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딸아이는 연신 팔을 쳐들었다. 안아달라는 얘기다. 이제 만 여섯을 훌쩍 넘긴 아이는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기 시작했다. 키도 제법 크고 몸무게도 늘어나 옛날 아기 때처럼 안고 업고 하기엔 좀 버거웠다.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제 아빠 가면 심심해서 어떡해? 엉~ 엉~ 엉.” 공항까지 웃고 까불면서 따라온 아이의 가슴 속에는 그리움과 허전함이 공존했던 것이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이 아빠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딸아이의 울음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피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나의 분신인 딸아이의 가슴에 나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이 사무쳤다. 아이는 내일이면 또 이 순간의 그리움을 잊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내 가슴은 미어졌다.
나는 딸아이에게 몇 가지를 얘기했다. 건강할 것,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것, 엄마 말씀 잘 들을 것 등등. 딸은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나는 하루 24시간 딸과 같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리 알았다. 내 인생에서 딸과 가장 오랜동안 같이 보낼 시간이라는 것을. 이것은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딸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1년에 고작 두어달 정도.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같이 살더라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지만, 막상 나는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딸아이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부재에 대해 딸아이가 울지만, 그날에는 딸아이의 부재에 대해 내가 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딸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공항을 떠났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