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에 대해 폭로했다. 삼성에서 모든 혜택을 누리던 그가 왜 그랬을까 그 동기가 석연치 않지만, 그의 용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다들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 안다. 그들이 돈으로 이 사회를, 이 사회의 지도층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안다. 지난번 삼성 X파일 사건도 빙산의 일각이 아니었던가. 김 변호사는 삼성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만한 거악”이라고까지 했다. 죽음을 무릎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성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기는 할 거 같다.
삼성의 비자금 관리와 비리야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가 삼성을 단죄할 수 있을까? 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요, 모든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물적 증거가 나와도 삼성을 단죄할 수 없다. 국민들이 아무리 단죄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일단 삼성의 비리가 포착이 되면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정부보다도 삼성의 관리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검찰이 삼성을 제대로 수사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검찰은 삼성을 수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한다해도 그냥 시늉만할 뿐이며, 몇몇 곁가지만 쳐낼 뿐이다. 거악에 본류에 닿지 않는다.
검찰이 못하면 특검으로 가야 하는데, 과연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수 있을 것인가. 통과할수 없다. 삼성 회장의 국회 증인 출석도 저지시키는 국회의원들이 과반을 훨씬 넘는 상황에서 삼성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은 찻잔 속의 태풍이나 다름 없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하고, 특검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삼성의 비리를 수사할 만한 조직은 없다. 특검을 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특검에 임명될 사람도 전직 검찰이나 법조인일텐데, 그런 사람치고 삼성의 관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국민들의 여론이 삼성을 질타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다. 여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들이 삼성에 관한 일을 제대로 보도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의 가장 큰 광고주인 삼성을 거스릴 수 있는 언론 사주와 편집장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사태가 어떻게 결말났는지 다들 알지 않는가. 그 사건이야말로 자본이 어떻게 언론을 탄압하고 통제하는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지만, 거의 모든 언론사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삼성은 언론과 입법과 사법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아무리 거악이고, 비리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의 불법을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 것도 없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는 명목상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겠지만,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삼성이라 봐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삼성은 다른 재벌들과도 혈연과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삼성 권력은 이미 국가 권력을 넘어섰다고 봐도 무리는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삼성이 어떤 짓을 해도 가만두고 봐야 한단 말인가. 김용철 변호사는 한낱 돈키호테로 전락할 것인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확률이 지극히 높아 보인다. 삼성을 변화시키려면 삼성의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이건희 일가로부터 삼성을 분리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이건희보다 더 큰 재력가가 나타나 이건희 일가의 소유구조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달걀로 계속 바위를 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건희를 구속시키고 삼성을 단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개발독재와 성장위주 정책으로 재벌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삼성은 그것들 중 가장 강력한 괴물임에 틀림없다. 어쩌겠는가. 인과응보인 것을. 참으로 답답한 노릇 아닌가.