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나비가 되어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녔다. 그 나비는 잠시 쉬려고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나비가 아니라 장자였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그의 서거 후 처음 그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는 건강해 보였고,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다. 늘 그렇듯 그의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가 가득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고. 마지막 남았던 보좌관도 어제 떠났다고. 내가 그에게 다가가 그의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했다. 한참을 듣고만 있던 그는 “자네는 쓸모 있는 사람이군.”이라고 말하며 저 멀리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를 잡으려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꿈이었다.
꿈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인데, 이번처럼 선명하게 그를 만나서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보다 저 세상에서 훨씬 평안해 보였으나 그의 곁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저 세상에도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떠난 이 세상에는 여전히 그를 탓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수구든 진보든 간에 여간해서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마치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의 모순이 마치 모두 그로부터 시작된 듯이 말한다. 때때로 그와 이명박을 비교하며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목숨까지도 버렸는데 말이다. 우석훈은 이명박의 4대 강이나 노무현의 세종시가 모두 같은 토건이라 말한다. 시사IN의 고종석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박 정권은 나쁜 정권인가? 그렇다. 이 정권은 애오라지 자본의 자기증식 욕망 위에 올라탄 ‘삼마이 정권’이다. 그럼 노무현 정권은 좋은 정권이었나? 모르겠다. 희망 잃은 노동자들이 잇따라 제 몸을 살라도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그들을 훈계한 이가 노무현이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한·미 FTA를 날조된 통계수치 위에서 강행한 이가 노무현이며, 자신의 정치적 결정 때문에 이역만리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자국 시민에게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테러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위엄’을 보인 이가 노무현이고, 당시 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무슨 이념 차이가 있느냐며 이른바 대연정(大聯政)을 꾀했던 이가 노무현이다. 특권(층)이 싫다며 좌충우돌하던 그가 미움이라는 열정을 조금만 합리적으로 배분했더라면, 오늘날 한국 공교육의 터미네이터가 돼버린 외국어고등학교라는 괴물은 진작 없어졌을 것이고, 그 자신이 피해자였던 학벌주의의 힘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종석, 어느 회색인의 서유기>
아무래도 내가 병신인가 보다. 저렇게 똑똑한 지식인들이 노무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난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는 슈퍼맨도 아니었고 신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든 것은 노무현 때문이다. 저들에게 노무현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 보다. 그렇게 하찮은 노무현이고 실패한 노무현인데, 나는 왜 노무현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서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미쳤나 보다. 왜 꿈속에서조차 그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의 곁을 지키겠다고 안달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게지, 아마 그럴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