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사랑하는 이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유가 있을까? 왜 사랑하냐고 물으면 그냥 배시시 웃으면 그뿐이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런 글은 쓰는 이유는 아침에 우연히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기 때문이다.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나는 무심히 그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 날 홀로 두고 왜 한마디 말이 없소”라는 가사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는 60대 노인의 슬프고도 아련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목이 메였고, 그것이 몇 십년 후의 내 모습이 아니길 기도했다.
아내는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다. 결혼 전의 아내는 달콤한 단팥빵 같았다(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 단팥빵이다). 그와의 만남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물론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거렸다. 사랑은 그렇게 깊어가고,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점점 나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없으면 내가 살 수 없는.
아내와의 지난 10여년은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아내가 사다 준 속옷을 입고, 자켓을 입고,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아내와 같이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그렇게 살았다. 내가 공부한답시고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도, (잔소리를 꽤나 하긴 했지만) 아내는 내 옆에 있었고 회사를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다. 아내의 자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물과 공기를 내 삶의 당연한 조건으로 생각하듯 말이다. 나는 재잘거리는 아내의 수다에 맞짱구를 치며 그의 하루를 위로하곤 했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처럼 내가 몇 십년 후에 그런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야 한다면, 그런 상상만 해도 목이 메였다(내가 좀 눈물이 많은 편이지). 늘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지만, 그런 슬픔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나를 낳아준 나의 부모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 내가 어찌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아내는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나도 아내의 협박에 못이겨 그렇게 얘기했지만) 그 말은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안도케 했다. 그런 현명하고 쾌활하며 소중하고 예쁜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다.
생각날 때마다 아내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곱고 희던 그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감에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잡았소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