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Feb 19

북한산 둘레길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있다. 제주 올레에서 시작한 둘레길 열풍으로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여기저기 길을 만들었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에 좋은 길들을 호젓이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걷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다. 특히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것은 명상이 될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 수첩(패스포트)를 구입하여 하나의 코스를 끝낼 때마다 도장을 받으면 더욱 즐겁다. 4코스까지 걸었는데 어렵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서울에 갈 때마다 걷고 싶은데 언제 완주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06
Jan 19

2019년 첫 산행

요즘 겨울 날씨는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을 띤다. 추위도 한풀 꺽이고 공기도 좋은 날은 매우 드물다. 아침 기온 영하 6도. 날씨는 맑았고 모처럼 공기도 좋았다. 산에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주머니에 물 한 병 찔러 넣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겨울산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산 위로 솟아오르지 못했다. 나무들은 잎사귀를 모두 떨군 채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계곡 물은 바짝 얼었는데, 그 얼음 밑으로 졸졸졸 물이 흐른다. 푸른 하늘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악까악 울면서 날아간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은 드물었는데 저 앞에 노년의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쩌면 그렇게 금슬이 좋냐고 묻고 싶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등산로가 패였고 나무 뿌리가 드러났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구청에서 계단을 설치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계단길은 퍽퍽하고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한시간이 걸린다.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세워졌다는 성벽의 잔해가 널려 있다. 천 년 전 사람들은 그 산꼭대기에 돌로 성을 쌓았다. 그때도 겨울은 몹시 추웠을 것이고 산에는 눈도 많이 왔을 것인데, 그런 추위 속에서 돌성을 쌓았을 백성들의 노동이 처연했다.

어떤 사람들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을 올랐고, 다른 사람들은 모형자동차를 몰면서 올라갔고, 몇몇은 개를 끌고 산에 왔다. 젊은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산등성이에 기분좋게 번졌다. 올 겨울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아 하산길이 어렵지 않았다.

2시간 30분 동안 약 10킬로미터의 산길을 걷다가 내려왔다. 허기가 져서 점심으로 시래기 된장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기분 좋은 뻐근함이 온몸을 감쌌다.


02
Nov 16

흐린 가을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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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도 될 만한 날에 청년들과 산에 올랐다. 지난 여름의 무더위와 짙은 푸르름은 간 곳이 없고, 나뭇잎이 물들어 가을은 저만치 다가와 있었다. 시절이 하수상하여도 자연은 세상과 관계 없이 제 철을 지켜 나갔다. 그나마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힘찬 발걸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12
Nov 14

가을 나비

182년만에 찾아온 윤구월 때문인지 올 가을은 길고도 깊었다. 산자락부터 산꼭대기까지 울긋불긋 물이 들었고, 은하수 별만큼이나 무수한 낙엽으로 산은 아늑했다. 서걱거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에서 바싹 마른 가을 햇볕 냄새가 났다.

하늘은 높았고, 숲은 고요했다. 갈색 융단처럼 낙엽이 깔렸다. 그 속을 헤치는 발자국 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만이 숲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바람이 선듯선듯 불어왔다. 억새가 바람을 타고 나긋나긋 손짓했다.

갈잎을 헤치고 숲길을 거슬러 오르자 어디선가 나비 몇 마리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나타난다. 가을 나비, 그것도 11월의 나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인적이 없는 갈참나무 숲 속에서 나비가 날아 오른다. 나비는 갈색이기도 하고 옅은 노란색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철을 모르는지 아니면 원래 11월에 생겨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길은 수천년 전의 전설 속으로 가을을 데려갔다.

그 나비들을 따라가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노래하는 이백을 만날 것도 같다. 윤구월의 가을은 깊어가고, 하염없는 나비들의 날개짓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 듯 멈췄고, 세상은 어느덧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2014년의 가을은 나비들과 함께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28
May 14

우산봉에서 비를 맞다

계룡산의 변방에 자리잡은 갑하산우산봉은 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망좋은 산이다. 유성은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나오는 살기 좋은 곳 중 하나인데, 그 중 현충원 자리는 매화낙지형의 명당이라 불린다. 그 명당을 둘러싼 갑하산, 신선봉, 우산봉의 능선은 현충원을 내려다 보기도 좋고, 저 멀리 국립공원 계룡산의 연봉들을 조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신선봉에서 우산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숲과 바위가 어우러지고, 소나무가 많아 걷기 편한 길이다. 솔향기 가득한 숲과 낙엽으로 푹신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속세의 시름을 모두 잊고 자연과 하나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산길에서 비를 만났다. 빗방울이 나뭇잎들을 간지르고,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가 구슬피 울었다. 나무들은 비가 오는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소리 없이 환호하면서 청정한 숨을 내쉬었다. 비와 함께 향긋한 숲 냄새, 산 냄새, 바위 냄새가 피어 놀랐다. 아카시아 마른 꽃잎이 눈꽃처럼 길 위에 깔렸다. 칡넝쿨은 신이 나서 나무를 감으며 기지개를 켰다. 무릉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우산봉에서는 우산 없이 비를 맞아야 한다. 그 빗속에서 산이 되고, 숲이 되고, 나무가 되어야 한다. 우산봉에서 비를 맞으며 자연의 온전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갑하산

이번 산행은 대전둘레산길 8구간이었다. 산행 거리는 약 10km이고, 시간은 약 4시간이 걸렸다.


21
May 14

도덕봉에 오른다고

5월의 산은 아기의 솜털 같다.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다. 그 싱그러운 푸르름이 막 피어오르는 5월의 산. 그 산을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

오랜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있는 도덕봉에 올랐다. 도덕봉에 오른다고 더 도덕적인 인간이 되지는 않겠지만, 도덕봉을 포함한 모든 산들은 인간을 조금 더 겸손하게 한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자연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과 하나되는 것이다.

산행은 대전과 공주의 경계인 삽재에서 시작되었다. 도덕봉과 자티고개, 금수봉삼거리를 거쳐 수통골로 내려왔다. 산행 거리는 약 8km 정도고, 시간은 약 3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금수봉과 빈계산까지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산행 전날,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산넘어산GPS라는 앱을 받았다. 이 앱을 이용하니 산행동안 거의 모든 행적이 기록되었다. 바야흐로 이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빅데이터 시대에 사는 것이다.

블로그에 산행의 흔적을 남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림을 첨부한다.

도덕봉

 


19
Jun 08

우중 맨발 산행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있었다. 어제도 세찬 비가 쏟아졌고, 아침까지만 해도 빗줄기는 좀처럼 가늘어지지 않았다. 모처럼 계획했던 산행이 무산될 것 같았지만, 오후들어 비는 점점 잦아들었다.

산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비가 와서인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옅은 안개가 어디선가 밀려 왔다. 6월의 녹음은 점점 짙어졌다. 13Km에 달하는 임도에 어떤 술만드는 회사가 황토를 뿌려 놓았다 한다. 지난 밤의 세찬 비 때문에 군데군데 누런 흙이 씻겨 내려갔다. 신발을 벗고 그 누런 흙길에 발을 디뎠다. 발가락 사이로 찰흙 같은 황토가 새어 나왔다. 마치 모내기철에 논흙을 밟는 그런 부드럽고 미끈한 느낌이었다.

비를 맞은 나무들은 피톤치드를 왕성하게 뿜어냈다. 그 맑은 공기가 땀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왔다. 짙은 녹음과 옅은 안개,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맨발로 걸으니 이 위대한 어머니 대지와 비로소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온갖 악다구니들로 아우성이었지만, 비가 온 후의 숲 속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 고요하고 신비로운 숲은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상쾌하게 해 주었다.

어머니 대지 위의 이름 모를 나무와 들꽃들이 비를 맞아 청초하였고, 나도 그것들과 함께 어머니 대지 위에 맨발로 뿌리를 내렸다.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인데, 속세를 떠날 수 없다 할지라도 가끔은 이렇게 숲속에서 세례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비가 오는 6월에는 계족산에서 맨발 산행을 해야 한다.


01
Jul 07

그들이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양들의 침묵>과 오대양 사건 이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리산 팔칠파. 그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광신도 집단인가 아니면 권력 쟁취를 시도하는 희대의 사생아들인가? 그들이 갑자기 지리산으로 잠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후에는 오공의 수구세력들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던데…. 그들과 소련의 쿠데타는 과연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러한 독자들의 의혹을 풀기 위해 본 기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팔칠파에 위장취업, 그들의 엽기적인 행각을 낱낱이 폭로한다.


등장인물

  • 금동이: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곱슬한 머리가 가수 박일준을 연상시킴. 검은 안경테 속의 날카로운 눈은 항상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한 표정임. 그는 이번 팔칠파의 지리산 산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주범임.
  • 박마담: 한때 팔칠파를 배신하고 팔육파를 조직했으나 보복이 두려워 다시 팔칠파로 복귀함. 의류업과 부동산 등으로 화곡동의 큰 손으로 부각됨. 팔칠파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발 넓은 여인. 이번 지리산 산행을 맨 처음 주장함.
  • Calculator: 아주 힘이 센 사내. 별명과는 달리 계산에 익숙하지 못함. 자신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동생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한 인물임. 사진 찍는 것이 취미지만 이번에는 사진기 고장으로 낭패를 봄. 산행의 등반대장임.
  • 조조: ‘소사사’라는 잡지사에 갓 들어온 신참 기자. 이번 팔칠파의 지리산 산행을 취재하고자 팔칠파에 위장취업. 명석한 두뇌와 완벽한 변장술로 팔칠파의 실체를 밝히는데 큰 공을 세움. 놀 때와 일할 때를 구분한다고 말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못함.
  • 진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 지리산에 혼자 왔다가 팔칠파에 붙잡힘. 갖은 고생 끝에 조조의 도움으로 탈출함.


1

7월 13일. 모처럼 맑은 날이다. 금동이가 전화를 했다. 오늘이 바로 팔칠파 모임이 있는 날이고 산행 계획을 세우는 날이라고. ‘따분하던 차에 껀수 하나 올리게 생겼구나!’ 라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에 보니 서너 명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대충 인사를 하고 앉으니, 유럽에 다녀온 똘똘이의 말보따리가 터진다. 케임브리지가 어떻고, 뮌헨이 어떻고 등등. 잔뜩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 그를 쳐다본다. 군대를 갓 제대한 김감독도 참 오랜만에 만난 친구다. 궁금했던 신변잡기로 시간을 때우고 자리를 옮겼다.

박마담이 두 시간이 지나도록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금동이는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출석한 사람끼리 지리산 산행에 대해 의논하고 박마담에게 사후 통보하기로 했다. 여기서 박마담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그녀가 지리산 산행을 여러 번 고집했기 때문이다. 왜 팔칠파가 지라산에 가려고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조직원들조차 알지 못하는 베일에 싸인 그들의 산행. 정말 궁금증만 더해가고 있었다.

금동이의 주도로 몇 가지 사항이 결정된 후, 임여사가 박마담에게 전화를 했다. 얼굴빛이 노래져서 돌아온 임여사의 얘기는 박마담이 지리산에 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핑계는 휴가 동안에 언니 집을 봐 주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금세 그곳은 박마담 성토장으로 변했다. 박마담이 팔육파에 가입했다는 소리도 나오고, 포항에 있는 남자와의 관계도 파헤쳐지고, 급기야는 제명과 보복의 목소리마저 튀어나온다.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조직원들은 매우 값비싼 맥주라는 술을 마신다. 3차를 파한 후에 시간이 늦어 선배의 하숙방에서 날을 지새웠다.

2

8월 2일. 구질구질한 날이다. 장마는 이미 지났는데 날씨가 우애 이렇냐? 팔칠파들이 룸에 모여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역시 금동이를 비롯해 대여섯이 모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박마담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역시 조직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박마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번 산행 때문에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었다. 팔칠파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금동이의 협박이 유효했던 것일까.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다.

여기서 단서가 될 만한 일은 동문회 간사 송박사의 등장이다. 송박사는 룸에 모인 팔칠파 조직원들에게 회비 명목으로 거액의 사채를 요구했고, 조조만을 제외한 나머지 팔칠파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던 사건이 일어난다. 아마 이 사건이 그들의 지리산 산행을 더욱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식당에서 영계백숙을 비우고 최종 산행 참가자를 결정했다. 금동이와 박마담, Calculator, 그리고 조조 이렇게 네 명으로 결정된다. 임여사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최교수와 똘똘이 그리고 박사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음을 통보한다.

D-day는 8월 5일. 오후 8시 30분에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