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Tag: 언론

우리나라 신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나라 신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한겨레신문 홍대선 기자의 ‘쫓기고 밀리고’ 자동차 산업 길을 잃다 라는 기사는 우리나라 기자들이 어떻게 독자들을 우롱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끼여서 정말 어려워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중국은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쳐져 있으니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사실이고,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있으니 우리가 그들 사이에 끼여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홍대선 기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자료로 자신의 주장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그림을 한 번 보자.

출처: 한겨레신문

이 그래프를 언뜻 보면 일본과 중국으로의 수출이 최근 들어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눈속임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데이터는 년간 수출액수이고 2007년은 1월부터 4월까지의 수출 액수이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2004년 1월~4월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7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프를 정확히 그리려면 2007년 평균 예상치로 이 액수에다가 3배를 해 줘야 한다. 그러면 2007년말의 년간 대중국 자동차 수출액은 8.1억 달러는 전년도 6억 달러보다 엄청난 증가를 하게 된다. 대일본 수출도 6.3억 달러로 전년도 4.7억 달러보다도 훨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부품 수출 또한 마찬가지다.

기자가 제시한 자료는 오히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선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료는 기자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얘기를 해주고 있다.

홍대선 기자의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걱정하는 마음은 갸륵하다 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독자들을 호도하면 안된다. 이 기사는 지금도 한겨레신문 사이트 첫 헤드라인으로 걸려 있다.

한겨레신문은 제일 믿을만한 신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신뢰도 1위의 신문조차 이런 식의 데이터 조작으로 독자들을 우롱한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보다 100배 먼저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적어도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평가는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어떤가? 이 질문이 쑥쓰러울 정도로 다른 나라의 언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질이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블로그를 까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신문들이 이런 식이라면 멀지 않아 신문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경쟁력도 없을 뿐더러 왜곡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신문은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블로그들이 대체할 것이다.

보도준칙까지 만든 한겨레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다른 신문들이야 더 말해야 무엇하랴.

이젠 우리보구 입 닥치라구?

이젠 우리보구 입 닥치라구?

대통령한테 입 닥치라고 한 선관위가 이젠 네티즌과 블로거들의 입을 막겠다고 나섰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지지 혹은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려서는 안된단다. 그 기준은 선관위가 알아서 정한단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국민이 잠재적 선거법 위반자가 될 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앞으로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포함되거나 정당 명칭과 후보자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 녹음·녹화 테이프를 배부·첩부·살포·상영·게시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특히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금지 문서로 간주되는 만큼 유권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대선D-180일부터 인터넷등에 지지·반대 글 금지, 경향신문]

자기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특정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 안되다는 얘기다. 이것이 세계 제 1의 인터넷 강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군사 독재가 물러간 뒤에 이제 선관위가 국민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대통령만 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젠 주권자인 국민한테 그 화살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의 언론, 출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도대체 선관위가 무슨 권한으로 이 자유를 제한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위반 행위 자체가 법률로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도 않다. 얼마만큼의 표현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기들이 알아서 판단하겠다는 얘기다. 도대체 누가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선관위에게 부여했다는 말인가.

만의 하나라도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선관위에 의해 침해되었을 때 우리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한다. 헌법소원을 비롯한 법적 절차를 통해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필요하면 선관위 앞에서 촛불이라도 들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말이다. 이러한 행위를 선관위가 아무 꺼리낌 없이 하고자 한다면 전 국민의 저항을 받을 것이다. 선거를 민주주의 축제의 장으로 만들지 못하고 감시와 처벌의 장으로 전락시키려는 선관위의 시도에 강력히 저항해야 할 것이다.

상상해 보라. 축구 경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고 관중들의 그리고 국민들의 응원을 막으려는 축구 심판이 있다면, 우리는 그 심판을 뭐라 할 것인가. 미쳤다고 할 것이고, 당장 심판 자격을 박탈해야 할 것이다.

선관위 이성을 찾아라. 국민의 역린을 건들지 말라.

오마이뉴스가 타락한 이유

오마이뉴스가 타락한 이유

짜장면을 먹어보면 중국음식점의 요리 솜씨를 가늠할 수 있다. 짜장면은 가장 값싼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 중국집을 대표하는 기본 음식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잘 하는 집은 다른 음식들도 대개 잘 한다고 보면 틀림없고, 그 음식점을 신뢰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지표이다.

기자실 통폐합 방안과 관련한 대통령과 언론인들의 토론은 사실 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분도 논리도 없는 언론인들이 토론의 달인이라 불리는 대통령을 어떻게 상대할까 하는 점이 궁금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토론을 보았다. 역시 언론인들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언론탄압, 언론통제 등의 극언을 서슴지 않았던 언론들은 토론장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패널로 나왔던 언론단체장들도 정부의 방안에 대해 취지는 공감한다는 투의 주장으로 토론을 맥빠지게 했다.

패널 중에 관심의 대상은 오마이뉴스의 대표 오연호였다. 그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표제로 성공한 인터넷 언론의 대표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진취적인 언론관을 가졌을 것이라 기대했고, 최근 나는 “한국 언론의 타락, 오마이뉴스의 경우”라는 글을 썼기에 오마이뉴스의 변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가재는 게편이었다.

그가 보인 토론의 자세나 주장은 왜 오마이뉴스가 그런 함량 미달 기사로 도배될 수 없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가 대통령에게 보인 무례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기존 언론들의 보도 내용과 태도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다. 그 저렴함의 극치는 “언론 기사의 품질은 기자나 편집데스크에 맡길 일이지, 대통령이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언급에서 드러났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그의 언급은 언론이 특권층이라는 사실을 다시 반증하는 것이다. 기업이 만드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은 소비자들이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기자들이 생산하는 모든 기사와 보도 내용의 최종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취재원이자 독자의 입장에서 기사의 품질을 얘기했지만, 오마이뉴스의 대표는 그 품질의 검증은 언론사에 맡기라고 기염을 토한 것이다.

오마이뉴스 대표의 인식이 이 정도로라면 새로운 언론의 지평을 열었다는 오마이뉴스의 실험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여 성공시킨 것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 내용과 그것을 채워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이 기존의 언론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특권과 오만에 사로잡힌 한국 언론의 문제를 오마이뉴스의 대표조차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언론이 얼마나 심각한 도덕적 해이와 위기에 빠져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짜장면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중국집이 인정받을 수 없듯이,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기자와 언론은 도태되어야 한다. 기사 품질의 평가는 언론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류 인터넷 매체 대표의 말에서 나는 짜장면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중국 음식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어느 중국집 주인의 기름진 얼굴을 발견한다.

오마이뉴스의 미래는 앞으로도 쭉 어두울 것 같다.

지지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이명박

지지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이명박

지지율 1위라는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이명박의 비리 의혹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어제는 박영선 의원이 주가 조작에 대한 의혹을 발표했고, 오늘은 김혁규 의원이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했다. 병역 문제, 선거법 위반에 관련된 문제, 김유찬이 제기한 살해 협박 문제, 출생지에 대한 의혹, BBK 문제, 수천억원 대의 위장 재산 문제 등 가히 비리 의혹의 종합 선물 세트라 할만하다.

우리나라 언론이 제대로 되었다면 이 정도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선거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출마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그 잘난 하이에나 언론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명박은 지지율 1위 후보라는 허울을 쓰고 오늘도 한반도 대운하 삽질 프로젝트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로 보이는 한 블로거는 BBK 김경준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문건의 친필 서명이 조작이라며 그간의 이명박 서명이 담긴 사진들을 모아 그에게 제기된 의혹을 풀어보려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서명들은 모두 같아 보였지만, 그 블로거는 서명이 다르다고 강변했다.

이 블로거가 돈을 받고 이런 일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순수하게 그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안쓰러웠다. 지지자들이 비리 의혹을 풀기 위해 서명 대조 작업까지 벌여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그는 자랑스러워 할까. 그 문건을 차치하고라도 논리적 정황으로 제기되는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그는 정말 이명박이 깨끗하다고 믿는걸까. 그 블로거는 아니라고 얘기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비참해 보였다.

이명박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정치공세, 공작정치라는 말로 일축하고 있고, 그를 비호하는 언론들은 그의 말을 받아쓰기하고 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이고,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명박의 밑천은 TV토론 한 번이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명박은 그의 지지자들을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이 쯤에서 그만두기 바란다. 언론이 얘기하는 지지율 1위라는 보도를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언론 믿어서 망한 사람 여럿이다. 이명박의 지지자에게도 충고한다. 이명박은 당신이 그런 노력을 들여 보호하고 지지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당신의 순수한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

한나라당의 비극은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들이 대선 후보로 유력시 된다는 데 있다. 전혀 본선 경쟁력이 없는, 비리 의혹으로 똘똘 뭉친, 비전도 철학도 전략도 없는 이런 인물들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는 데 이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막상 본선이 시작되면 한나라당과 언론들은 극도로 당황할 것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로는 정권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본선이 시작되고야 알 것이지만, 그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아마 회창옹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손학규의 탈당으로 한나라당의 집권은 물건너 갔다.

지지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민주주의의 에일리언들, 6월은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에일리언들, 6월은 끝나지 않았다

20년 전 우리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최류탄 연기 자욱한 거리를 누볐었다. 그렇다. 민주주의를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수 많은 열사들과 민중들이 흘린 피 위에서 호헌은 철폐되었고, 독재는 물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전두환, 노태우는 주머니에 29만원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심어 놓은 세력들은 에일리언의 알처럼 민주주의에 기생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다.

군부독재가 사라진 이후 이 땅의 언론들은 그 부당한 권력을 독차지했다. 제대로 된 기자와 언론인들이 독재에 저항하다 도태된 이후 한국의 언론은 에일리언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건전한 상식과 가치가 전도되었고, 여론은 왜곡되었다. 민주 세력이 흘린 피와 땀은 언론에 의해 매도되었다.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 이 말도 되지 않는 마타도어가 언론에 의해 만들어졌고, 무의식 중에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좀먹었다. 6월 항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한겨레신문마저 이들 언론 에일리언들과 놀아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뼈아픈 고통이다.

그렇게 힘들고 소중하게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국회에서조차 유린당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김형오라는 에일리언은 국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어 “피 흘리며 이룩한 민주주의가 밑둥치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 언론자유와 정당정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자유의 위기는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당의 위기는 열린우리당과 집권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방안을 “세계적인 웃음거리이자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언론탄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정부는 국민에게 숨기지 않으면 안 될 무슨 비밀이 있냐”고 반문하며 “노 대통령이 언론을 탄압한 독재적 발상을 가진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형오 “피흘려 이룩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민주주의를 탄압한 박정희, 전두환을 시조로 모시고 있는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라는 자가 한 말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이 20년이 지난 후에 하는 말들이다. 역사는 이렇게 뒤틀려가고 있다. 어떤 언론도 이 김형오라는 자의 말을 비판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피를 나눈 에일리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김형오라는 작자가 20년전 무엇을 했기에 저렇게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여 그의 약력을 찾아보았다. 그는 역시 5공의 청와대 비서실 출신이었다. 전두환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 에일리언들과 싸우는 최후의 정치인이다. 그는 에일리언들에게 극도로 탄압받는 대통령이지만, 오늘도 그들의 심장을 겨누어 일타를 날렸다.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민주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지난날의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들고 나와 민주적 가치와 정책이 아니라 지난날 개발독재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독재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 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하여 민주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 중에 누구도 국민 앞에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군사독재의 잔재들은 아직도 건재하여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고, 민주세력은 패배주의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6월항쟁 20년, 국민주권의 시대 열자”]

누가 뭐라 해도 노무현과 참여 정부는 6월항쟁의 계승자다. 민주주의의 에일리언들과 이렇게 처절하게 맞서는 사람은 노무현 밖에 없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도 역시 노무현이다. 친일과 군부독재의 잔재를 정리하지 않고, 언론을 개혁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다.

하여 나는 노무현을 끝까지 지지함으로써 나의 6월항쟁을 계속할 것이다. 노무현과 함께 이 땅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그냥 민주주의의 무임승차자로 남을 것인가? 저 에일리언들과 같이 민주주의를 좀먹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것인가?

우리의 6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홍길동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홍길동인가

홍길동은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었다. 봉건사회에서 신분이 천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건 봉건사회였고, 지금은 지금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 강연을 두고 정치권과 전 언론이 들고 일어났다. 대통령의 말이 부적절하다, 선거법 위반이다, 원맨쇼 그만 해라 등 아주 난리들이다. 대통령이 홍길동이라도 되는가? 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안되나? 자기들은 지난 4년간 온갖 저주를 다 퍼부어 놓고 왜 대통령은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없는가? 대통령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한 것도 아닌데 왜 대통령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를 보고 “독재자의 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에게 묻는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 아닌가? 독립운동가의 딸인가 아니면 민주투사의 딸인가? 이것은 조선일보가 친일신문, 독재부역 신문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박근혜가 아버지의 잘못을 미안해 하고 사과하면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간다면 다른 얘기지만,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 잘난 박정희의 이름에 기대어 정치를 하고 있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제 2의 박정희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독재자의 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을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 언론들도 박근혜를 다 독재자의 딸로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왜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의 딸이라 부를 수 없는지 조선일보는 대답해 보라.

대통령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운하 사업에 대해 “제 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투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모든 언론에게 묻는다. 이명박의 경부운하라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말도 안되는 공약이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다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이명박이 유력한 대선후보라 한다면 그가 주장하는 주요 공약에 대해 언론들이 먼저 검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들은 자기 할 일들은 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이명박을 공격한다고 난리들이다. 나라를 말아먹게 생겼는데 그럼 알고도 모른척 해야 하나? 알고도 말 안하는 언론이 나쁘지,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가?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대안을 내놓은 적이 거의 없는 무책임한 정당”이라고 했다. 언론들에게 부탁한다. 지난 4년간 한나라당이 한 일이 무엇인지 한 번 조사해 보라고. 대통령 탄핵, 전효숙 반대, 사학법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신문법 반대, 예산안 통과 지연 등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마다 반대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하나 있긴 있다. 이라크 파병. 이런 정당이 책임있는 정당인가? 한겨레신문 어디 대답 한 번 해 보라.

왜 대통령이 사실에 근거해서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데 그것을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가? 이것이 선거법과 무슨 관계가 있나? 대통령은 최고의 정치인인데 정치인이 정치에 관해 말하지 못한다? 정말 웃기는 얘기 아닌가? 진실이 두려운가? 그렇게 두려웠다면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대통령의 말이 사실에 근거하는 한 그도 언론의 자유가 있고, 정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며 대선 후보들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대통령이 어디 제대로 된 사람들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가? 이명박, 박근혜가 정말 대통령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한나라당이나 언론들이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둘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은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대통령 입막음할 생각 하지 말고, 이명박, 박근혜부터 제대로 검증하란 말이다, 한겨레신문. 제발 이 따위 사설 내 갈기지 말고. 당신들은 조선일보가 아니란 말이다. 언제까지 정신 못차릴 작정인가.

한나라당이나 언론은 끝까지 대통령을 저주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정치는 노무현을 중심으로 계속 돌 것이다. 미안하다, 당신들은 노무현을 이길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로는 노무현 발끝도 따라갈 수 없다.

언론 자유는 언론만 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홍길동으로 만들려 하지 마라.

나는 삼성 회장의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삼성 회장의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삼성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블로그계를 달굴 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나라 경제를 걱정하며 샌드위치 상황이 더 심해지고 있고,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기자들로부터 ‘샌드위치 위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샌드위치’ 위기 극복방안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교육제도, 기술개발력…인재를 더 천재화시켜야지요”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 기업들은 인재 육성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기업들이야 항상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회장은 인재양성 방안을 묻는 질문에 “자체적으로 많이 키워야 하고 외국에서도 스카우트 해야 한다”며 교육제도의 문제점으로 “획일적이다. 전반적으로 고쳐야 하고 21세기에 맞춰야 한다. 선진국을 따라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 “샌드위치 상황 더 심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 기업 삼성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텐데, 삼성의 신입 사원은 삼성의 문화에 절망하여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고, 삼성의 회장은 기업들은 인재 육성을 항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를 더 천재화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는데, 신입사원은 절망했다. 정말 삼성을 비롯한 기업의 인재 육성이라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정말 획일적인 교육이 문제일까? 정말 선진국만 따라가면 그런 문제를 고칠 수 있을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오랜 외국 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얘기하면, 우리 국민들 만큼 똑똑하고, 우리 국민들 만큼 부지런하고, 우리 국민들 만큼 열심히 일하며, 우리 국민들 만큼 교육에 관심이 있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일을 많이 하고, 너무 교육열이 높아서 문제다. 때로는 쉬어 갈 줄도 알고, 때로는 뒤돌아 볼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뒤처지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오로지 앞만 보고 쉬지 않고 가는 것이 문제다.

이건희 회장의 말이 늘 그렇듯 구체적이지 않기에 그가 얘기하는 교육제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삼성과 우리 경제의 문제는 “도덕성 부재”와 “가진 자들의 책임 방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교육제도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아들에게 수조원의 재산의 물려주면서 겨우 10억여원의 증여세만을 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편법이 가능하단 말인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도 있었을테지만, 상식과 원칙만을 부여잡고 있는 참여정부에서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돈이 많다는 사람이 왜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도덕적으로 지탄받게 만드는가. 정말 이것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이 할 일인가.

MBC 이상호 기자가 폭로한 삼성 X파일에 따르면 삼성은 검사들을 비롯한 법조계 인사들을 떡값이라는 미명하에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불법 행위를 감추기 위해 하는 일이 검사 관리라니 정말 기가 찰 노릇 아닌가. 검찰은 대통령이나 법무장관의 말보다 삼성과 같은 재벌의 말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한 시사저널의 기자들은 삼성 관련 기사를 임의로 삭제한 편집진에 대항하여 장기 파업을 하고 있다. 정작 “언론 자유”를 떠드는 다른 매체의 기자들은 자본의 탄압 앞에는 모로쇠로 일관하며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만 문제 삼는다. 실제 우리나라의 언론을 통제하는 곳은 삼성을 비롯한 재벌 자본임에도 불구하고 하이에나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만을 탓한다. 정말 이 기자라는 자들이 가소롭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교육이 정말 문제라면 “획일적”인 교육제도가 문제라기 보다는 “도덕과 사회 윤리” 교육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재벌 총수라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할 줄 모르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까.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삼성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블로그계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삼성 회장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삼성의 미래는 밝지 않다. 몇 명의 천재를 교육시키고 더 데려올 생각보다는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투명하고 깨끗하며, 사회적 책임을 질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삼성 경쟁력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변하지 않는 한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지 않았다구?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지 않았다구?

한 블로거가 노무현 정부가 성공을 얘기한다며 역정을 냈다. 나는 노무현 정부는 기대 이상 성공을 했고, 그 성공에 대해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블로거에게 되묻는다. 노무현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아니면 도대체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어떤 정부가 성공했단 말인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8년간 독재하다가 부하의 총탄에 맞아 시바스리갈병에 코 박고 죽은 박정희가 성공했단 말인가?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어놓고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한 그리고 수천억 원의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이제와서 29만원 밖에 없다고 찌질대는 전두환이 성공했단 말인가? 아니면 그의 친구 노태우가 성공했단 말인가? 나라를 IMF 풍전등화로 몰아넣은 김영삼이 성공했단 말인가? 김대중 대통령도 IMF 불을 끄랴, 남북관계 개선하랴 노심초사했지만 결국 아들들의 비리로 말년에 욕을 봤지 않은가?

해방 이후 어느 시대에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정치적인 자유와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단 말인가? 단 한 차례의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경제를 정상으로 돌리고 주가를 세 배 이상 올려 놓은 노무현 정부가 정말 성공한 것이 아닌가? 50년간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친일과 군부독재 패거리들의 전횡을 이 정도로 정상으로 돌려 놓은 것이 성공이 아닌가? 기업이 선거때마다 정치인들에게 차떼기로 돈을 갖다 줘야 하는 것도 사라지지 않았나? 이제는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뒤지지 않은 나라가 됐지 않은가? 참여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하던 이창동은 엊그제 칸에서 호평을 받은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지 않았던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노무현 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근거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한다. 친일과 군사독재 패거리들이 그렇게 발목을 잡아도, 자칭 진보라 하는 자들이 그렇게 비난을 해대도,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이 그렇게 물어뜯어도 노무현 정부는 할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고, 책임을 방기한 적이 없다.

정작 문제는 국회에 수천 건의 처리해야 할 법안을 쌓아놓고도 사학법 핑계로 파업을 하고 있는 국회가 문제고, 기자실 통폐합한다고 몽니 부리면서 끊임없이 왜곡질 해대는 언론이 문제고, 한미FTA가 절대악인 것처럼 비난해대는 얼치기 진보들이 문제다. 일을 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고 발목을 잡은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모른단 말인가?

나는 단언한다. 노무현 정부는 성공한 정부다. 그것도 크게 성공한 정부다. 세계 어떤 정치인도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만큼 일을 해낼 수 없다. 하여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 커다란 축복이라 생각하고, 노무현의 정신과 정책은 당분간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임기를 9개월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언론 개혁을 이야기하겠나? 그것은 꼭 해야 하기 때문에 노무현이 들고 나온 것이다. 이런 특권에 젖은 쓰레기 같은 언론을 바로잡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기자실 통폐합을 들고 나온 것이다. 노무현 말고 그 어떤 정치인이 언론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가? 없다. 그 많은 정치인 중에 수구, 진보를 통틀어 단 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노무현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올 대선에서 누가 노무현의 정신과 정책을 잘 계승할 수 있을지 판단하여 그 사람을 노무현의 후임 대통령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식과 원칙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통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금 노무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먼 훗날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가 추진하고 있는 이번 언론 선진화 과제를 물러섬없이 반드시 성공시키기를 바란다. 이 일은 노무현 아니면 아무도 해낼 수 없다. 우리는 그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김훈, 천박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김훈, 천박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소설가 김훈이 몇몇 인터뷰에서 드러낸 역사 인식과 사회 의식은 천박한 것이었다. 그토록 얇은 인식을 그토록 두텁게 말할 수 있는 그의 위악과 용기가 흥미로웠고, 그 두터움 속에 언듯언듯 비치는 그의 여림이 좋았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그의 독특한 무의식적 확신에는 그냥 외면해 버리기는 쉽지 않은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안팎을 일관되게 살지 못하는 회색지대 사람들의 죄의식일 수도 있고, 열등감일 수도 있는데, 나도 그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므로 (생각은 다르지만, 삶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끄러우면서도 웃기는 일이다.

문장으로 보면 김훈은 황석영, 조정래와 더불어 우리 시대 최고라 할 만하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 날카롭지만, 그 문장들이 섞이면 때로는 맞서면서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멀미가 날 정도로 현란하게 휘돌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건조하여 바스러지기도 한다. 또한 문장과 문장들이 뱀같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특히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역사 소설에서 그의 섬뜻한 문장은 더욱 빛이 난다.

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된 것이 우리 문학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그의 소설은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문장을 지닌 소설가의 역사 인식이 지극히 얇은 것은 신이 너무도 공평하거나 아니면 신이 인간을 질투한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그가 한겨레신문 기자 때 쓴 “밥에 대한 단상”은 내가 신문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칼럼이었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관찰자인 기자가 써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짧은 글 속에 다 들어가 있다.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칼럼이다. 이 칼럼에서 묘사된 장면은 후에 <배웅>이라는 단편 소설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소설보다 이 칼럼이 훨씬 낫다.

그가 보여준 문장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감당하지도 못하는 말을 줄이고,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문장들을 보여 달라. 그의 인식에는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지만, 그의 문장은 계속 보고 싶다. 그의 건필을 기원한다.

<덧글> 김훈의 한겨레 쾌도난담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나라는요, 언론이 탄압을 받아서 문제가 생기는 건 절대 아니고, 그 반대야. 너무 붙어먹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언론의 자유? 말도 안 돼. 내가 엠네스티 언론인위원회 위원장이거든. 그 발족식에 가서 내가 물었어. 언론인위원회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그러니까 기자들이 보도에 관해 박해받을 때 연대해서 정권과 싸우는 게 목적 중 하나라는 거야. 너희들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어. 누가 박해를 받아. 그때 밀가루 파동 나서 박해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 (웃음) 문제는 붙어먹어 생긴 거야.

기자에 대한 그의 인식에는 동의한다. 현 시점에서.

한국 언론의 타락, 오마이뉴스의 경우

한국 언론의 타락, 오마이뉴스의 경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표제 아래 2000년에 창간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새로운 언론의 모델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그 형식 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과 편집도 개혁적이고 신선해서 초기에 많은 네티즌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초창기 오마이뉴스는 “그당시 주류 언론들의 기자실 왕따”에 울분을 토하면서 기자실 전면 개혁을 주장했다. 인천공항 기자실에 등록이 되지 않았다며 문전박대 당할 때 오마이뉴스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1) ‘쫓겨난’ 뉴스게릴라의 기사

출입기자들 “우린 임대료 내지 않겠다”
그 첫날: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다시 또 인천국제공항 기자실을 찾아갔더니
쫓겨난 뉴스게릴라가 읽는 기자실 개혁 실패기
쫓겨난 뉴스게랄라가 읽은 13년전 신방과 교수 논문

2) 반론과 재반론들

‘현직기자’의 출입기자실 현상유지론
‘현직 국회의원 보좌관’의 현직기자 비판
신방과 교수의 출입기자실 폐지론
대한매일 현직 기자의 ‘기자실,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
민언련 성명 “기자들은 ‘불한당’인가”

3) 뉴스게릴라들의 릴레이

출입기자들은 국회의원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 손병관 기자
이해할 수 없는 한겨레의 침묵 / 고태진 기자
전직 지역주간지 기자가 본 기자실의 병폐 / 권태윤 기자
군청 기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김주희 기자
기자실 아닌 정보독점실, 우리는 이렇게 없앴다 / 이성원 기자
남해군수, 잘못된 관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까지 / 정지환 기자
오마이뉴스 이제 좀 그만하라고? / 고태진 기자

이런 기사를 토해내면서 오마이뉴스는 기자실 개혁과 언론 개혁에 앞장서겠다며 다음과 같은 성명도 내놓는다.

관공서에 마련된 출입기자실은 오래전부터 ‘출입금지기자실’이 되어 왔습니다. 기자단에 등록된 주요 종이일간지와 방송사 기자가 아닌 주월간지, 인터넷신문 기자나 시민기자들은 그곳에서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관공서의 출입기자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민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 공간을 독점적으로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권한은 권언유착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략] 요즘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언론개혁은 먼데에 있지 않습니다. 직업적 언론인집단의 어깨에 들어있는 쓸데없는 힘을 빼는 것이 곧 언론개혁입니다. 기자증의 힘, 언론사의 힘이 아닌 오직 기사의 질로 독자 앞에 평가받으려 하는 것이 곧 공정거래이고 언론개혁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초창기에 이런 신선하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물론 그들이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당시 그들의 주장이 옳은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이제 창간된지 7년이 넘은 이 인터넷 매체는 초기의 그 개혁에 대한 열정을 모두 잃어버리고 조중동의 노회한 행태를 배워나가는 주류 언론으로 거듭나고 있다. 잔민당과 민노당의 이념을 희안하게 뒤섞어서 “이것은 개혁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그야말로 어정쩡한 반노 매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그 권언유착의 산실이었던 기자실 (참여정부 하에서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로 바뀌긴 했지만 그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을 통폐합하겠다고 하자, 조중동과 더불어 오마이뉴스가 앞장서서 정부의 방침을 성토하고 나섰다. 기자실 개혁과 언론 개혁을 외쳤던 그 오마이뉴스가 말이다. “직업적 언론인집단의 어깨에 들어있는 쓸데없는 힘을 빼는 것이 언론 개혁”이라고 절규하던 그 오마이뉴스가 말이다.

오마이뉴스 김종배라는 기자의 ‘개방’으로 시작해 ‘폐쇄’로 끝맺는 참여정부 라는 기사를 보면 오마이뉴스가 얼마만큼 변질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언론과 척을 지고 있는 참여정부가 언론을 탄압하기 위해 기자실을 폐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것도 언론탄압에 비분강개한 것이 아니고 실실 쪼개면서 비꼬는 말투로 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라는 자가 그러했듯이.

기자실 통폐합 방안에 대한 정부의 자평이 거창하다. 이름부터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는 더 화려하다. “국가의 제도와 관행 하나를 정상화하는 일로, 선의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왜 이제야 “선의”를 보이는 걸까? 그 좋은 “선진화 방안”을 왜 4년 동안 묵힌 걸까?

김종배 기자는 기자실 통폐합과 현장 취재 불가를 연결시키지만 그 둘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정부가 이번 조치로 취재를 전면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데 왜 기자실이 없다고 현장 취재가 안된다고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근거도 없고 비아냥만 난무한다.

기사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닌 “발로 쓰는 것”이라 했다.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우리나라 언론사의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 하는 일이 뭔가? 기사를 발로 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진짜 참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기자실이 언론 기능의 핵심이라 한다면 기자실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는 대다수 나라의 언론들은 제대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그들 나라의 언론들은 적어도 이 땅의 언론들처럼 파렴치하거나 몰상식하지 않고 나름대로 공정하고 품위있는 기사를 생산해내고 있으니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한겨레를 잃고, 경향을 잃고, 오마이뉴스를 잃었다. 그들은 조중동과의 동업자일 뿐, 이 땅의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바램을 짓밟았다. 대안도 없이 비아냥만 가득찬 기사들, 언론의 특권만을 지키기 위해 바둥거리는 추태들. 이제 그들에게서는 어떤 희망도 읽어낼 수 없다.

한 때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이 자랑하던 시민 저널리즘의 대표 오마이뉴스는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타락해 갔다. 이제 우리의 희망을 대변할 새로운 매체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블로그에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