 없는 현 시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나 지지는 유보한다. 그가 여태까지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은 산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정치인으로서 또는 지도자로서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처럼 젊은이들의 인기와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인물이 만약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른 정치인들처럼 그렇게 쉽게 밑천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신문방송에서 한 이야기들이 정말 그의 내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그를 지지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실망과 열패감을 느끼지 않도록 당당했으면 좋겠다.

안철수 교수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그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 물론 연막전술일 수는 있겠지만, 어떤 때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야권단일후보로도 나설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젠가도 얘기했듯이, 정치적 이념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요소다. 좌우 또는 보수 진보라는 정치적 지향을 확실히 드러낼 때 그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안철수 교수가 정치를 시작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지향 또는 이념이 같은 세력, 정당과 함께 해야 한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 단기필마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설령 당선된다 하더라도 시장이나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세력이고 안철수는 어떤 세력과 계층을 대변할 것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는 슈퍼맨이 아니다.

안철수 교수가 그의 말대로 역사의식이 있다면, 그는 이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대립과 갈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과 독재세력들이 특권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재벌, 언론, 검찰로 상징되는 권력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행위들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있어야 한다. 조중동, 한나라당, 그리고 뉴라이트가 어떤 족속들인지 그는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역사의식이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당연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어떤 식으로든 계승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에서 평가받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그럴 자신과 용기가 없을 때는 아예 정치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이 안철수 본인이나 안철수를 존경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

역사의식이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수구반동 기득권 세력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것은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다. 안철수가 그 정도의 강단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안철수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0.1% 안에 드는 기득권층이다. 선량하고 유약한 기득권층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겸 학자가 사악한 조중동, 검찰, 한나라당을 이기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판단을 유보하지만, 사실 회의적이다.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정치에 뛰어들지 말고 차라리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남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그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나 여러 모로 유익하다. 그리고 절대 윤여준 같은 모사꾼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는 여우의 꾀를 가진 뱀과 같은 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안철수 태풍은 지나갔고, 안철수는 현명한 결정을 했다. 그가 여전히 많이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로 남았으면 한다. 정치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마저 기회주의자로 판명이 난다면 정말 많은 젊은이들의 배신감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

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