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정부의 역할, 그리고 노동자
극한의 갈등 상황에서 인간들의 야만성이란 저 말없는 짐승보다도 못하다. 생존의 문제에 맞닥드리게 되면 인간들이 자랑하는 이성이란 쉽게 마비되기 일쑤다.
쌍용차의 파업이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패배로 막을 내렸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70일이 넘게 투쟁을 벌였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이미 법정 관리에 들어간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자본과 언론과 공권력의 융단 폭격을 감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노노투쟁의 양상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화약고라고 불리는 도장공장의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마지막 노사교섭을 제안했고 대형 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한상균 쌍용차 지부장,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이정환닷컴>
극한의 상황에서 한상균 지부장의 판단은 이성적이었다. 정리해고를 막지 못했지만 극한 상황에 몰린 노동자들은 살아야했다.
“인도적 차원의 의료진 출입마저도 거부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인지 몇 번을 의심해 봤다.”
<한상균 쌍용차 지부장,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이정환닷컴>
회사측은 물과 전기를 끊었고, 의료진의 출입도 봉쇄했다. 진압과정에서 폭력이 난무했으며, 경찰 특공대원들은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파업노동자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불가능하다. 지난 대선에서 한국노총은 이명박을 지지했다. 파업노동자들 중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도 적지 않은 수가 이명박을 찍었을 것이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1600만이 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500만이 넘는데도 1% 강부자들의 이익을 충실히 지키는 자가 쉽게 권력을 잡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전경들도 제대한 후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곤봉과 방패로 노동자들을 폭행했지만, 그때에는 후배 전경들의 곤봉과 방패로 폭행을 당할지도 모른다.
2009년 여름, 대한민국 정부는 가진 자들의 이익을, 자본의 이익을 너무나도 충실히 대변하는 기관일 뿐이다. 사실 정부뿐이 아니다. 국회, 법원, 선관위 등 모든 헌법 기관과 주류 언론 중에 서민과 노동자의 편은 없다. 1% 강부자 클럽에 들지 않는다면 국가의 보호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노동자들이 국민 대우를 받길 원한다면 그들이 권력을 잡아야한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