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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그리고 사랑

젊음 그리고 사랑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불과 같은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 사랑도 언젠가는 식어버린다. 달콤한 사랑일수록 아픔과 상처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 사랑이었기에 아름다웠다. 실제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긴 세월을 같이 살았다면, 그들도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그들의 열정적 감정도 세월에 따라 변했을 것이다.

지독하게 격한 감정을 믿지 말라.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이든 간에 그런 감정은 늘 순간적인 것이다. 평정심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면 그 감정을 일으키게 한 상대를 보다 냉정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젊음은 이런 따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이 젊음이다.

삶의 여러 굴곡을 거치고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의 생이 바뀔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때문에 삶은 운명이다.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다.

젊었을 때 꽤나 좋아했던 영화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테마. 오늘 문득 이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

A rose will bloom, it then will fade.
So does a youth, so does the fairest maid.

Comes a time when one sweet smile,
Has its season for a while.
Then love’s in love with me.

Some they think only to marry.
Others will tease and tarry.
Mine is the very best parry.
Cupid he rules us all.

Caper the caper; sing me the song.
Death will come soon to hush us along.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Love is the pasttime that never will pall.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Cupid he rules us all.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그의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그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들은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인간들이 각자의 소명을 다하고 물리적 몸을 벗을 때, 다시 말해 인간들의 삶이 죽음을 통해 완성될 때, 물리적 몸은 소멸하지만 인간들의 영은 창조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 존재의 근원을 신이라고 하고, 하느님이라고도 하고, 붓다라고도 부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근원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창조의 근원 앞에서 받는 단 하나의 질문.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이 질문에 쩔쩔매며 우물쭈물할 나를 상상해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봉사를 해왔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왔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자명하다. 예수나 붓다를 비롯한 인류의 수많은 성인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단 하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주는 것, 그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은 진리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결코 불행이 아니라고. 죽음은 고통도 두려움도 아니라고. 죽음은 삶의 완성이자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이고 삶의 목적은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우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의 몸을 진짜 “나”로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몸이 죽어 소멸하면 우리도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스 박사의 연구와 증거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과학”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신비주의 스승들이 수천 년 전부터 가르쳐왔던 것들이다. 우리의 몸이 소멸한다 해도 우리의 “참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생의 수레바퀴>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그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없이 기뻤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미리내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아홉살 먹은 딸아이는 아직도 성탄절을 기다리며 예수님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놓았다. 예수님이 읽어 보고 꼭 선물을 달라는 애원(또는 협박?)이었다. 편지 앞면에는 예수의 탄생 장면이 그려져 있고, 뒷면(이면)에는 예수님께 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었다.

예수님께!

예수님, 내일이 예수님의 생신 성탄절이에요.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죠?

저는 욕심꾸러기에요. 어쩌면 선물을 받고 싶어서 이러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용서해 주실 거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벌을 받을께요…

이면지를 꼭!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편지를 본 아빠의 마음은 급해졌다. 예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탄 전날, 많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았고, 동네 장난감 가게만이 나와 같이 마음 급한 부모들로 북적거렸다.

12월 25일이 예수 탄신일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분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고,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 그것 이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

딸아이는 정확하게 예수님의 참뜻을 알고 있었고, 그것과 더불어 한가지 더, “선물”을 바라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고, 아빠는 선물을 마련하였다.

천국이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늘 행복하다.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들으며 무심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일본으로 지나간 태풍때문인지, 하늘은 맑고 깨끗했으며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나무들은 서서히 온몸으로 가을을 증거하려 하고 있었다. 그 노래와 가을의 풍광은 겹쳐지고 뒤섞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스런 노랫말 그리고 청명한 가을의 풍경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 사람이 아내라는 사실에 나는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10여년을 넘게 살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삶에 대한 지향과 세계관이 비슷했다. 아내는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기뻐할 때나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아내는 내 곁에 있었다.

아내를 만나고 많이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사람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신 앞에 선 단독자들이지만, 그것이 진리라 하더라도 이 생에서 아내와 같이 살게 되어서 행복했다.

아내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나도 아내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로 인해 내가 행복했던 것처럼 아내도 나를 만나 10년을 넘게 사는 동안 그렇게 행복했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고, 아내와 같이 산 날들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삶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이적, 다행이다>

이 노래를 연습해서 아내에게 불러줄 생각이다. 그러면 아내의 고단함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내 삶의 비법

내 삶의 비법

우리 시대 위대한 영적 스승 중 하나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삶의 비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나의 수준으로 이 말의 진의를 깨닫기는 무리지만, 집착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해 본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아내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아내와 나는 억겁의 카르마로 연결된 인연으로 이 생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고, 우리는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며, 존경하며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걱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아내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언제부턴가 내 속에 그가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그는 멀리 있어도 내 안에 있었고, 그의 영혼과 나의 의식은 교감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제 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 되어버렸는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아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내와의 첫 만남은 다른 여자들과의 만남과는 달랐다. 그는 억겁의 인연에 따라 신이 내게 보내준 나의 분신이었다. 그때는 그 다른 느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로 인해 나의 삶이 완성될 것이란 일종의 계시와 같은 것이었다.

그 인연은 빗나가지 않았고, 우리는 결혼을 하여 십여 년을 부부로 지냈다. 아내는 나와의 결혼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를 내게 보내준 신과 억겁의 인연에 감사했다. 나의 영혼은 사랑으로 충만해졌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그가 세상에 옴으로 해서 내 존재가 세상에 올 수 있었고, 그가 나에게 옴으로 해서 나의 삶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부재에 대한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 설령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생에서 그와 헤어져야 한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고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생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걱정하지 않는다.

내 삶의 비법은 바로 나의 아내이기 때문에.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신에 대한 가장 진보된 정의

신에 대한 가장 진보된 정의

미리내 님이 권해주신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를 읽었다.

사람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경지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의식 수준이 낮은 나의 처지에서 그런 내용들은 이해는 고사하고 범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신과 영혼과 종교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의문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깨달음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는 수많은 영혼들이 왜 가치있는지, 의식의 진화와 성장 단계가 무엇인지, 궁극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지향이 무엇인지, 왜 성인들은 용서와 사랑을 한결같이 강조했는지 이 책은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사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신의 본성을 설명해 놓은 부분은 그동안 내가 그 어떤 종교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가장 진보된 것이었다.

  1. 신성(Divinity)은 비선형적이고 불편부당하고 시비분별이 없으며, 편파성과 취사선택하는 편애를 넘어서 있다.
  2. 신성은 변덕스럽거나 분별하지 않으며, 추정적인 인간 감정들의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신성한 사랑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이다. 한계는 에고의 귀결이다.
  3. 신의 정의는 신성의 전능과 전지의 자동적 귀결이다. 신은 ‘행’하거나, ‘작용’하거나, ‘원인’이 되지 않고 그저 ‘있을’ 뿐이다. 신성의 성질은 무한한 힘의 장으로서 방사되는데, 그 무한한 힘의 장에 의해 존재하는 전부는 있는, 그리고 되어 있는 ‘것’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렬된다. 각각의 영혼/영은 이렇듯 고유한 운명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수준을 향해 끌려가는데, 그것은 마치 바다 속의 코르크나 전자기장 속의 쇳가루의 움직임과 같다.
  4. 신성은 낮은 힘을 훨씬 넘어서 있는 무한한 힘의 고유한 성질로 말미암아 절대적 지배권이다. 낮은 힘은 위치성과 통제의 도구이며 유한하다. 힘은 무한한 세기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힘을 구할 필요가 없는 신성한 참나로서의 힘의 근원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5. 신성의 막강함과 전적인 현존 내에서, 존재하는 전부는 스스로를 정렬시킨다. 이 조정은 영적 선택의 귀결이다. 자유는 신성한 정의에 고유하다.
  6. 의식의 무한한 장으로 표현된 신성의 전지와 전능은, 실상을 가능성의 전 단계에 걸쳐 확인해 주는 의식 연구 측정 기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생각, 행위, 결정이 시간과 장소 너머에 있는 의식의 무한한 장에 각인된다. 이 각인에 의해, 정의가 보증된다.

<데이비드 호킨스,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pp. 152-153>

겸손한 삶, 내맡기는 삶,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삶, 결국 인류 역사상 모든 성인들과 스승들이 한결같이 가르쳤던 내용들이 진리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에게는 새로운 화두가 생겼는데, 그것은 환상으로 명명된 이 차원에서의 삶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성철 스님의 법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편지 한 통

나를 부끄럽게 만든 편지 한 통

작년부터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겨 다른 이들에게 매달 조금씩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 아이들 2명과 우리나라의 중학생 2명에게 용돈을 조금씩 보낸다. 그것을 신청할 때는 조금 신경을 썼었고,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왔을 때는 조금 흥분도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신용카드에서 매달 꼬박꼬박 자동 이체가 되기 때문에 나의 기부 행위를 내가 인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주 잊고 있었다는 얘기다.

오늘 내가 후원을 하는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가을날의 따사로운 햇살과 같이 잔잔하면서도 평온한 그 편지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 편지에는 온 가족의 일상이 다소곳이 묻어 있었다.

조금 나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얘기, 아이들이 새로 이사간 집을 좋아해서 친구를 데려왔다는 얘기, 텃밭에 채소를 심었다는 얘기, 그리고 아이들이 커나가는 얘기, 둘째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는 얘기, 막내는 누나들 때문에 여자에 대한 대한 환상이 깨져 여자친구가 없다는 얘기, 그런 이야기들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간간히 가슴이 멍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그 편지는 나를 한없이 행복하고 만들었고,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달에 몇 만원되지 않는 후원금을 낸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런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가 그 아이를 매일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후원금은 자동으로 이체되는데 내가 그런 행복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편지를 맺고 있었다.

여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저희 가족들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많은 용기와 힘을 주셨네요. 앞으로도 더 노력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보잘것 없는 그 후원이 민망했다. 나야말로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행복과 감동을 받은 것 아닌가. 그 어머니의 편지는 나에게 삶의 가치와 행복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남을 돕는다는 것,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감사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안다는 것. 그것만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없다. 오늘 나는 그 한 통의 편지로 무한히 행복했고, 무한히 감사했고, 그리고 무한히 부끄러웠다.

그 아이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커나가길 기도한다.

완벽한 계획

완벽한 계획

원래 계획은 이런 거였어. 아침에 당신이 깨기 전에 조심조심 부엌으로 가는거야. 그리고 고슬고슬 밥을 하고, 맛있는 미역국을 보글보글 끓이는 거지. 당신도 알지? 나 미역국 잘 끓이는 거. 그리고 근사하게 아침 상을 차려놓는 거지.

미역국

그리고서 침대에 잠들어 있는 당신한테 가서 살짝 뽀뽀를 해 주는 거야. 그러면 당신은 부시시 눈을 뜨겠지. (물론 눈이 너무 부어서 잘 떠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당신한테 근사한 장미 한 다발을 안기는 거야.

장미

당신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짓거나 아니면 벌써 눈치를 채고 선물부터 찾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당신에게 권진원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거야. 물론 기타가 있으면 더 좋겠지? 그 노래소리에 코를 골며 자고 있던 딸아이도 깰 것이고, 우리는 셋이서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거지.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온종일 난 그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죠
난 가까운 책방에 들러서
예쁜 시집에 내 맘 담았죠
그 다음엔 근처 꽃집으로 가서
빨간 장미 한 송일 샀죠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가는길 너무 상쾌해
품속에는 장미 한 송이 책 한 권과
그댈 위한 깊은 내 사랑
아름다운 그대를 만난 건
하느님께 감사드릴 우연
작은 내 맘 알아주는 그대가 있기에
이 세상이 난 행복해

난 가까운 책방에 들러서
예쁜 시집에 내 맘 담았죠
그 다음엔 근처 꽃집으로 가서
빨간 장미 한 송일 샀죠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가는길 너무 상쾌해
품속에는 장미 한 송이 책 한 권과
그댈 위한 깊은 내 사랑
아름다운 그대를 만난 건
하느님께 감사드릴 우연
작은 내 맘 알아주는 그대가 있기에
이 세상이 난 행복해
너무 너무나 행복해
Happy birthday to you

<권지원, Happy birthday to you>

이런 완벽한 계획이 있었는데, 당신의 생일을 블로그 글 하나로 때울려고 하니 너무 너무 미안하네. 그래도 당신은 내 마음 알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을 만나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사랑하는 딸을 낳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당신의 생일에 나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지만, 당신을 만나지 못하고 당신이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아직도 나를 “아가”라 부르시는 어머니

아직도 나를 “아가”라 부르시는 어머니

며칠 전 어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 어머니가 밥을 챙겨주시면서 하신 말씀.

“아가, 어여 와 밥 먹어라.”

“아가”라는 소리에 순간 콧등이 시큰해졌다. 사십이 다 되어가는 중년의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가”라고 하신다. 당신의 속으로 낳고 기른 자식이기에 어머니의 눈에는 흰머리가 늘어가는 중년의 자식이 아직도 코흘리개 초등학생처럼 그렇게 애틋하게 보이나 보다.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내들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나 나도 자식을 낳고 길러보니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내가 세상 대부분의 여성들을 존경하게 된 것도, 그리고 모계 중심 사회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은 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나는 지난 사십 여년간 어머니가 내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어떤 사랑을 보여주셨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그런 정성과 사랑과 노동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 가족이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자란 내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어머니가 될 이 땅의 여성들에게 어찌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셨었고, 세 아이들을 키우셨으며, 한 때는 조카들까지도 돌보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도시락을 7개씩 준비하셨다. 말이 쉽지 사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어머니는 내게 야단 한 번 치지 않으셨으며, 언제나 따뜻했고, 밝았고, 긍정적이셨으며 그리고 정의로우셨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를 비롯해서 우리 형제들은 지독히도 운이 좋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어머니 같이 훌륭한 사람을 “내” 어머니로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정말 신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일이다. 젊었을 때는 꽤나 무뚝뚝했던 아버지도 지금은 대놓고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 말을 하신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신다.

어머니께 들려드리고 싶은 시가 있다.

어떤 세월로도 어쩔 수 없는 나이가 있다

늘 ‘내새끼’를 끼고 다니거나
그 새끼들이 물에 빠지거나 차에 치일까
걱정만 몰고 다니는

그 새끼들이 오십이 넘고 육십이 되어도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아
눈썹 끝엔 이슬만 어룽대는

맛있는 음식물 앞이거나 좋은 풍광도
입 밖의 차림새, 눈 밖의 풍경
앞가슴에 손수건을 채워야 안심이 되는

어머니란 나이

눈물로만 천천히 잦아 드는,
마을 입구 정자나무 한 그루,
그래도 끝내 청춘일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강형철, 늙지 않은 절벽>

어머니가 늙지 않는 절벽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그 어머니에게서 늘 “아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지금처럼 그렇게 늘 건강하십시오.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했다. 너의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 장미와 함께 한 시간때문이라고. 여우가 한 말은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린왕자와 그 장미가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같이 보내도록 운명지워졌다는 것.

나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관해서는 운명론자다. 그 무수한 가능성과 확률을 뚫고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평생을 같이한다는 것은 “운명” 말고 다른 것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한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아내와 결혼을 한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우리 부부는 무슨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지만, 10년이라는 세월 앞에서는 감개무량함을 감출 수 없다. 돌아보면, 살과 같이 흐른 지난 세월이 마치 꿈만 같다. 우리는 그 세월을 별 탈없이 살아왔다. 딸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우리들은 어느덧 학부형이 되었다. 재기발랄하고 풋풋했던 20대는 아니지만, 이제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중년은 소중하다.

아내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결혼 초였던가. 공원 벤치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단팥빵을 나누어 먹었던 일. 그러면서 우리는 늙어서도 이런 부부가 되자고 얘기했었던 일. 우리는 노인이 되어서도 그런 부부가 될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내는 나에게 까불까불 할 것이고, 할아버지가 된 나는 아내의 그런 쾌활함을 즐길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팥빵을 나누어 먹을 것이다.

아내와 나의 사랑이 10년이라는 나이테를 둘러 꽤나 틈실해졌다. 이제 예전처럼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하더라도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그런 성숙함과 중후함이 보인다. 그렇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았다.

(아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아내처럼 예쁘고 현명한 여자와 평생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내를 닮은 예쁘고 똘똘한 딸을 얻었으니 말이다.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잘 살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고 되도록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렇게 살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우리는 지난 10년을 함께 배워왔다.

결혼 10주년에 아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아내가 늘 듣고 싶어하던 노래. 아내는 윤도현보다도 내가 더 이 노래를 잘 한다고 얘기했었지. 사실일 것이다. 내겐 너무 소중한 아내, 내겐 너무 행복한 당신. 앞으로의 10년은 더 행복한 시간이 될거야. 그렇지?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나의 하루를 가만히 닫아주는 너
은은한 달빛 따라 너의 모습 사라지고
홀로 남은 골목길엔 수줍은 내 마음만

나의 아픔을 가만히 안아주는 너
눈물 흘린 시간 뒤엔 언제나 네가 있어
상처받은 내 영혼에 따뜻한 네 손길만

처음엔 그냥 친군 줄만 알았어
아무 색깔 없이 언제나 영원하길
또 다시 사랑이라 부르진 않아
아무 아픔 없이 너만은 행복하길
워우워우 예~~~

널 만나면 말 없이 있어도
또 하나의 나처럼 편안했던 거야

널 만나면 순수한 네 모습에
철없는 아이처럼 잊었던 거야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내겐 너무 행복한 너

<윤도현 밴드, 사랑 T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