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총총히 반짝이는 별은 사람들의 사랑과 쓸쓸함을 나타내는 빛이다. 그 빛은 순례자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시인의 벗이 되기도 한다. 별이 없는 밤은 낭만과 신비가 사라진 폐허, 그 폐허는 전설과 신화조차 잊혀진 시간이다.
어린 왕자에게 B-612 소행성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별이 있다. 그 별에는 한송이 꽃이 피어 있고, 한그루의 나무와 조그마한 우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꽃과 나무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 별은 누구에게나 꿈이 되고, 동경이 되고, 어머니가 될 것이다.
에스테야에서 초로의 이 사장님을 만났다. 그는 외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나그네였다. 그와 저녁을 같이 먹으며, 그의 열정과 용기에 감복하였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청년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하루였다.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들 청년이었다.
스페인 북부 나바라 지방은 한여름이라도 밤낮의 기온 차이가 꽤 크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기분좋게 걸을 수 있지만, 한낮이 되면 따가운 햇볕에 쉽게 지친다.
해가 중천으로 넘어갈 즈음, 마을 입구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소년은 순례자들을 상대로 레모네이드를 판다고 했다. 얼굴도 잘생기고 머리도 영리한 소년은 레모네이드에 값을 매기지 않았다. 한잔 마시고, 내고 싶은 만큼 기부하라고 했다. 그 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겠다고 했다. 더위에 지친 순례자들은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잔을 마시고, 적어도 1유로 이상의 돈을 기부했다. 그 녀석의 장사 수완에 순례자들은 모두 유쾌한 한때를 보냈다.
한낮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릴 때, 아이들은 수영복만 입고 다리 위로 달려갔다. 겁이 없는 개구쟁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리 위에서 개울로 몸을 던졌다. 지나가던 어른들은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잔소리를 해대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이빙을 하고 멱을 감았다. 그 아이들 머리에서 나바라의 햇볕 냄새가 났다. 평화로운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역시 천국은 아이들의 것이었다.
여왕의 다리(푸엔테 라 레이나)를 떠난 카미노는 마녜루와 시라우키를 지났다. 포도밭과 밀밭이 번갈아 나오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길을 내면서 날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에스테야인데, 이정표에 적힌 거리가 잘못된 듯 걸어도 걸어도 그 마을은 나오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마을을 거치게 되는데, 어느 마을에나 성당이 있다. 아무리 작고 초라한 마을이라도 그 한가운데에는 제법 규모 있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은 예나 지금이나,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을의 중심이라 할 만하다.
어느 성당이든 간에 그 성당에 들어서면 십자가 위에 못 박힌 예수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예수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십자가의 형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수는 고통의 피눈물을 흘리고 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예수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그의 죽음으로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다는 그 전설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 대신 죄책감과 고통만 불러일으킨다.
예수는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져야 한다. 예수가 고통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통의 예수를 더 이상 숭배하면 안 된다. 그가 사람들에게 고통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고 죽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보았던 예수들은 늘 십자가 위에 있었고, 고통의 상징이었고, 죄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예수의 가르침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가 자비와 사랑과 용서의 화신으로 부활해야 한다.
용서의 언덕을 떠난 카미노는 우르테가, 무루사발, 오바노스를 지나 아르가 강에 닿았고, 그 강에는 왕비의 다리(푸엔테 라 레이나)가 우아하게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왕비의 다리가 카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얘기했다. 순례자들은 왕비의 다리를 건너 에스테야로 가기 전,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마을은 조용했고,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저녁 무렵, 어느 카페 앞에서 떠돌이 악사들이 노래를 했다. 순례자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어둠은 짙어지고 별이 떠올랐으며, 카미노의 밤은 악사들의 노래와 함께 깊어만 갔다.
길은 생장을 떠난지 닷새만에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에 닿았다. 팜플로나를 지나자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밀밭이 펼쳐진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푸른 빛 하늘과 미야자키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흰구름들이 조화롭다. 밀밭을 지나 저멀리 언덕에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곳이 페르돈 고개, 용서의 언덕이다.
순례길 초반에 “용서의 언덕”으로 이름지어진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자 자비이며, 용서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고,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하는 수행이다.
순례는 자기자신을 얽매고 옥죄고 짓누르는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하는 과정이다. 그 첫번째 열쇠가 바로 용서라는 것을 카미노는 가르쳐 준다. 에고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참나를 찾아 가는 것이 바로 순례이다. 용서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 한없이 기쁜 것은 저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용서가 저절로 찾아올 것만 같은 착각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이든 아니든, 용서의 언덕에서 누구든 얼마간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그 해방감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으로 이어지길 기도할 뿐이다.
용서의 언덕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서울까지의 거리가 새겨져 있다. Seul 9700Km. 그 현실감이 없는 거리 때문에 마치 서울이 요단강 건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서울에 남겨져 있는 그 모든 부조리함들을 용서의 언덕에서 용서할 수 있을까? 카미노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수리에 내리꽂히던 햇볕이 밤 9시가 넘어가자 서서히 기운을 잃었다. 태양을 피해 어딘가 숨어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팜플로나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거리 곳곳의 술집과 식당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맥주잔을 들고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평생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면서 쉴 새 없이 얘기했다. 그들의 말소리와 성당의 종소리가 뒤섞였고, 팜플로나는 비로소 생기가 되찾았다.
팜플로나는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소몰이로 유명한 산페르민 축제. 황소와 시합을 하듯 앞서 달리다가 때로는 황소뿔에 받히기도 하는 그것을 해보려고 해마다 백만명의 사람들이 팜플로나로 모여 들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 팜플로나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낙천적이다. 행복은 과거나 미래에 머무르지 않고 순간을 최대치로 살아내는 것에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 그들은 태양을 닮았고, 정열을 가슴에 품었다. 해는 다시 지고, 내일 다시 떠오른다. 내일은 또 내일로 열심히 살면 그뿐이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윌프리드를 만났다. 윌프리드는 벨기에서 온 친구인데, 은퇴를 앞두고 회사와 가족에게 3개월 휴가를 얻어 벨기에부터 걸어서 산티아고에 왔다고 했다. 그는 총 2,500Km를 걷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미 1,700Km를 걸어서 론세스바예스에 왔다. 지난 두달 동안 매일 25~30Km를 걸었고, 앞으로 남은 한달도 그렇게 갈 거라 했다.
윌프리드는 큰 키에 마른 체형으로 미소가 순박한 50대 후반의 아저씨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삶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범부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6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서 산티아고를 찾았다. 그가 이번 여정에서 얻은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설계하길 기도했다.
이튿날, 윌프리드와 이탈리아에서 온 실비아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들의 걸음이 워낙 빨라서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오늘은 어차피 수비리(Zubiri)까지 갈 계획이었고, 윌프리드, 실비아와는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카미노는 너무 느리게 걸어서도 안 되고, 너무 빠르게 걸어서도 안 된다. 길이 요구하는 대로, 그리고 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걸으면 된다.
윌프리드, 실비아와 헤어지고 개울에서 쉬고 있는 동안, 다섯 명의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김 이사와 나이도 엇비슷하고 말이 통해 그와 며칠 간 동행했다. 유럽인들은 카미노에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궁금해 했다.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높은 영성을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할 것이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는 약 23Km. 떡갈나무와 밤나무 숲이 아름답고 멋드러진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이지만 사실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들과의 추억이 별처럼 길을 비췄다.
카미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나바라 왕국으로 향했다. 산을 계속 오르니 안개가 점점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순례자들을 따라 구름도 피레네를 넘고 있었다. 롤랑의 샘을 지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온다. 여기부터 나바라 왕국(스페인 북부)의 땅이라는 표지가 없었다면 아무도 국경인 줄 알 수 없는 그 평화가 부러웠다.
해발 1400m가 넘는 레푀데르 언덕에 도착하니, 눈 앞에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지친 순례자들이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리는 곳이다. 저 아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뻗어 있다.
론세스바예스. 장미의 계곡. 롤랑과 그의 부하들이 죽은 후, 샤를마뉴가 적군과 아군의 시체를 구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아군 시체의 입에서 장미가 피었다는 전설을 지닌 그곳. 피레네를 넘은 카미노의 스페인 첫마을. 그곳에서 롤랑의 노래와 전설을 만났다.
오리송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는 17Km, 약 5시간이 걸렸다. 새로 단장한 알베르게가 깨끗했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관광안내원을 따라 성당과 박물관을 한바퀴 돌았다. 저녁을 먹고 미사에 참석했는데, 스페인 신부가 한국말을 비롯한 각국의 언어로 순례자들의 평안을 기도했다.
오리송 산장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카미노는 안개 속에 사라졌다. 꿈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보니 어제 그 청명했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산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혀 있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안개 속에 사라진 카미노는 이미 이 세상 길이 아니었다.
이슬비와 안개와 구름으로 가득한 꿈같은 길. 그 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순례자들. 안개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 소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티아고로 향했던 카미노는 이제 다른 세상에 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안개 속의 카미노와 같은 것.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저 안개 너머에 무지개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가는 것.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온몸을 전율하는 것. 무산몽환(霧山夢幻).
피레네 산맥의 안개 속 카미노를 걸으면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이 늘 같이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 죽음이 삶을 가치있게 한다는 역설. 안개 속 카미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워 나갔다.
전설이 있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가 별들의 들판에 묻혀 있다는. 그 전설에 의해 길이 열렸고, 그 길을 따라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향했다. 그들은 순례자라 불렸다.
길은 피레네산맥을 넘고 나바라와 메세타 평원을 거쳐 갈리시아에 닿아 있었다. 그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신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길을 떠났고, 다른 이들은 진리를 찾아 떠났다. 기적을 믿는 이들도 있었고, 치유가 필요한 이들도 있었다.
길은 그곳에 있었고, 그 길은 꿈 꾸는 자가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고, 필요한 것을 내주었다. 길의 법칙을 가르쳐 주었고,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 탐욕의 폐해를 알게 해주었고, 겸손이 무엇인지, 열정이 무엇인지, 인내가 왜 필요한지 가르쳐 주었다.
길은 공평하였다. 걸은 만큼 알게 해주었고, 사람들은 걸은 만큼 성장하였다. 그 길 위의 사람들은 동료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기쁨을 같이하고 슬픔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걸었다. 산티아고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곳에 정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 야고보는 상징일 뿐이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 사랑이 산티아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순례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 존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뿐만 아니라 모든 길에 있다는 사실도, 그 모든 길 위에서 걷고 있는 모든 존재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순례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며, 그 사랑이 모든 존재임을 깨닫는 여정이다. 길은 그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생장에서 오리송까지는 약 10Km. 아내는 오리송 산장에서 꼭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고 우겼다. 성수기인 여름에 여기에서 묵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눈 앞에 펼쳐진 피레네의 멋진 풍광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곳을 지상낙원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 아래 풀을 뜯고 있는 양들과 말들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온 신부님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산장에 묵는 40여명의 사람들과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우연으로 보이지만 운명으로 만난 이들이었다. 시끌벅적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카미노에서의 첫날밤, 모두들 평화롭게 잠에 취했다.
덧.
<야고보의 전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후, 예수의 제자였던 야고보가 스페인 북부 지방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다. 그 후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하고, 그의 유해가 돌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해안에 떠내려오게 된다. 야고보의 유해가 스페인 북부에 묻히게 되고 그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9세기에 별들의 들판이라 불리는 곳의 한 무덤이 별의 계시에 따라 야곱의 무덤으로 밝혀진다. 왕은 그곳에 성당을 짓고 성 야고보를 추모한다. 그 후 사람들의 순례가 시작되었고, 중세에는 교황이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산티아고데캄포스텔라를 3대 성지로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