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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순례자

[산티아고 순례길 13] 마을 이름은 “별”

[산티아고 순례길 13] 마을 이름은 “별”

밤하늘에 총총히 반짝이는 별은 사람들의 사랑과 쓸쓸함을 나타내는 빛이다. 그 빛은 순례자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시인의 벗이 되기도 한다. 별이 없는 밤은 낭만과 신비가 사라진 폐허, 그 폐허는 전설과 신화조차 잊혀진 시간이다.

어린 왕자에게 B-612 소행성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별이 있다. 그 별에는 한송이 꽃이 피어 있고, 한그루의 나무와 조그마한 우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꽃과 나무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 별은 누구에게나 꿈이 되고, 동경이 되고, 어머니가 될 것이다.

에스테야는 바스크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순례자들은 별들의 들판(콤포스텔라)에 묻혀 있는 사도 야고보를 만나러 길을 나서는데, 에스테야가 콤포스텔라까지 순례자들을 인도한다. 11세기 산초 라미레스 왕이 에가 강가에 만든 이 계획도시는 번성한 상업과 수공업으로 카미노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많은 순례자들이 이 마을에서 쉬면서 몸과 마음을 다시 충전한다.

에스테야에서 초로의 이 사장님을 만났다. 그는 외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나그네였다. 그와 저녁을 같이 먹으며, 그의 열정과 용기에 감복하였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청년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하루였다.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들 청년이었다.

에스테야 마을 입구
에스테야 마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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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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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도밍고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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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 왕궁
성 베드로 성당
성 베드로 성당
시립 알베르게
시립 알베르게
푸에로스 광장
푸에로스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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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후안 성당
에스테야 버스 터미널
에스테야 버스 터미널
[산티아고 순례길 3] 생장의 구름모자

[산티아고 순례길 3] 생장의 구름모자

계획하지도 않았고 별 기대도 없었지만,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일찍 잠을 깼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일찍 일어난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강가에 나가 산책을 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저 유장한 강물은 어디에서 바다를 만날 것인가. 바욘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Saint-Esprit 다리
Saint-Esprit 다리
바욘역
바욘역
생장 가는 열차
생장 가는 열차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세 명의 한국 젊은이들을 만났다. 젊음은 생장에서 더욱 빛났다. 그들은 론세스바예스로 서둘러 떠났고, 남겨진 자는 생장의 낡은 성곽을 둘러 보았다. 돌틈의 이끼가 시간의 두께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늘은 드높고, 독수리 같이 보이는 새 서너 마리가 공중을 빙빙 돌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피레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하얀 구름모자가 멋스럽게 걸렸고, 바닥에는 산티아고의 방향을 가리키는 금속 표식이 번들거렸다.

계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뜻밖의 여정에 순례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겨진 자에게는 이 길을 걸어야하는 숙명 같은 임무가 있었다. 그는 그 임무를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성당에 들러 이번 여행의 안녕과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상쾌한 출발이었다.

생장 전경
성곽에서 바라본 생장의 전경
생장의 풍경
생장의 풍경
구름모자
피레네 산맥에 걸린 구름모자
산티아고 방향을 가리키는 바닥 표식
산티아고 방향을 가리키는 바닥 표식
노틀담 뒤퐁 성당
노틀담 뒤퐁 성당
순례자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를 다시 읽는다. 그것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한 준비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p. 31
“사도 야고보가 그대와 함께하여 그대가 발견해야 하는 유일한 것을 보여주기를.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가기를.”

pp. 41-42
“지혜로 향하는 길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 그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써보지 못한 검이 녹슬어버리고 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죠.”

p. 57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길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길이기 때문이죠. 길은 언제나 우리가 걸은 만큼 우리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 삶의 목표를 가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p. 98
“사자(使者)는 오직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개입합니다. 그는 교회의 황금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황금은 땅에서 온 것이며, 땅은 사자의 영역입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와 돈의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그는 자기 마음대로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또한 쫓아내버리면, 우리는 그가 가르쳐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잃고 맙니다. 그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두루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권능에 현혹당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소유됨과 동시에 선한 싸움에서 멀어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p. 103
사자, 즉 경멸적인 의미 없이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는 땅의 힘을 지배하는 영이며 인간의 욕망에 기생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악마는 때로 마술적 작용에 쓰이기도 하고 때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결코 일상적인 일에 관여하는 친구나 조언자는 아니었다.

p. 137
“은하수는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죠. 어떤 종교도 모든 별을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주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변해버려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겁니다. 각각의 별,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혜성, 유성, 운석, 성운, 고리 모양의 각기 다른 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똑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죠.”

p. 156
아가페는 소멸시키는 사랑입니다.”

pp. 157-158
“열정은 대개 우리 삶의 초반부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아직 신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고 작은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기도 하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가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이나 지혜로움, 바리새인, 사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곧장 왔죠. 오직 열정에 이끌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p. 179
“그럼에도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가장 확실한 사실인 자신의 죽음을 부인하려고 하죠. 바로 그 죽음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실현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미지의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제한되어 있음을 잊어버리는 거죠.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잃을 게 없기에 더욱 용감해지고 더 멀리까지 정복해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pp. 208-209
“제자는 자신을 이끄는 이의 걸음걸이를 결코 흉내내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바라보고, 고난과 정복을 체험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니까요. 가르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요.”

p. 338
그는 말했다. 우리를 신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 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 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르는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번째 소설 <순례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 문학동네, pp. 78-79>

코엘료의 말이 맞다는 가정 하에서 본다면,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렸다. 나에게 나타난 징후는 세번째 것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것 같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던 몇몇 경우엔 내 노력보다 훨씬 큰 것을 얻기도 했고, 그렇지 않았던 대부분의 경우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고, 운이 좋았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삶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 곁을 스쳐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저 순간순간 내 자신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내 삶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흐르는 강물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가 가버렸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코엘료의 말처럼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린 것인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아내의 꿈은 코엘료처럼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아내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꿈을 이룬 후에 아내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