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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 3] 생장의 구름모자

[산티아고 순례길 3] 생장의 구름모자

계획하지도 않았고 별 기대도 없었지만,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일찍 잠을 깼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일찍 일어난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강가에 나가 산책을 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저 유장한 강물은 어디에서 바다를 만날 것인가. 바욘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Saint-Esprit 다리
Saint-Esprit 다리
바욘역
바욘역
생장 가는 열차
생장 가는 열차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세 명의 한국 젊은이들을 만났다. 젊음은 생장에서 더욱 빛났다. 그들은 론세스바예스로 서둘러 떠났고, 남겨진 자는 생장의 낡은 성곽을 둘러 보았다. 돌틈의 이끼가 시간의 두께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늘은 드높고, 독수리 같이 보이는 새 서너 마리가 공중을 빙빙 돌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피레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하얀 구름모자가 멋스럽게 걸렸고, 바닥에는 산티아고의 방향을 가리키는 금속 표식이 번들거렸다.

계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뜻밖의 여정에 순례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겨진 자에게는 이 길을 걸어야하는 숙명 같은 임무가 있었다. 그는 그 임무를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성당에 들러 이번 여행의 안녕과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상쾌한 출발이었다.

생장 전경
성곽에서 바라본 생장의 전경
생장의 풍경
생장의 풍경
구름모자
피레네 산맥에 걸린 구름모자
산티아고 방향을 가리키는 바닥 표식
산티아고 방향을 가리키는 바닥 표식
노틀담 뒤퐁 성당
노틀담 뒤퐁 성당
[산티아고 순례길 2] 바욘의 노을

[산티아고 순례길 2] 바욘의 노을

11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흐린 날씨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내일 생장피에드포르에 가기 위해 오늘 바욘에 도착해야한다. 비행기를 갈아탈 때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때마침 유로2016이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있었다. 영국의 EU탈퇴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많은 유럽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2대0으로 이탈리아가 8강에 올랐다.

바욘 비아리츠 공항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되었다. C버스에 올라 친절한 여자 버스 기사의 도움으로 바욘 시내에서 내렸다. 니브강이 유장하게 흐르고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걸어오는 동안 프랑스 남부 소도시의 여유를 마음껏 즐겼다.

니브강 저편으로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깨끗하고 여유롭고 나른한 바욘의 밤이었다.

바욘, 니브강
바욘, 니브강
바욘의 노을
바욘의 노을
[산티아고 순례길 1] 뜻밖의 여정

[산티아고 순례길 1] 뜻밖의 여정

삶은 대개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모든 여행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불과 두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순례길을 끝까지 걸을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종의 ‘부름’이었고, ‘선물’이었다.

새벽 3시 반,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 들었지만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부름’으로 눈을 떴다. 역시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공항가는 버스 좌석을 예매하지 않았는데, 새벽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표 파는 아저씨가 마지막 한자리가 남았다고 귀뜸해 주었다.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면서 도와주는 기분이 들었다.

인천공항은 예상대로 몹시 붐볐다. 방학을 맞은 젊은이들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에어프랑스 기장들의 파업 때문인지 파리로 가는 비행기의 도착이 지연되었다. 비행기에 탄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설레임이 가득했다. 비행기에서 주는 두 번의 밥을 꼬박 챙겨먹고, 몇편의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오랜 비행이 주는 피로를 쉽게 견디지 못했다. 늘 계획없이 사는 자의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뜻밖의 여행이라도 큰 기대는 없었다.

인천공항, 출발 전 비행기 모습
인천공항, 출발 전 비행기 모습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물과 원칙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물과 원칙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무거운 배낭과 발에 생긴 물집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젊은이는 14Kg의 짐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니 발과 무릎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순례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르다. 순례는 마음과 몸을 비우고 영성을 키우며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여정이다. 그런 귀중한 시간과 과정이 무거운 짐과 부상때문에 고통의 시간이 된다면 순례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글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몇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들의 성공적인 순례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원칙

  1. 물건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게다. 무조건 가벼운 것을 고른다.
  2.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간다.
  3. 무조건 7Kg 이하로 짐을 싸라.

꼭 필요한 것들

  • 등산화: 목이 있는 가벼운 경등산화가 좋다. 방수 기능이 있는 것이면 더 좋다. 새신발은 반드시 길을 들여야 한다. 신발 깔창을 좋은 것으로 구입하는 것도 권한다.
  • 배낭: 무조건 40리터 이하, 무게 1Kg 이하로 준비한다. 35리터 배낭이면 충분하다. 배낭커버도 있어야 한다.
  • 침낭: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오리털 침낭 중 가장 가벼운 것을 선택한다.
  • 양말: 등산양말과 발가락양말을 준비한다. 발에 물집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면 발가락양말을 신고 그 위에 등산양말을 겹쳐 신는다. 발가락양말은 마라토너들이 신는 쿨맥스 소재의 양말을 권한다.
  • 슬리퍼: 가벼운 것으로 준비한다.
  • 모자: 햇볕을 잘 가릴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준비한다.
  • 등산지팡이: 등산지팡이는 2개 한쌍으로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20유로면 충분하다.
  • 판초우의: 역시 가볍고 방수가 잘 되는 것으로 준비한다.
  • : 잘 마르는 기능성 옷으로 티셔츠, 바지 각 2개씩 준비한다. 여름이라도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바람막이 겉옷을 준비한다. 속옷도 잘 마르는 것으로 2벌 준비한다.
  • 세면도구: 칫솔, 치약, 비누, 면도기, 기능성 수건 등.
  • 화장품: 로션, 썬크림 등.
  • 스마트폰: 모든 자료는 pdf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저장한다.
  • 일기장, 필기도구

가져가면 후회하는 것들

  • 카메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거운 DSLR 카메라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드시 후회한다. 카메라는 스마트폰이면 충분하다.
  • : 여행 중에 책을 읽겠다고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시 금방 버리게 된다. 필요한 자료는 모두 스마트폰에 저장하여 읽으면 된다.
  • : 지병이 있지 않는 한, 약은 필요없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구입한다.

산티아고 순례기

  1. 뜻밖의 여정
  2. 바욘의 노을
  3. 생장의 구름모자
  4. 길의 가르침
  5. 세월호의 흔적
  6. 무산몽환(霧山夢幻)
  7. 장미의 계곡
  8. 길 위의 사람들
  9. 팜플로나의 태양은 지고
  10. 용서의 언덕
  11. 십자가 위의 예수
  12. 길에서 만난 아이들
  13. 마을 이름은 “별”
순례자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를 다시 읽는다. 그것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한 준비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p. 31
“사도 야고보가 그대와 함께하여 그대가 발견해야 하는 유일한 것을 보여주기를.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가기를.”

pp. 41-42
“지혜로 향하는 길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 그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써보지 못한 검이 녹슬어버리고 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죠.”

p. 57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길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길이기 때문이죠. 길은 언제나 우리가 걸은 만큼 우리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 삶의 목표를 가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p. 98
“사자(使者)는 오직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개입합니다. 그는 교회의 황금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황금은 땅에서 온 것이며, 땅은 사자의 영역입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와 돈의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그는 자기 마음대로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또한 쫓아내버리면, 우리는 그가 가르쳐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잃고 맙니다. 그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두루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권능에 현혹당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소유됨과 동시에 선한 싸움에서 멀어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p. 103
사자, 즉 경멸적인 의미 없이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는 땅의 힘을 지배하는 영이며 인간의 욕망에 기생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악마는 때로 마술적 작용에 쓰이기도 하고 때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결코 일상적인 일에 관여하는 친구나 조언자는 아니었다.

p. 137
“은하수는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죠. 어떤 종교도 모든 별을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주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변해버려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겁니다. 각각의 별,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혜성, 유성, 운석, 성운, 고리 모양의 각기 다른 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똑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죠.”

p. 156
아가페는 소멸시키는 사랑입니다.”

pp. 157-158
“열정은 대개 우리 삶의 초반부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아직 신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고 작은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기도 하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가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이나 지혜로움, 바리새인, 사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곧장 왔죠. 오직 열정에 이끌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p. 179
“그럼에도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가장 확실한 사실인 자신의 죽음을 부인하려고 하죠. 바로 그 죽음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실현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미지의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제한되어 있음을 잊어버리는 거죠.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잃을 게 없기에 더욱 용감해지고 더 멀리까지 정복해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pp. 208-209
“제자는 자신을 이끄는 이의 걸음걸이를 결코 흉내내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바라보고, 고난과 정복을 체험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니까요. 가르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요.”

p. 338
그는 말했다. 우리를 신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 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 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르는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번째 소설 <순례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 문학동네, pp. 78-79>

코엘료의 말이 맞다는 가정 하에서 본다면,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렸다. 나에게 나타난 징후는 세번째 것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것 같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던 몇몇 경우엔 내 노력보다 훨씬 큰 것을 얻기도 했고, 그렇지 않았던 대부분의 경우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고, 운이 좋았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삶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 곁을 스쳐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저 순간순간 내 자신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내 삶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흐르는 강물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가 가버렸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코엘료의 말처럼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린 것인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아내의 꿈은 코엘료처럼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아내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꿈을 이룬 후에 아내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