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더 이상 투표를 구걸하지 않겠다
며칠 전,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한 무리의 군인 아저씨들을 만났다. 군인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아저씨들로 불린다. 이 군인 아저씨들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솜털 보송보송한 애송이들이었다. 어렸을 때, 군인 아저씨들한테 위문 편지를 쓸 때는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을 연상했었는데, 정작 군인 아저씨들은 나이 어린, 갓 피어난 청년들이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많은 중년의 나는, 동생 같기도 하고 조카 같기도 한 이 청년들을 보면 울컥해지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들은 꿈을 먹고 살아가야할 청춘이 있건만, 그 청춘은 온통 회색빛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앞세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땅은 늘 그렇게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언제나 척박했고 회색이었다.
예전에 나는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나무라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며 이런 글들을 썼었다.
대체로 좋은 글들이지만, 이런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젊은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나는 모른다. 정의가 강물 같이 흐르는 세상을 원하는지, 아니면 그냥 자기 앞가림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인 세상을 원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지방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사실상 국민들이 제대로 투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강물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남북관계를 더 이상 파탄에 빠뜨리지 않고 전쟁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더 이상 20대, 30대 젊은이들에게 투표하라고 구걸하지도, 강요하지도, 부탁하지도 않기로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더러는 동의하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겠으나, 대체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단지 특정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선거가 되었다.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선거는 경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버렸다.
찍을 사람이 없어서, 또는 그놈이 그놈이니까, 바빠서,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등등 젊은이들의 판단과 변명은 여러가지일 수 있겠으나, 객관적 현실은 그들의 판단이나 변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자유 의지”이다. 우리의 내일은 곧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투표를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유로부터 생겨난 내일이 그들에게 오늘보다는 조금 더 살아갈 만한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구걸하거나 부탁하지 않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은 깊이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아닌 권리 같지만,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결국 우리는 끝내 바다에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
이제 일주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