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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

아진

꽃샘 추위가 찾아온 3월의 어느 날 아침, 작은 소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진이라고 했고 나이는 열일곱이라고 했다. 얼굴은 막 중학교 입학한 아이처럼 어려 보였고, 커다란 안경을 썼고, 머리는 짧았으며 피부가 고왔다.

아진이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몇 가지 물건을 꺼내 펼친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엄마는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으며 동생을 돌봐야 한단다.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 외에 돈벌이를 위해 물건을 팔러 다닌다고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전형이다.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아프고, 동생을 돌봐야하는 소녀 가장. 정부에서 쥐어주는 몇 푼 안 되는 생활비, 일주일 내내 일을 해도 생활비를 벌기 어려운 형편.

이런 사정으로 아진이는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했다. 학교에 다녔으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아이.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물으보니 배시시 웃으면서 형편은 안 되지만 꿈은 크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진이의 커다란 안경 너머 초롱초롱 빛나는 까만 눈망울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에게 칫솔과 면도기를 사면서 5만원을 쥐어 주었다. 나중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다시 찾아오라고 얘기했지만, 아진이는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다.

아진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의 꿈을 위해 기도라도 올려야 할 것 같은 봄이다.

소녀와 고릴라, 그리고 바다

소녀와 고릴라, 그리고 바다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소리 들려오는 이 곳은
인적 드문 어느 작은 어항
바람이 분다

바다에 나갔던 기억조차 없는 폐선 한 척
그 옆에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고릴라 한 마리
소녀는 고릴라를 사랑했고, 꽃을 귀에 꽂아 주었고
그래서 고릴라는 슬펐다

그들을 지켜보던 동네 할배
가슴 답답한지 담배 물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색바랜 빈 의자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녀와 고릴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 가면 고릴라와 소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