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예뻤다
결혼 전 아내는 싱그러웠다. 화사한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그의 얼굴에서 향긋한 봄날의 냄새가 났다. 결혼 전의 여자들이 대개 그렇겠지만, 아내는 나의 눈에 햇살 비치기 전 풀잎에 달린 맑은 이슬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큰 길 건너 저 멀리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키가 큰 아내가 겅정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뒤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도 빛이 났다.
아내는 참으로 발랄했고, 재치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덤벙댔다. 그것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내가 때로는 부러워했던 그런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처럼 굴었던 나는 늘 맏이처럼 행동했고, 늘 느긋했다. 그런 내게 아내의 재기 발랄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글을 잘 썼고, 많이 썼다. 내게도 많은 메일을 보내 왔다. 그의 메일을 읽는 것은 그날 하루의 큰 기쁨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그 많은 글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며칠 전 아내는 그 당시 자기가 썼던 시 한편을 찾아 보내왔다. 그 시를 읽어 보니 우리가 결혼 전 만났던 그 순간순간들이 눈에 어렸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 뭉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그 순간들. 아내의 시와 함께 고이 간직하고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사람들은 빨래를 걷는다
나의 그는
비가 오면 방구석에 처박힌 빨래감을
주렁주렁 빨래줄에 내다 널 것 같은 사람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쓴다
나의 그는
비어 젖어 제 색을 더해가는 녹음진 공원에 앉아
한 없이 함께 젖어 갈 것 같은 사람비가 오면
나는
그가 보고 싶은 간절함이
맘 속에 빗물처럼 고여
열번이 넘게 간 신호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10여년이 된다. 세월이 그의 싱그러움을 조금 가져가 버렸지만 여전히 내게는 예쁜 아내이고, 고마운 아내다. 사랑해,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