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나간 날
아침에 출근하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사무실 형광등은 빛을 발하지 않았다. 컴퓨터에 전원 공급이 끊겼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았다.
사방이 고요한 침묵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책상 앞에 앉아 묵혀 둔 책을 꺼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하루 종일 그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여직원에게 제발 시설팀에 전화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여직원은 피식 웃으면서 시설팀에 전화를 걸어 닥달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쯤 세상은 다시 소음 속으로 되돌아갔다.
일주일에 한나절 쯤은 전기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책을 보든지, 동료들과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침묵 속의 여유를 누리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