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신화가 되어버린 아웃사이더
서태지 음악은 머물지 않는다. 늘 변화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간다. 그 새로운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비켜서지 않는다. 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맞선다. 그리하여 그의 음악은 비겁하지 않고, 늘 생동감이 넘친다.
서태지는 절정에 있을 때 떠나갔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그는 그 엄청난 음반 4장을 내고는 훨훨 날아갔다. 가수들에게 인기는 일반적으로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것 같다.) 때문에 그런 선택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러 떠났다. 그가 떠났을 때 많은 대중들이 아쉬어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에서 홀연히 사라질 줄 아는 그의 선택이 아름다웠다.
어떤이는 그를 문화 권력, 또는 문화 대통령, 심지어는 문화 혁명가라 말한다. 그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런 평가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웃사이더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달랐고, 그 다름이 인정되어 주류가 되어갈 무렵 그는 또다른 아웃사이더의 길을 택했다. 익숙해짐을 견디지 못하고, 주류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했던 그는 태생이 이방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떠남으로 해서 그는 신화로 남았다. 나는 그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안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김광석이나 유재하와 같이 서태지도 신화가 되었다. 김광석, 유재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지만, 서태지는 가끔씩 새로운 음악을 들고 온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태지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의 이런 행태를 두고 “고도의 숨바꼭질 마아케팅” 이라고 폄하하지만, 서태지와 그런 잔머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혼자 하다가 남들에게 내보일만하다 싶으면 내놓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모든 것이 계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서태지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자. 그가 침체된 우리나라 대중가요 시장을 구원할 구세주도 아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울분을 달래줄 영웅도 아니다. 그는 그저 그가 하고싶은 음악을 하는 조금 특별한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나는 그가 좋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을 즐기는 그런 그가 좋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내 가슴을 울린다. 15년 전에 느꼈던 그 감성이 아직도 그의 음악에 살아있다. 나는 그가 꺽기거나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가끔씩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것 뿐이다.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썩 모두를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매일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수 있어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서태지와 아이들, 교실이데아>
이번에 내 놓은 교실이데아 동영상은 Pink Floyd의 The Wall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의 그 어떤 가수가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그의 귀환을 환영한다. Welcom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