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을 위로하며, 책임은 열린우리당이 져야 한다
전효숙을 격려하기 위한 쓴 나의 글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안이 철회됐다. 안타깝다. 세달 이상 마음고생 했을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에게 위로를 보낸다.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헌법재판관이었지만, 가장 당당하고 상식적인 판사였다. 그가 헌재소장이 되었으면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보여온 수구성을 탈피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안타깝다.
상황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물론 민주당의 조순형이나 한나라당 패거리의 억지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일차적인 이유겠지만, 그들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이라크 파병안을 제외하고) 정부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 묻지마 반대를 해 온 자들에게 바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130여명의 국회의원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책임을 따져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문제는 열린우리당과 국회의장이다. 국회 운영의 책임은 이들에게 있다. 아무리 한나라당이 개판을 쳐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소수당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이들은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갖고 있는 국회 다수당이자 여당이다.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투표 절차도 수행하지 못하고, 스스로 한나라당의 꼬붕 신세로 내려 앉으니 국민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이 왜 손가락질 받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 한심하고도 불쌍한 사람들이다. 앞으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할 모든 일은 사실 한나라당의 결제를 받아야 할 일로 전락됐다. 제발 정신차리길 바란다.
전효숙은 자신의 헌재소장 후보 지명 철회를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저는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던 중 대통령이 지명하는 헌법재판관겸 재판소장으로 임명받기 위하여 재판관직을 사직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 3인씩 지명 또는 선출한 사람을 임명하게 되어 있고, 재판소장의 임기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는 현행 헌법의 다양한 해석 중 헌법재판소의 독립과 안정을 위하여 가장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견해를 취하고 대법원장이 저의 후임재판관을 지명하기 위한 절차상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보자의 지명과정은 대통령과의 면담 등 통상의 인사절차를 따랐으며, 구체적인 절차진행을 위한 최종통보가 실무자와의 통화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후보자는 국회의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3일간의 혹독한 청문절차를 마쳤으나, 법적 견해를 달리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요청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의 청문을 구하는 절차까지 보정하였습니다. 그동안 이러한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편향된 법리만이 강조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평생 재판업무에만 종사해 온 후보자가 국회 밖에서 달리 의견을 표명하여 논쟁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묵묵히 국회의 다음 절차 진행을 기다려 왔습니다.
후보자의 자질에 관한 평가나 관련 헌법 및 법률 규정에 관한 견해는 국회의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국회는 표결절차를 통해 다수결의 법리에 의하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국회의원들은 독자적인 법리만이 진리인양 강변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대로 보정하여 진행한 절차까지도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인신 공격으로 후보자를 폄하하며 사퇴를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물리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러한 행위야말로 헌법재판소 및 재판관의 권위와 독립을 해하고 헌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므로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물리적인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을 계속하고 있는 바, 문제가 어렵다고 풀지 않고 출제철회를 바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장기간 미루어 두는 것 역시 국회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행위로서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떠하든, 더 이상 헌법재판소장의 공백상태가 지속되면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헌법수호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므로 제가 후보 수락의사를 철회함으로써 이번 사태가 종결되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은 훌륭한 헌재소장을 가질 기회를 잃었고, 열린우리당은 그들의 무능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